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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3 <5> 10월의 트라우마- 시민사회운동가 박상도 씨

노동운동으로 독재정권 미운털…항쟁 터지자 고문·사찰

  •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
  •  |   입력 : 2020-11-18 20:40:20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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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선교회·양서협동조합 통해
- 부마항쟁 전부터 시민사회운동

- 경찰·중앙정보부 일상적인 감시
- 항쟁 동참 빌미로 12일간 고문

- 정권, 각종 시민단체활동 금지
- 5·18항쟁 뒤 직장생활까지 사찰
- 1987년까지 생활고 고초 겪어

“제 의지로 지난 삶을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게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일어나기 5년 전부터 박상도(75) 씨는 여러 시민단체에서 사회운동에 전념했다. 목사가 되고자 신학교에도 2년가량 몸담았던 만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챙겼던 예수 정신 실현을 목표로, 박 씨는 1977년부터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 권익 보호에 힘을 쏟았다.

부마항쟁을 계기로 독재 정권은 노동자 보호와 민주화를 위한 교육 등을 진행해 미운 털이 박혔던 도시산업선교회와 양서협동조합을 없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독재정권의 사찰과 생활 전반에 가해지는 압력은 날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1987년 6·10 항쟁 전까지 온전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그와 가족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도 씨가 최근 부산 동구 사무실에서 부마항쟁 전과 후에 경찰과 중앙정보부 등으로부터 겪었던 사찰과 경제활동 방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석교 기자
■1970년대 경찰·정보당국의 감시

박정희 정권 아래 ‘경제 개발을 위해’라는 말은 그 어떤 논리보다 강력했다. 한정적인 자원으로 빠르게 경제 규모를 키우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했다. 고통은 공평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는 이들이 날로 늘었기에 경제 개발 과정에서 노동자의 희생은 필연적이었다. 임금과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자의 권리 역시 법전에만 쓰인 힘 없는 문구에 불과했다.

노동자의 삶이 빠르게 위축되자 박상도 씨는 김광일 변호사, 최성묵 목사와 도시산업선교회를 결성해 부산 곳곳을 누볐다. 상대하는 기업의 크기에 상관없이 성과는 이어졌고 도시산업선교회 명성은 높아갔다. 이 때문에 당시 조병규 경남도지사는 지역 내 기업에 산업선교회가 침투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효율적인 민주화 운동과 교육을 위해 만든 양서협동조합에도 많은 사람이 몰리자 독재 정권은 긴장했다. 이 때문에 매일 아침이면 관할 경찰서와 시경(현 부산경찰청) 정보 형사들이 박 씨를 찾아와 종일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3일에 한 번꼴로 중앙정보부 요원도 그의 동태를 살폈다.

■부마항쟁 직후 사찰 압박 심해져

일찌감치 지역에서 활동해 정부의 감시망 아래 놓여있던 터라 박 씨는 부마항쟁이 시작된 뒤 시위대 앞에 나설 수 없었다. 그는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이 있었기에 전면에 나서는 건 매우 위험했다”며 “도시산업선교회는 부마항쟁 진상 조사와 각 경찰서로 끌려간 이들의 수와 상태 등을 파악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시민의 항쟁을 받아들일 수 없던 독재정권은 반드시 배후를 조작하려 했다. 1979년 10월 20일 박 씨는 치안본부 안가로 끌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기 전까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같은 달 31일 풀려났지만, 삶은 이전과 달랐다.

도시산업선교회와 양서협동조합은 해체됐고 시민사회활동은 금지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로 정권을 탈취한 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경찰과 정보당국은 사찰 수위를 높였다. 어렵게 자리 잡은 직장에도 찾아왔고, 직장 동료와 사업주에게 박 씨 동태 파악을 명목으로 이것저것을 캐물으며 경제활동을 방해했다. 그는 “일상적으로 감시를 당했다. 지역에서 크고 작은 사건만 생기면 회사로 찾아왔다”며 “이전부터 사찰을 받아 나는 견딜 만했지만, 일부 사업주는 그만두라는 눈치를 줬다”고 말했다. 사찰과 압박은 1987년 6·10 항쟁 발발 전까지 이어졌다.

생활고와 끊이지 않는 사찰과 압박은 박 씨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겼다. 박 씨는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쉽사리 기록하지 못한다. 그는 “오랜 시간 일기를 쓰며 떠오르는 생각을 수첩에 남겼다. 치안본부에서 고문을 받고 괴롭힘이 계속되면서 기록하는 습관을 버렸다”며 “남겨진 생각은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근거가 됐고 수첩에 남겨진 이름으로 다른 이가 고초를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정보 형사가 들이닥치는 탓에 가족들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는 “아직도 아내는 낯선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놀란다”고 덧붙였다.

■갖은 고초도 꺾지 못한 시민운동

노동자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사회 운동으로 오래도록 고통받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박 씨는 6·10 항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때 경찰이 쏜 최루탄 파편이 다리에 박혀 병원 신세도 졌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시민사회운동은 이어졌다. 박 씨는 중앙 정권을 교체한 뒤 지방자치에 집중했다. 박 씨는 “민주주의가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 확산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함께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던 이들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부산경실련’ ‘공해추방시민협의회’ 등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한평생을 민주화와 시민사회 운동에 헌신했지만 박 씨는 못 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박 씨는 “통일 운동에 전념하지 못해 아쉽다. 남북통일을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없기에 발판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민족의 살길은 통일 뿐”이라며 “통일에 힘 쏟는 이를 여전히 빨갱이 취급하는 사회 풍토가 슬프다. 길만 있다면 통일 운동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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