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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86> 반야탕과 음양탕: 탕이 아닌 탕

  • 박기철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0-10-29 19:39:0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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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처럼 몸을 달구는 불물이 술이다. 술의 어원이 물 수(水)+불이라 수불이 술이 되었다는데 그럴 듯하다. 그런데 술은 물이나 불처럼 우리말인 듯하다. 술을 술술 마시면 일이 술술 풀린다는데 살살 슬슬 마시지 않으면 질질 줄줄 꼬이기 쉽다.

음양탕처럼 술술 마시면 안될 반야탕.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한 지혜를 반야(般若)라 하는데 반야탕은 술의 최상급 표현이다. 술을 마시면 반야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술은 길한 물인 길수(吉水), 복된 샘물인 복천(福泉), 지혜를 주는 지액(智液)이다. 아니라면 술은 흉한 물인 흉수(凶水), 화를 불러 일으키는 화천(禍泉), 어리석게 하는 우액(愚液)이다. 슬기탕인 반야탕(般若湯)은커녕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혼미탕(昏迷湯)이자 미혼탕(迷魂湯)이다.

술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술의 양이 문제다. 마시는 양에 따라 순한 양→용감한 사자→더러운 돼지→추태부리는 원숭이가 된단다. 조용한 선비→춤추는 광대→미치광이가 된단다.

술에 대해 겁을 내야 한다. 오죽하면 조상들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만들었을까? 수행자들은 술을 곡차(穀茶)라고 완곡하게 말하는데 정말로 차 마시듯 점잔케 마셔야 하겠다.

반야탕처럼 음식이나 약으로 먹는 탕 아닌 탕이 있다. 음양탕(陰陽湯)이다. 뜨거운 물 위에 차가운 물을 부은 미지근한 물이다. 맹물을 끓여 식힌 미지근한 백비탕(白沸湯)이나 백번 끓여 식힌 백비탕(百沸湯)도 좋다지만 음양의 조화가 위아래로 어우러진 물이라 몸에 더 좋단다. 일리 있다. 음양탕을 술술 마시면 지혜를 깨우는 반야탕이 되기 쉽다. 고기를 끓인 탕은 아니어도 몸을 보하는 맑은 보신탕(補身湯)이겠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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