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사·조종수가 규명위서 밝혀
- 당시 기소유예 … 사건 축소 의혹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의 대표적인 ‘유언비어’였던 군 탱크-민간 택시 간 충돌 사고가 ‘역사적 사실’로 확인됐다. 군이 사고의 축소·은폐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돼 당시 상황을 증언할 목소리를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979년 10월 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계엄군의 탱크와 택시가 충돌해 민간인이 크게 다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위원회는 당시 택시 기사 김모 씨와 전차 조종수 백모 씨로부터 당시 사고의 증언을 받아냈다. 이 사고는 검·경 자료에 단편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증언이 나오면서 명백한 역사의 한 사건으로 인정받게 됐다.
군·검의 기록과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부마항쟁의 여파를 막기 위해 정부는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시 계엄군은 종합정비창(현 부산지법 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전차를 옛 부산시청(중앙동) 앞으로 옮겨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전차 2대와 장갑차 1대, 지프차 등이 나섰다. 그날 이동 과정 중 오전 9시30분 부산진구 전포동 철도고가(현 송상현광장) 교각 아래에서 전차와 승객 2명을 태우고 서면으로 향하던 김 씨의 택시(포니2)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철도고가 앞 도로는 왕복 6차로였다. 택시는 좌회전하기 위해 1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차로에서 달려오던 전차가 철도의 교각을 피하려다 택시를 들이받았다고 한다. 이 사고로 택시의 타이어가 내려앉고, 택시 후미에서 뒷좌석까지가 심하게 파손됐다. 승객은 뒷좌석(왕모·당시 26세)과 앞좌석(박모·당시 42세)에 타고 있었다. 김 씨는 당시 조수석에 탄 승객이 실명하는 등 부상 정도가 더 심했던 것으로 증언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계엄군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며 시민에게 피해를 끼쳤는데도 이를 은폐하려 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군과 검찰은 전차를 몬 백 씨가 택시 승객에게 상해를 입힌 것이 인정되지만, 전차는 전방 주시가 어려워 과실이 적다고 봤다. 또 택시가 탱크를 추월한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김 씨 증언과는 상반되는 대목이다. 또 군은 피해 당사자 간의 접촉을 가로막았다. 김 씨가 다친 승객과 만나려 했으나 군이 저지했다는 것이다. 백 씨 또한 피해자를 방문하려 했지만, 군이 만류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당시 이 사고를 보도한 언론이 없었던 점도 군의 사고 은폐 시도를 추정해볼 만한 근거라고 본다.
위원회 차성환 상임위원은 “군의 미심쩍은 사고 처리 과정을 파악하려면 당시 부상당한 승객들을 조사해야 한다”며 증언 참여를 당부했다. 신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