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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人 도심갈맷길-세 가지 이야기 <중> 철도 옛 향수길

식민역사이자 단절공간 … 애환의 옛 철길따라 ‘낭만 거리’가 활짝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06-07 19:52:01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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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인(人) 도심갈맷길-세 가지 이야기’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는 ‘철도 옛 향수길’이다. 동해남부선(지금의 동해선) 옛 해운대역에서 해리단길을 거친 뒤 철길을 통해 옛 송정역에 이르는 구간이다. 총 9㎞에 달하는데, 도심 카페골목(해리단길)과 해운대해수욕장, 동해남부선 옛 철길을 걷게 된다. 구간에 있는 장소들은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철도 옛 향수길’ 역시 이야기 자원이 풍부하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게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철도 옛 향수길’의 곳곳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보자.
부산 해운대구 옛 동해남부선 해운대역사 뒤편의 해리단길 일대. 80년 넘게 ‘기찻길 옆 동네’였던 이곳은 개성 넘치는 카페와 맛집 등이 즐비한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서정빈 기자
- 옛 해운대역 해리단길서 시작
- 송정역까지 이르는 9㎞ 구간

- 80년간 소음·먼지 시달린 골목
- 카페·맛집 60곳 즐비한 핫플로
- 단순 상권 넘어 주민 커뮤니티

- 곡물 등 실어나른 동해남부선
- 조선인 희생으로 개발됐지만
- 수혜는커녕 삶은 더 궁핍해져

- 미포·청사포·구덕포 삼포 지나
- 송정에 다다르면 옛 향수길 완주

■ 해리단길 별밤학교의 ‘소통’

옛 해운대역의 역사 왼쪽으로 뚫린 길을 따라가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린다. 더는 예전의 기찻길 옆 우중충했던 동네가 아니다. ‘문화의 감성이 어우러진 해리단길’이다. 해운대역사 뒤편 약 1.3㎢에는 카페와 맛집, 책방 등 6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와 지역공동체가 함께 조성한 골목길이다. 80년 넘게 기찻길의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던, 소외된 주거지였던 이 일대는 알록달록하고 개성 톡톡 튀는 카페가 즐비한 명소로 탈바꿈했다. 동해남부선의 폐선에 따라 과거 꽉 막히고 주변과 단절됐던 철길에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길이 새로 생겼고, 유명 관광지 해운대해수욕장, 구남로와도 연결되면서 접근성이 크게 좋아진 게 한몫했다. 해리단길은 2018년 부산연구원의 ‘부산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19년에는 행정안전부의 ‘지역 골목상권 활성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해리단길은 도시재생 사례 가운데서도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는다.

해리단길은 단순한 골목상권에 그치지 않는다. ‘심장’이 있다. 이 ‘심장’은 해리단길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면서도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다. ‘심장’은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지역 문화·관광 특성과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인 ‘내가즐거운해운대살롱’(해운대살롱·국제신문 지난 2월 24일 자 8면 보도)이다. 해운대살롱은 해마다 가게의 콘셉트를 바꾸며 주민과 해리단길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해운대살롱은 2017년 9월 문을 열었을 때 첫 번째 콘셉트로 소통의 장을 만드는 ‘커피숍’을, 그다음 해에는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공간’을, 그리고 세 번째 콘셉트로 기존 전시공간에 꽃과 강연을 더한 ‘융합’을 각각 내세웠다. 지난해에는 주민에게 인문학 강의를 제공하는 문화강좌 ‘별밤학교’를 해운대구와 함께 진행했다. 별밤학교는 지난해 5∼6월, 10∼11월 ‘뭐라cano’, ‘배움이 빛난 DAY’ 등 강의와 콘서트 관련 104개 강좌를 개설했고, 주민 1350여 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 동해남부선에 얽힌 식민성

해리단길에서 해운대구청 쪽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든다. 고층 건물 ‘숲’ 속에 솔밭예술마을이 있다. 원래 이 터는 일제 강점기 해운대역에서 일하던 철도 노동자가 천막을 치고 살던 곳. 예술마을 이전에는 200∼300년 된 소나무들 사이로 슬레이트집에 13세대가 살았다고 한다. 여기에도 여지없이 개발의 바람이 들이닥치자 해운대구가 오랜 소나무를 보존하고 휴식공간을 만드는 한편 주변 분위기도 바꿀 겸 393㎡ 규모의 소공원을 조성하고 가설 건물도 세워 지역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꾸몄다.

