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사 기자 8년 차에 돌연 퇴직
- 값진 도전 하고 싶어 세계일주
- 다음 직장도 박차고 나와 여행
- 인도서 韓 독립운동사 마주하고
- 국내외 유적·후손 찾기 맘 먹어
- 1년8개월간 250곳 누비며 작업
- 사진작가 첫 보훈문화상 수상
- “도전하는 용기가 인생 바꿨다”
부산 남구 오륙도 해맞이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안내글자가 다 지워진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뒤에 있는 가로세로 1m 정도의 녹슨 철제문을 열면 지하로 통하는 사다리가 기다린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커다란 동굴이 나타난다. SK뷰아파트 옆에 자리한 동굴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수백 명이 동원돼 만들어진 ‘장자등 포진지’. 뜯겨나간 철근이 듬성듬성 보이는 천장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젓갈 담던 통이 고통의 세월을 증언한다. 가해자가 남겨 놓은 명백한 증거이자 애환이 남은 장소인 동시에 ‘잊혀져 가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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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지를 돌며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찍고 있는 김동우 사진작가가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일에 뛰어든 뒤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찬영 PD |
최근 한 손님이 장자등 포진지를 방문했다. 김동우(43)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는 1년 8개월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가의 흔적과 후손을 사진으로 남겼다. 공로를 인정받아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올해부터 부산·경남에 머물면서 독립운동 사적지와 일본군이 남긴 흔적을 렌즈에 담고 있다. 아무도 선뜻 하지 않던 일에 뛰어든 김 작가는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다. 다작(多作)을 해야 대작(大作)이 나온다”고 했다.
■한 번 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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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우 사진작가의 작품들- 멕시코 첫 이민세대 ‘애니깽’을 떠올리며 찍은 멕시코 살리나크루즈 해변. |
서울 출생으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 작가는 2006년 신문사 기자로 입사했다. 직장인 8년 차로 접어들 무렵 ‘나는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의 세계 일주에 나섰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면서도 ‘뒷감당이 무서워’ 상상만 하는 사표 쓰기에 ‘성공’한 김 작가는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젊었을 때 값진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웃었다. 등산과 트레킹 마니아였던 그는 아시아와 북남미는 물론 아프리카의 자연을 마음껏 누볐다.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받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자유”라고 외쳤다고. 여행지에서 느끼고 본 것을 엮어 에세이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2014)와 ‘걷다 보니 남미였어’(2015)도 냈다.
귀국해 기업 홍보담당자로 취직한 김 작가는 금세 다시 사표를 냈다. 사진 작업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 2017년 카메라를 들고 두 번째 세계여행에 나섰다가 인도에서 삶의 전환점이 될 경험을 한다. 뉴델리의 레드포트가 임시정부 광복군 소속 ‘인면전구공작대’와 영국군이 함께 훈련하던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으로부터 암호해독이 가능한 병력을 요청받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참전국 지위를 얻기 위해 보낸 9인이 인면전구공작대다.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소에서 독립운동 역사를 마주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내용이었거든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봤더니 상당히 많았어요. 이런 사실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까워 국외 사적지 촬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흐려져 가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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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임택천 아들 세르히오 임 김. |
김 작가는 멕시코 농장에서 일하며 받은 품삯으로 독립군양성학교를 후원한 이민 세대가 있던 초촐라 농장, 대한민국 공군의 시발점인 미국 하와이 윌로우스 한인 비행학교, 안중근 의사와 11인의 동지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앞두고 결의를 다진 러시아 크라스키노의 단지동맹비 등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장소와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처음에는 사적지만 촬영하다가 세계 곳곳에 정착한 독립운동가 후손도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미국 LA에 안창호 아들 랄프 안과 쿠바 아바나에서 만난 임천택 아들 세르히오 임 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본 최재형 증손녀 타트리야나 박, 러시아 모스크바에 사는 강상진 손녀 스베틀라냐 칸 등. 김 작가가 찍은 독립운동가 후손 사진은 특징이 있다. 배경과 달리 인물이 흐릿하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잊히는 역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역설적으로는 ‘절대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경종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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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익주 후손 다빗 킴. |
그렇게 지금까지 250곳을 다녔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를 헤매다 보니 작업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 “국외 사적지는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개발될 수 있어 빨리 기록해야 합니다. 세계를 돌며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김 작가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대목은 부실한 데이터 관리. “국내의 해외 독립운동 유적 정보 가운데 누락되거나 틀린 것이 많아요. 엉뚱한 곳을 안내해 헛걸음하는 경우도 있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가 이렇게 관리가 안 될까. 이것이 우리가 독립운동사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일까’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행동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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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호 아들 랄프 안. |
이렇게 찍은 사진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몽우리돌을 찾아서’라는 사진전을 통해 공개됐다. 전국에서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촬영은 잠시 미뤄둔 상태. 최근에는 부산도서관 전시회를 목적으로 부산·경남에서 유적지를 촬영 중이다. 독립운동 장소뿐만 아니라 일본이 남긴 상처도 함께 담고 있다.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기록해야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겁니다. 좀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네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도전에 나선 비결이 궁금했다. 김 작가는 “용기를 내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현재 뭘 가지고 있고, 뭘 잘하고와 같은 문제는 2%밖에 차지하지 않아요. 98%가 용기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못 옮기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물론 실패가 두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실패는 자신 안에 쌓여 삶의 밑거름이 됩니다. 계속 시도하세요. 다작을 해야 대작이 나오거든요.”
김 작가는 청년들에게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덧붙였다. “해외를 많이 다니다 보니 한국이 확실히 높은 수준의 국가라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앞으로 더 좋은 나라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해요. 미래는 청년의 손에 달렸죠. 역사에 자긍심을 갖고,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좀 더 값진 도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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