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취직 꿈꾸던 평범한 학생
- IMF사태 이후 벤처기업 입사
- “김기사앱 누가 쓰겠나” 회의적
- 스마트폰 최적화로 반전 일궈
- 사용자 늘었지만 투자사 냉담
- 유료화 이탈률 커 무료 재전환
- 자금난 속 뚝심으로 제 길 걸어
- 카카오에 626억 매각 벤처신화
- “삶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 상상
- 저돌적으로 성공 문 두드려야”
부산 출신 3인방이 6년 전 국내에서 보기 드문 벤처 신화를 써 화제가 됐다. 2010년 모바일 내비게이션 선두주자이자 다운로드 건수 1000만을 기록한 ‘김기사’를 출시해 2015년 카카오에 매각한 록앤올 공동대표 박종환·김원태·신명진이다. 매각금액 626억 원도 놀랍지만 벤처기업이 놀라운 수익을 낸 초창기 사례였기에 지금까지 회자된다. 부산대 컴퓨터공학 전공 대학원 선후배인 3인방은 벤처 CEO→다음카카오(내비·모빌리티 부문)를 거쳐 2019년 창업을 돕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김기사랩’을 운영 중이다. 후배들의 성공을 뒷바라지하는 김기사랩의 박종환(50) 공동대표는 청년들을 향해 “우리 모두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상상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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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를 다음카카오에 매각한 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김기사랩을 설립한 박종환 김기사랩 공동대표가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인생, 창업 노하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찬영 PD |
■영원한 것은 없다
박 대표 역시 한때 안정적 직장을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은행 전산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은행권 취직을 꿈꿨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7년 IMF외환위기.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일부 은행마저 파산했다. 박 대표는 결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1년 뒤 김원태 대표와 함께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만드는 벤처기업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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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에서 근무할 당시. 연합뉴스 |
“벤처와의 첫 만남이었죠. 일반적인 기업 문화와 완전히 달랐어요.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고, 회사가 잘되면 구성원도 잘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어요. 특히 굳건했던 은행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어차피 세상에 망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벤처행을 택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현실에 안주했을지 몰라요. 요즘 청년들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데, 그럴수록 좀 더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삶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세 친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록앤올을 설립해 김기사앱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당시 국내 내비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평가받았다. 많은 투자사가 “누가 작은 기업이 만든 서비스를 이용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 사람은 반대로 생각했다. “이제 막 보급이 시작된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내비는 거의 없었습니다. PC 버전을 그냥 옮기는 수준일뿐 스마트폰이 가진 기능과 제대로 연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또 대기업이 제공하는 내비 서비스 상당 부분이 과거 다니던 벤처기업에서 우리가 만든 것이었어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더 잘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예측은 적중했다. 사용자가 한 달에 수십만 명씩 늘어났다. 그래도 투자사들은 여전히 냉담했다. 내비게이션은 수익 창출 구조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간 유료화를 시도했지만 이탈률이 높아 무료로 재전환 했다. 투자금이 전무하자 록앤올은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수주해 운영비를 충당했다. 박 대표 역시 자금을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김기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부터 험난한 길을 예상했습니다. 내비로 돈 벌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김기사를 하지를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내비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이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어요. 당장은 돈을 벌지 못해도 묵묵히 제 길을 가면 언젠가 알아줄 때가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묵묵히 버틴 결과 3년 만에 첫 투자를 유치했다. 5년 뒤에는 다음카카오가 손을 내밀었다. “택시 호출서비스를 준비하던 다음카카오가 ‘택시용 내비’가 필요하다며 서비스 연동을 제안했습니다. 연동을 했더니 시너지 효과가 바로 났어요. 인수합병(M&A) 역시 기쁜 마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김기사는 현재 국내 스마트폰 상당수가 채택한 카카오 지도·내비·카카오T의 바탕이 됐다. 김기사가 없었다면 새로운 모빌리티 생활이 훨씬 더 늦게 안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메신저 대화 도중 약속 장소 위치를 보내고,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대신 앱을 켜잖아요. 불과 5년 만에 우리 생활 패턴이 바뀐 거죠. 앞으로 스타트업이 나아가 갈 방향도 사용자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서비스 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한 성격? 추진력으로 승화
인수합병 계약에 따라 세 사람은 다음카카오에서 3년간 일했다. 박 대표는 카카오모빌리티 이사까지 역임한 뒤 물러났다.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생긴 만큼 박 대표는 그간 고생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런데 “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컷 놀고 나니 일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어요. 대기업(카카오)에 있으면서 ‘벤처 문화가 내게 더 잘 맞는다’는 걸 느꼈기에 록앤올 때처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두 친구와 함께 고민했습니다. 마침내 저희가 창업 초기 겪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 ‘김기사랩’을 설립했습니다.”
김기사랩은 스타트업을 발굴한 뒤 기초투자와 자문을 제공해 데스밸리(자금 유치 실패 등으로 인해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실패하는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돕는다. 3년간 26개 기업에 투자했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 창업지원) 운영사로도 뽑혔다. 박 대표가 중요시하는 스타트업 발굴 기준은 ‘대표의 역량’이다. “갓 창업한 회사에서 따져 볼 것은 결국 대표밖에 없습니다. 사업을 키워나갈 만한 열정과 추진력이 있는가, 외부 도움을 잘 흡수할 능력이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김 대표는 부산의 스타트업을 향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달라”고 주문했다.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창업하기 힘든 환경인 것은 맞아요. 투자사나 인력이 다 서울에 쏠려 있으니까. 하지만 이를 잘 극복을 했을 때 훨씬 더 크게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부산 특유의 저돌적인 면이 창업가의 기질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부산사람 성격이 급하다고들 하는데, 이게 오히려 추진력이라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발굴한 부산 기업들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은 고향 후배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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