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라 하면 멋, 운치, 놀이, 유흥 등이 피상적으로 떠오른다.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과연 풍류의 정수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풍류란 3교를 포함한다. 3교에 관해선 바로 전 496회 글에서 소개했던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정확하게 적혀 있다.
| |  |
| 불교의 하화중생과 다른 선교의 접화군생. |
공자의 충효, 노자의 무위, 부처의 선행 등이니 유교 도교 불교다. 그런데 최치원이 쓴 문장의 맥락으로 보아 풍류는 유불도 3교보다 더 근원적인 것같다. 우선 공자 노자 부처에 대한 호칭이 불온하기 때문이다.
12세에 당나라로 유학 가서 29세에 귀국한 최치원은 유교 도교 불교에 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공자를 노나라 사구(魯司寇), 노자를 주나라 주사(周柱史), 부처를 축나라 태자(竺乾太子)라고 썼다. 대단한 성인들을 강등시킨 최치원의 내심은? 당시 신라의 풍류가 유불도보다 더 심원한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 풍류에 관해 선사(仙史)에 기록되었다 했으니 풍류는 곧 선(仙)이다. 그렇다면 풍류도는 선교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도 풍류에 관해 삼국사기보다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미륵선화 이야기를 통해서다. 풍류를 좋아했던 진흥왕은 나라를 흥성하게 하려면 반드시 풍월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화랑을 뽑았단다.
여기서 풍월도(風月道)는 풍류도(風流道)다. 미륵선화(仙花)가 신라의 선교(仙敎)를 책임지는 국선(國仙)이 되어 화랑도(花郞徒)인 국선도(國仙徒)와 어울리니 풍류가 세상에 빛났단다. 결국 삼국유사에서도 풍류는 곧 선(仙)이다.
그렇다면 풍류도인 선교란 어찌 실천되는 것일까? 최치원은 이에 관해 난랑비 서문에 아주 짧게 썼다. 접화군생(接化群生)! 함축된 의미가 엄청난 네 글자다. 최치원은 왜 불교에서처럼 중생이라 하지 않고 군생이라 했을까? 중생(衆生)과 군생(群生)의 차이는?
짐승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는 중생은 인간을 포함하여 마음이 있는 유정(有情)한 생물이다. 중생보다 범위가 더 넓은 듯한 군생은 마음이 있는 생물은 물론 세상천지 모든 생명체를 망라하는 낱말인 듯하다. 불교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이나 요익중생(饒益衆生)이 수직적으로 내려가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는 뜻이라면, 선교의 접화군생은 수평적으로 들어가 나 자신마저도 군생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매우 큰 차이다.
실제로 풍류도를 실천했던 화랑들은 접화군생하는 세 가지 교과목을 통해 조정에 천거되었다.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첫 번째, 도의(道義)를 서로 갈고 닦는 것이다. 두 번째, 노래와 음악인 가락(歌樂)을 서로 즐기는 것이다. 세 번째, 멀리까지 산수를 유람하는 것이다. 이 셋은 현대판 ‘국영수’로 추락하고 말았다. 화랑들은 이렇게 접화군생하며 훌륭한 인간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동남권 변방의 신라가 삼국통일한 원천에는 풍류의 정신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히!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