- 재판부, 폭력 피해 참작해 선처

40년 넘게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60대 아내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여·65)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같은 혐의를 받는 A 씨의 아들 B(41) 씨에게는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 모자는 지난 5월 12일 밤 울산 집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C(69) 씨와 다투다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일 남편 C 씨는 술을 마시면서 아내 A 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A 씨가 요금제 2만5000원에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을 두고 화를 내며 목까지 졸랐다.

다툼이 신고돼 경찰관이 출동했으나 A 씨는 남편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들 B 씨가 집으로 왔다. 하지만 C 씨가 A 씨에게 계속 욕설을 하며 때리기까지 하자 B 씨는 베란다에 있던 둔기를 들고 와 아버지 머리를 내리쳤다.

이 모습을 본 A 씨는 자신이 아들 범행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쓰러진 남편 입에다가 염산을 부으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열리지 않자 둔기로 남편 몸 여러 곳을 수차례 내리쳐 결국 사망케 했다.

A 씨는 45년 전 남편과 결혼했지만 내내 가정폭력에 시달린 끝에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됐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좋지 못하지만 A 씨가 40여 년 동안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순종했고, 자녀와 손자 양육에 헌신한 점, 이웃들이 한결같이 불행한 가정사를 듣고 선처를 탄원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아들 B 씨에 대해선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패륜적인 범죄로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를 둔기로 때린 것이 이 사건 결과를 일으킨 점, 어머니가 범행하도록 조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불리한 정상이다”며 다만 “어렸을 때부터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보이는 점, 우발적인 범죄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12년을, 아들 B 씨에게 징역 22년을 각각 구형했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