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은 여러 번 여행했다. 장경각을 촬영하는 방송사의 팔만대장경 프로그램 취재로 가기도 했고, 보통의 관광객으로도 몇 차례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저녁 예불 전 법고(法鼓)에서 범종까지 이어지는 ‘종성’(‘고두’라고도 했다) 행사가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풍광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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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예불에 앞서 해인사 범종각에서 스님이 경건하게 법고를 치고 있다. 합천군 제공 |
최치원을 화두로 잡고 취재한 합천은 다른 세상이었다. 해인사야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문화유산이지만 청량사는 첫걸음이었다. 문외한의 눈에도 단번에 느껴지는 서슬 퍼런 지세는 두려움과 숙연함에 저절로 허리를 굽히게 했다. 대웅전 안의 석조석가불좌상과 석등, 삼층석탑의 보물 세 점이 일직선으로 나란한 모습은 그 뜻이 무엇일까 경건하게 했다. 역시 그곳에서 최치원의 모형(母兄) 현준 스님이 선도(仙道)를 일으키려 했다니 놀라웠다.
그저 둘러보는 관광은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다. 역사 깊은 법보사찰, 빼어난 풍광, 맑은 물, 고요한 숲길, 모두 좋다. 하지만 우리 땅에는 비견할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홍류동계곡 ‘소리길’은 다시 찾고 싶게 만든다. 산책로를 잘 정비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름이 더 큰 매력이다. 이름은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유인하는데 스토리가 더해지면 쉽게 일체가 되고 기억이 깊어진다.
해인사에 ‘선안주원(善安住院)’이 있었던 것은 최치원의 ‘벽기(壁記)’가 증명한다. 굳이 건물의 복원이 아니어도 ‘동국’의 기상을 당당히 한 그 정신을 현시(顯示)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청량사의 서슬 퍼런 지세에 ‘난랑비기’의 서문을 더한다면 ‘한민족의 정신’을 다시 찾고 세우는 도량이 되지 않을까.
가장 대중 친화적인 운용 자산은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일 것이다. ‘팔만대장경’ 이야기가 입체영상으로 기다린다. 짧지만 대장경에 대한 이해를 수월하게 하고 환상적인 영상이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킨다. 운영 주체의 협조를 얻어 최치원의 합천 스토리(입산~선안주원 벽기~난랑비기 서문~고운암)를 영상으로 제작한다면 효과가 클 것이다. 무엇보다 화석처럼 이름만 번듯한 최치원은 안타깝다. 그는 오직 천재여서 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오늘에도 여전히 반짝일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천년이 넘도록 신선으로나마 붙잡아 곁에 둔 까닭도 그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