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 전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다. 고대사 상고사에 관해 기원 전에 쓰인 기록이 하나도 없다. 유대인들은 기원 전에 쓰인 모세5경 등의 역사서를, 그리스인들도 히스토리의 어원이 되는 히스토리아 등의 역사서를, 중국인들도 춘추 등의 역사서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겐 기원 전에 쓰인 역사서가 아예 없는 것도 안타깝지만 1145년 삼국사기 이전까지 기원 후 쓰인 역사서도 없다. 위서 논란이 있는 환단고기도 편찬연도가 1911년인지 1979년인지 확실치 않다. 일본은 712년과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나 고사기와 같은 역사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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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 세상에서 화랑들이 실천한 풍류도. |
당시 우리 삼국시대에도 역사서가 확실히 있었다. 백제 서기, 고구려 유기, 신라 국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전란 중에 깡그리 불타 버리고 말았다. 고려실록마저도 불타 없어졌다. 이를 불태운 자들은 저승에서도 편치 않으리라! 고려시대 일연(1206~1289)이 삼국유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고조선 역사는 통째로 사라질 뻔했다. 김부식(1075~1151)이 삼국사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사(正史)는 없어질 뻔했다.
덕분에 통일신라시대 최치원(857~908?)이 쓴 난랑비 서문도 알게 되었다. 삼국사기에서 지금도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화랑이었던 난랑의 비에 썼던 머리글로 진흥왕 때의 기록이다. 최치원이 남긴 천부경 81자와 똑같이 딱 81자의 짧은 글이다. 앞부분을 요약하자면,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었으니 풍류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선(仙) 역사책에 있는데 유교 도교 불교인 삼교를 포함한다”. 엄청난 내용이다. 그런데 현묘지도인 풍류에 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선사(仙史)가 없다. 마치 페르마(1607~1665)가 방정식 정리를 증명했지만 그 풀이법을 남겨놓지 않은 것과 똑같다. 이후 수많은 수학자들의 노력 끝에 350여 년 지나 1994년에 풀렸다. 마찬가지로 난랑비 서문에 모호하게 기록된 풍류에 관해 많은 이들이 풀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풀렸다. 물론 수학처럼 딱 풀린 건 아니다. 그래도 많이 풀렸다. 사료(史料)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이를 푼 분들께 진정 경의를 표한다.
도대체 풍류가 무엇인지 여러 설들이 있다. 밝도의 밝(bright)인 부르를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음차하여 풍류라 했다는 설이 있다. 나한텐 바람의 흐름인 큰 한님의 숨결이라는 설이 더 와닿는다. 원시불교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 바람의 흐름이 한자 뜻 그대로 풍류(風流)이며 그리 살아가는 도가 풍류도다. 천지만물은 장엄한 꽃인 화엄(華嚴)처럼 연기되어져 있다. 신라시대 꽃 같은 젊음들인 화랑(花郞)은 이 현묘한 화엄의 세상에서 풍류도를 실천했다. 우리가 당시의 역사서는 잃었지만 풍류도 정신은 잊지 말자. 풍류도 실천의 핵심인 접화군생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논하겠다.
박기철 경성대 교수·광고홍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