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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청년과, 나누다 2 <8> 박승희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스케이트 벗고 가방 만들다 … ‘빙상여제’의 무한도전

  •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  |   입력 : 2021-05-16 19:56:08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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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전향해
- 3개월만에 국가대표된 ‘도전파’

- 은퇴 후 지도자 길 걷지 않고
- 인생 2막 무대로 패션업 선택
- 작년 가방브랜드 ‘멜로페’ 론칭
- 디자인부터 생산·판매 직접 다해

- “선수시절부터 관심 많았던 분야
- 사랑하는 일에 얼른 도전하세요”

박승희(30). 동계올림픽 한국인 최다 메달리스트이자 최초의 여자 쇼트트랙 전 종목 메달리스트.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지난해부터 가방 브랜드 ‘멜로페’ 대표로 활약 중이다. 국가대표 출신 상당수가 지도자로 전향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박승희의 선택은 과감하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더니 1인 기업가로 3번째 변신을 한 박승희를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박승희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도전하고 경험하라”는 자신만의 인생팁을 전했다.
   
스케이트 선수에서 가방 브랜드 멜로페 대표로 변신한 박승희가 도전의 연속이었던 인생 경험을 전하고 있다. 오찬영PD
■쇼트트랙을 제패하다

박승희는 9살 무렵 언니 승주(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남동생 세영(쇼트트랙 국가대표)과 함께 특기적성 활동으로 스케이팅을 처음 접했다. 재능을 알아본 코치 덕에 11살 무렵 엘리트 선수로 등록했다. “고된 훈련 탓에 놀이처럼 즐겁던 스케이팅이 어느 날 싫어졌습니다.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칭얼댔어요. 그때 어머니가 꾀를 내셨죠.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실전을 한 번만 뛰어보고 결정하자’고. 공식경기에 출전하면서 다시 재미를 붙였습니다. 성인(19살)이 되는 해 열리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1위를 하자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어요.”

   
박승희 빙상계 활약상-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500m 경기에서 1위를 달리다 다른 선수에 의해 넘어지는 모습.
금메달을 향한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훈련하고 등교했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 9시까지 다시 스케이트 끈을 맸다. 만 15세부터는 국가대표에 발탁돼 선수촌 생활. 한창 보살핌받을 나이에 모든 것을 혼자 해결했다. “경쟁에 파묻혀 산 탓에 빨리 어른이 됐다”며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있었다. 박승희는 당시 경험을 자산이라고 여긴다. “힘든 일을 자주 겪었더니 이제는 불의의 사건이 닥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됐어요. 긍정적인 성격도 도움이 됐습니다.”

   
박승희 빙상계 활약상-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후 시상식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박승희는 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에 출전해 동메달 2개(1000·1500m)를 따냈다. 3000m 계주 결승에선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고도 금메달을 놓쳤다. 동료 선수 1명이 중국 선수를 치면서 방해했다는 판정이 나와 실격처리됐기 때문. 금메달만 따면 은퇴하려던 계획은 4년 뒤로 미뤄졌다. “울분이 차올라 죽어라 운동만 한” 박승희는 마침내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개인 1000m·3000m 계주)와 동메달 1개(500m 개인)를 수확했다. 한국인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5개) 타이기록과 한국 여자 선수 중 쇼트트랙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요즘도 ‘대단한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가 대견하죠.”(웃음)

■‘고작’ 스물 여덟임을 깨닫다

   
박승희 빙상계 활약상-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에도 도전했다. 연합뉴스
선수생활을 국내에서 열린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연장했다. 다만 쇼트트랙은 싫었다. 박승희는 “쇼트트랙은 동료들과도 경쟁해야 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국내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두 종목으로 국가대표가 된 선수가 없다는 사실에 도전정신도 불타올랐다. 2014년 10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3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평창에서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쇼트트랙을 계속했으면 메달을 몇 개 더 딸 수 있었겠지만 후회는 없어요. 매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신념입니다.”

17년간 몸담았던 빙상계를 떠난 박승희는 인생 2막의 무대로 패션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기 때문. 선수 시절에도 자주 패션쇼를 관람하거나 쇼룸을 방문했다. 패션 강의를 들으려 집을 나설 때마다 너무 설레었다고. 창업을 고민할 무렵 예기치 않게 ‘번아웃 증후군(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와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무작정 영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번아웃된 뇌가 몸까지 괴롭혔다. 스트레스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이어지던 방황은 제주도에서 2박 3일간 열린 ‘낯선 콘퍼런스’ 참가를 계기로 종지부를 찍었다.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영감을 나누는 과정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동안 ‘내가 패션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주위의 관심도 부담이었고. 2년 넘게 힘들었죠. 그러다 제주도에서 ‘낯선 사람 효과’를 경험했어요.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거나 꿈을 위해 직장을 떠난 분들을 보면서 ‘내가 왜 무서워했지? 고작 28살인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멜로디가 있다

   
조약돌에 영감을 받은 멜로페 가방. 멜로페 제공
첫 번째 도전은 영국에서 했던 스케치를 토대로 가방 만들기. 공방을 찾아 가죽의 쓰임새와 가방 제조과정을 배웠다. 석 달간 고작 가방 하나 만들었는데 자신감은 100% 상승. 생산 공장 섭외와 홈페이지 제작에 두 달 동안 매달렸다. 그렇게 지난해 9월 가방 브랜드 ‘멜로페’가 탄생했다. 디자인은 날개나 지붕·조약돌·만두와 같은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가방이 디자인의 포인트. “매출 변동이 커요. 잘 팔릴 때도 있지만 아닐 때는 반의반도 안 될 때가 있어요. 론칭한 지 9개월밖에 안돼 아직은 배울 게 많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알고 지낸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많은 분께 사랑받을 거라고 믿습니다.”

디자인부터 생산·판매·유통까지 혼자 다 하는 1인 기업이다 보니 바쁘고 정신 없지만 박승희의 얼굴에선 웃음이 넘쳤다. 지난달 백년가약을 맺은 남편(또 다른 가방 브랜드 대표)이 늘 힘이 된다. 박승희는 은퇴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자주하는 편이다. “해야 하는 길 또는 할 만한 길이 아니라 진정 원하는 길로 가야 큰 행복을 느껴요. 새로운 일을 개척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면 저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인가’라는 고민도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빨리 둥지를 벗어나세요.”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제작지원 :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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