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뛰쳐나와 거리서 만난 오빠들
- 호의·경제적 도움 베풀며 접근
- 성폭행 당해도 피해 인식 못해
- 진술 거부하거나 존재 숨기기도
- 과거 피해 여학생들 진술 보면
- 성매매 똑같은 혐의 공범인데
- 돈 잘 나눠주면 ‘좋은사람’ 착각
- 만 13세 넘는 청소년과 성관계
- 경우에 따라 미성년강간죄 안돼
- 성매수 평균 형량도 18개월뿐
- 처벌 강화해 접촉기회 차단해야
정신분석학에서 ‘라포(Rapport)’는 상호 간의 친밀감이나 신뢰 관계를 뜻한다. 라포가 두터울 때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라포가 깨지면, 환자는 의사가 하는 말을 전부 거짓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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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이 성착취 피해를 당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경찰과 청소년 시설의 정기적인 합동 순찰을 통해 이들을 찾아내고 청소년 시설의 존재를 알리는 등 능동적 연계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부산 경찰이 관내 지역을 순찰하는 모습. 국제신문 DB |
가출 ‘비호세력’(국제신문 지난 17일 자 1면 등 보도)의 성매매 강요에 상처 입은 청소년 상당수는 처음엔 자신이 당한 일을 피해로 느끼지 못한다. 그릇된 라포가 형성된 탓이다.
■성착취 인식 못 하는 피해자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부모와의 불화로 집을 뛰쳐나온다. 집 밖에서 만나는 ‘오빠들’은 가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호의와 친절, 그리고 경제적 여유를 베푼다. 이 때문에 자신을 성폭행하고 성매매를 시킨 이들에 관해 진술하기를 거부하거나, 존재를 숨겨주기까지 한다. ‘착한 오빠’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
성매매로 번 돈을 많이 뜯어가면 ‘나쁜 오빠’, 적게 가로채면 ‘착한 오빠’다. 혹여 경찰이 오빠들을 체포해도 착한 오빠만큼은 처벌받지 않길 바란다. “그 오빠는 착해요. 약하게 처벌해주세요”라고 호소하거나, 아예 피해 진술 자체를 회피한다. 이처럼 비뚤어진 라포를 형성시키는 행위가 바로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이라 불리는 성 착취 예비 범죄다.
2016년, 부산 기장군에서 남성 7명이 가출한 여학생 4명을 윤간하는 등 성폭행을 저질러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피해자들은 고등학생 1명, 중학생이 3명이었다.
당시 가해자 7명 중 6명이 구속됐다. 가해자들이 아직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가출 여학생들이 성매매하도록 몰아갔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처벌에 이르진 못했다. 가해자들은 여학생들이 성매매로 벌어온 돈을 피해자들과 나눠 썼다. 법원은 여학생들이 ‘자의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했다. 가해자 중 주범 격이던 당시 20세 B 씨는 ‘초범이고 동종전과가 없다’며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전자발찌를 채워달라는 청구 또한 기각됐다.
학업중단위기학생 복귀지원단체 ‘틴스토리’는 피해 여학생들에게서 당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진술을 받았다. 뜻밖에도 피해자들은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가해자 7명에 관해 느끼는 호감도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고 있었다. 자신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성매매 대가를 많이 가로채는 가해자는 ‘나쁜 오빠’였다. 술과 담배를 자주 사주고, 비교적 친절하게 말을 걸거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가해자는 ‘착한 오빠’로 불리기까지 했다.
최근 가출한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10여 명을 16차례 윤간한 혐의로 구속된 C(20) 씨에게 당한 피해자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C 씨는 자기 일을 돕는 공범 D 군을 데리고 다녔다. 피해자들은 C 씨에 대해선 “화를 자주 내고 돈도 잘 안 주는 나쁜 오빠”라고 했지만, 공범 D 군에 대해선 “착한 오빠”라며 두둔했다고 한다.
■가해자 엄벌만이 악순환 끊는다
그루밍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엄벌해 피해자와의 접촉 기회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또 가출 청소년에게 성착취 피해를 분명히 인지시키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피해 진술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전문 김현주 국선전담변호사는 “성폭행을 당한 청소년 피해자 중에는 가해자와의 최초 라포가 잘못 형성돼 자신이 본 피해를 진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피해 상담을 지속하다 보면, 뒤늦게 ‘제정신’을 차린다. 그제야 피해 사실을 설명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현행법상 쉽지 않다.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그 자체로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기준 연령이 만 13세 미만이다. 만 13세가 넘은 청소년은 상황에 따라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느냐를 판단해야 하는 탓이다. 상해가 없었다면 현 양형기준상 2년 6월~5년 형을 받는 게 보통이다. 전자발찌를 청구해도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자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기각되는 일이 흔하다. 2018년 기준 법원의 전자발찌 기각률은 63.2%다.
청소년의 몸을 사는 성 매수자에 대한 처벌도 관대한 편이다. 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및 추세 분석’을 보면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 매수 혐의로 처벌받은 사람은 268명이다. 이 중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9명(10.8%)에 그친다. 나머지는 집행유예(163명·60.8%) 또는 벌금형(74명·27.6%)이었다. 징역형의 평균 형량도 18.1개월에 불과했다.
미성년자 성매매자는 1~10년의 징역형 또는 2000만~5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이 경우 자신과 성관계한 여성이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랜덤 채팅을 통해 성매매를 알선할 때 가해자들은 가출 청소년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숨긴다. 김 변호사는 “랜덤 채팅에서는 성인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실제 모텔 등에서 만났을 땐 중학생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성 매수자들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가출 청소년 성착취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피해자 보호’를 넘어 ‘가해자 엄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틴스토리 박용성 센터장은 “가해자들은 주거지와 생계를 미끼로 가출 청소년을 유혹한 뒤 성매매를 유도한다. 이들을 강하게 처벌해 양측의 연결 기회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기준 연령을 만 16세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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