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화 씨처럼 부마항쟁에 참여했다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이들은 많다. 실제로 김모 씨는 부마항쟁에 동참했다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그 이후 인생이 망가져 아내와도 이별하는 등 갖은 슬픔을 겪었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김 씨와도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지난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며 인터뷰를 거절했을 만큼 지금도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
왜 부마항쟁 관련자들이 형제복지원 및 삼청교육대에 갔을까. 그곳에 잡혀간 대상자들만 봐도 당시 정부에서 부마항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자 강제수용소였다. 부랑자 선도를 명목으로 무연고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끌려 갔다. 삼청교육대는 사회질서 저해 사범이나 불건전 생활 영위자 중 재범우려자 등이 주 대상이었다. 부마항쟁에 참여한 사실은 곧 부랑자의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경찰과 공안 당국이 불량배 소탕 실적을 위해 부마항쟁 관련자 정보를 악용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차성환 상임위원은 “부마항쟁 관련자를 더 고통 주기 위해 불량배나 부랑자로 몰아 일제히 잡아들인 것 자체로 정부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며 “말 그대로 이유 없이 희생당했다. 정부가 부마항쟁 관련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명확히 시각이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