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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3 <3> 10월의 트라우마- 시민 제정화 씨

시위 한번 동참한 죄 … 삼청교육대·형제원 끌려가 평생 고초

  •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
  •  |   입력 : 2020-11-01 20:09:4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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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했던 제 씨, 가두행진 참여
- 경찰에 보름 구류되며 비극 시작
- 풀려난 뒤에도 공권력 감시 계속

- 영문 모른채 삼청교육대 잡혀가
- 집에 돌아온 후 또 형제복지원行

- 구타·인권유린 못 견디고 탈출
- 트라우마에 고향 부산 못 오고
- 전국 떠돌아다니며 외톨이 돼

- “기록·증언 없어 보상도 못 받아
- 그저 불운했다 생각하는 수밖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개인이 어떻게 타인의 존엄성을 파괴해가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그릇된 믿음 앞에 인간은 없다. 광신도 목사는 부활을 믿으며 아내를 살해한다. 주인공 윌러드는 암에 걸린 아내를 종교의 힘으로 치유하기 위해 아들의 유일한 친구인 반려견을 죽여 제물로 바친다. 또 다른 목사는 고기를 가져오지 않은 신도를 대놓고 모욕하고 젊은 여신도를 꾀어 욕정을 채운다. 선을 가장한 악의 무리는 이렇게 한 개인을 타락시키고 스스로 악마가 된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단지 ‘불운’했을 뿐이다.

1979년 10월 대한민국을 채운 군부의 신념은 독재였다. 이를 위해 시민의 자유와 존엄성은 철저히 짓밟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구타당하고 인간 개조라는 명목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해 10월 16일 시작된 부마항쟁에 참여했단 이유로 이후부터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했던 제정화(63) 씨도 마찬가지다. 악을 채운 공권력 앞에 개인은 무력했다. 단지 불운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억울해도 어쩔 건가”라는 냉소뿐이었다. 부마항쟁이 끝난 지 41년이 지났지만 그에게서 악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부마항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했던 제정화 씨가 국제신문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채호 기자
■공권력의 감시가 시작됐다

1979년 10월 17일 부마항쟁이 시작된 다음 날 부산 중구 대청동에 살던 그는 국제시장에 있었다. 당시 22살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동아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국제시장 일대에서 스크럼을 짠 시민 가두행진이 이어졌을 때 제 씨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과 함께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에서 경찰의 매질이 들어왔다. 순간 기절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중부경찰서였다. “중부서에 사람이 많아 그런지 영도서로 넘겨졌습니다. 거기서 즉결심판에 넘겨져 구류 15일을 선고받고 해운대경찰서에 입감됐는데 당황스럽더라고요.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제 씨는 전과 하나 없이 성실히 사는 소시민이었다. 그러다 부마항쟁 참여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보름 동안 구류를 살다 나온 그는 그때부터 경찰의 감시망 안에 든 쥐 신세였다. 파출소 경찰은 틈만 나면 그를 맴돌았다. 경찰이 이웃에게 제 씨의 동향을 물으니 자연히 주민도 그를 감시하는 적이 돼버리고 말았다. “경찰이 계속 이웃에게 제 근황을 묻고 다니니 경찰이 제 눈엔 미친놈으로 보였죠. 제가 딴짓을 할 사람도 아닌데…. 그러다 어떤 검찰 수사관의 형이 경찰이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이 적힌 명단을 들고 다닌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때도 좀 의아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죠.”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

1980년 7월 28일 새벽 경찰이 들이닥쳤다. 놀란 그의 모친이 이유를 묻자 경찰은 “형님동생 사이라 잠시 이야기하면 된다”며 그를 데려나갔다. 그리곤 바로 중부산경찰서로 다시 끌려갔다. 이후 당시 수영비행장 위치에 있던 제69보병사단으로 보내졌다. 삼청교육대였다. 두 번째 불운의 시작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끌려갔죠. 당시 1중대로 편성됐는데 마침 군시절 같이 지냈던 선임하사와 소대장 등이 절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저를 2중대로 빼줬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1중대 인원은 강원도 등 오지로 끌려가고 2중대는 이곳에서 4주만 훈련을 받는다 하더라고요. 불행 중 다행인가 싶더라고요”

그 곳의 생활은 비참했다. 고된 훈련을 마치면 구타와 얼차려가 반복됐다.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중사들이 군화를 신고 우리를 밟고 가는 건 기본이었습니다. 훈련을 받다 기절하면 물구덩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발버둥치면 또 구타당했습니다. 밥은 또 어디 제대로 주나요. 1식 3찬인데 김치와 된장 등이 전부고 조금씩 주니 한창 먹을 나이에 그것도 고역이었죠.”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1983년 10월 새벽, 이번에도 경찰이 그의 집을 들이닥쳤다. 이번에 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형제복지원이었다. 부마항쟁에 엮인 악운의 고리는 질기고도 길었다. 억울할 법도 한데 그는 당시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억울하다 생각한들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당시 서슬 퍼런 사회 분위기에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었나요. 힘 없는 국민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한 거죠.”

인권유린의 상징인 형제복지원은 지옥과 같았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강제노역이 이어졌다. 구타는 삼청교육대보다 훨씬 잦고 강했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무작정 패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라고 그는 기억했다. “아프다 하면 더 때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지옥이었죠. 어떤 날은 너무 맞아 양쪽 갈비뼈가 다 부러져 숨도 못 쉴 것 같은데 계속 일을 시키더라고요.”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죽음이었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데 그 친구가 구타당해 죽은 걸 보니 입에서 저절로 온갖 욕이 다 나오더라고요. 이러다 나도 죽겠다 싶어 1987년 무작정 도망쳤죠. 뒤에서 교관들이 몽둥이 들고 쫓아오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차를 잡아 살 수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

형제복지원에서 탈출한 제 씨는 서울과 대전, 대구 등 타지를 떠돌아다녔지만 고향에는 오지 못했다. 극심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에 갇혀 있는 동안 남동생과 여동생이 결혼했지만 그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였다. 그러다 결국 다시 부산을 찾았다. 부산으로 왔지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약 30년간 부산에 살고 있지만 여기는 부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거든요. 지금도 악몽을 자주 꾸는 걸 보니 다 잊진 못했나 봅니다.”

부마항쟁을 시작으로 그의 삶은 비참하게 무너졌다. 그런데도 그는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 받지 못했다. 구류 15일을 증명할 어떠한 기록도, 증언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가 보름 동안 구금돼 있었단 걸 증명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남아 있더라고요. 그 힘든 세월을 하나도 보상받지 못하게 됐으니 아쉽기야 하죠.”

그의 어릴 적 꿈은 “밥 제때 먹고 안 죽는 것”이었다.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고 큰 욕심 내며 살아본 적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다. 부마항쟁이 도화선이 돼 철저히 삶이 망가졌으나 여전히 작은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부마 피해자들이 지금도 많다. 제 씨는 인터뷰 1시간 30분 동안 국가의 존재 이유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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