미포(尾浦)로 향한다. 누운 소를 닮은 와우산(臥牛山)의 꼬리 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미포에는 동해남부선 옛 철길이 청사포를 거쳐 송정으로 이어진다. 동해남부선에는 식민지 조선의 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 선행 연구(전성현, ‘일제강점기 동해남부선의 식민성과 지역정치’, 역사와 경계 104, 부산경남사학회, 2017. 157∼193쪽)에 따르면 부산∼포항 간 동해남부선은 애초 1927년 기공, 1934년 전 구간이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1934년 7월에야 부산진에서 해운대까지, 1935년 12월 울산까지, 1936년 12월 경주까지 각각 부분적으로 개통됐고, 마지막 경주∼포항 구간은 1945년 7월에야 완성됐다. 이는 1931년 만주사변 등 정세 변화로 일제가 대륙병참선 신설에 집중했던 결과다. 늦게라도 철길이 놓인 것은 부산과 동래, 울산, 경주 등의 끈질긴 진정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동해남부선 노선과 광궤 개축을 둘러싸고 당시 경상남·북도를 대표하는 부산 상권(부산~경주 측)과 대구 상권(대구~포항 측)이 치열하게 경쟁했고 결과는 부산권의 판정승이었다.

동해남부선의 수혜 대상은 어디였을까. 일본인 중심의 부산 등 대도시와 일본이었다. 철도에 의한 ‘개발과 발전’은 조선인 중심 농촌의 희생을 통한 일본인 중심 도시의 개발과 발전일 뿐이었다. 1930년대 동해남부선 주요 화물의 수송 내역을 들여다보면 쌀을 포함한 미곡과 과일 등은 동해남부선 최대 발착역인 부산진역에 집하돼 대도시 부산에서 일부 소비됐고 나머지는 부산항, 부산역을 통해 경성 등 다른 대도시와 일본으로 유통됐다. 반면 동해남부선 연선 지역에는 주로 보리 등 잡곡류가 내려졌으니, 해당 지역의 곤궁한 밥상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 청사포에는 망부송 전설이

동해남부선 옛 철길을 따라 미포, 청사포, 구덕포 등 삼 포를 지나 송정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이 구간 옛 철길 4.8㎞에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해변열차, 스카이캡슐)가 조성돼 있다. 수려한 해안 절경을 감상하면서 블루라인 파크의 옛 철길을 따라 걸어도 좋고, 미포∼청사포 구간의 경우 문탠로드를 택하는 것도 괜찮다. 문탠로드는 2.2㎞ 구간의 숲속 오솔길이다.

옛 철길을 따라 걸으면 청사포 건널목에 닿는데, 부근은 ‘고양이 마을’로 불린다. 길고양이와 인간이 더불어 사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청사포로 58번 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청사포와 봄’ 카페에서 자주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푸른 모래 포구’인 청사포(靑沙浦)는 원래 ‘푸른 구렁이의 포구(靑蛇浦)’였다. 골매기 할매의 전설과 관련돼 있다. 김 씨 부인은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고 생사도 알 길이 없자, 두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매일 해안가 바위에서 남편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를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청사(靑蛇)를 보내 용궁에서 남편과 상봉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청사(靑蛇)는 여기서 비롯됐는데, 훗날 모래 ‘사(砂)’ 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 씨 부인의 큰 소나무와 그 아래 바위는 망부송(望夫松), 망부암(望夫岩)으로 불린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와 구덕포를 지나 옛 철길을 따라 송정에 닿는다. 송정이란 지명은 조선 후기 광주 노 씨가 해송이 우거진 언덕에 ‘송호재’란 정자를 지었던 데서 유래했다. 동해남부선 역사 중 하나이던 옛 송정역은 1941년 세워진 것으로, 당시 역사(驛舍) 건축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돼 2006년 12월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로 등재됐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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