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3> 우리는 공양간 도반 정미아·이필연 씨

공양간에서 함께한 15년 세월…“밥 짓는 일도 부처님 세상이더라”

  • 김가경 시민기자
  •  |   입력 : 2021-06-17 19:13:56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중앙동 고심정사 공양 책임지는
- 70대 정미아·60대 이필연 보살

- 결혼 후 평탄치 않았던 정 씨
- 사업 실패에 빚까지 힘겨웠지만
- 부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
- 몸과 마음이 편찮았던 이 씨
- 불교 공부 입문하며 절과 인연

- 매일 삼시세끼 차리는 두 사람
- “신도들 맛있다 할 때 피로 풀려”

공양간은 3층에 있었다. 그곳에 들어섰을 때 막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곁에 딸린 방에서 숙식을 하며 공양간을 책임지고 있는 정미아(75) 씨의 법명은 원심미 보살. 범어사 방장 스님이신 지유 스님이 지어주셨다고 했다.
   
부산 중구 중앙동 고심정사 공양간에서 이필연(왼쪽) 씨와 정미아 씨가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스님 공양을 시작으로 점심 재료 준비를 하다 보면 같이 일하는 연조 보살님(이필연·69·부산 중구 중앙동)이 출근을 한다. 두 분이 공양간에서 함께한 세월은 15년. 원심미 보살님은 한산도가 고향이고 이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온 뒤 결혼해 대연동에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연조 보살님은 20대 초반에 중앙동 부잣집으로 시집을 와 지금껏 40계단 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과일을 깎아 방에 앉았다. 며칠 뒤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하는 원심미 보살님에 대한 연조 보살님의 걱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원심미 보살님이 몸 안 사리고 일을 너무 많이 하셔요. 백신 맞고 하루 쉬셔야 할 텐데 재(齋)도 있고 초하루도 있어, 참 큰일이네.” “연조 보살, 걱정하지 마이소. 더한 것도 견뎌냈는데.”

원심미 보살님의 목소리에 과하지 않은 힘이 배어 있었다. 7남매 장녀인 원심미 보살님은 삼촌과 고모 등 대식구가 모여 사는 집안에서 농사일까지 거들며 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당찼고 운동도 잘해 어느 경기든 “미아가 나가면 일등 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배구는 손아귀 힘이 있어 학교를 대표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보살님의 꿈은 여군. 제복 입은 모습이 멋져 꿈을 키웠지만 할아버지가 중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통영에 사는 이모 집으로 나오게 되면서 보살님의 인생은 전환기를 맞았다.

“이모가 통영에 있는 용화사라는 절에 나를 자주 데려 가셨어요. 뭣도 모르고 따라는 갔는데, 자꾸 가다 보니 좋더라구요.” 그러다 일각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일대기를 들었는데, ‘팔상록’이라는 책에 적혀 있다는 말씀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책을 구해서 세 번이나 읽었어요. 그때 충격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분이 있나, 읽고 나니 부처님에 대한 생각만 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밥 해 먹고 학교 다니며 배구 선수까지 하느라 힘들었는데도 부처님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었다고 했다. 그 뒤로 이모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되고 스무 살이 넘어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진주 어느 절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고마운 분이 있더라고요

   
정미아·이필연 두 보살이 장만한 음식이다. 푸짐하고 정갈하다.
“몇 해 겪어 보니 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책만 보고 너무 순수하게 생각을 했지. 부처님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쯤 삼촌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따라 내려갔고 이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야 보살님에 대한 의문이 풀리네. 어찌 저래 사심 없이 사시나 했는데. 보면,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요, 빚 갚느라 참 힘들게 살고 돈도 없고 한데, 저 사람 줘야겠다, 하면 재는 게 없어요, 그냥 주시는 거예요. 진심으로.”

연조 보살님이 본 바에 의하면 생선이나 좀 드실까 회나 고기 같은 것은 거의 안 드신다고 했다. 결혼 후 원심미 보살님의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은 택시회사 다니고 나는 식당을 했는데 참 잘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집도 장만했으니.” “보살님 솜씨 좋지, 부지런하지, 막 퍼주지, 손님들이 좋아라 했겠네요.” 연조 보살님 말에 원심미 보살님이 피식 웃으시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하수 파는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했다. 그때 집도 날리고 빚까지 떠안아 삶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고, 얼마 뒤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초상 치르고 애들하고 막막하게 있는데, 이웃에 가깝게 지내던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왔어요, 나도 아바이한테 받을 돈이 있는데… 하시더니, 차마 달라 소리는 못 하고, 몸만 건강하면 사니까 돈은 천천히 갚으라고 위로의 말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분이 전세금 일부를 더 빌려주고 나머지는 큰댁 조카들이 보태 집을 얻어줘 그 집에서 5년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고마운 분이 계시더라고요. 조카들도 그렇고. 꾀 안 부리고 돈 버는 대로 갚아 나갔지요. 하루 식당을 두세 군데 돌면서 20년 가까이 갚았는데, 그래도 어디서 또 빚쟁이가 나타나요.”

“보살님은 빚 갚는 도사예요. 아저씨도 돌아가셨고, 보살님이 진 빚도 아닌데, 다른 사람 같으면 떼먹고 진작에 야반도주라도 했을 건데.”

그만큼 아저씨를 사랑하셨냐고, 장난처럼 연조 보살님이 물었다. “그저 내 앞으로 떨어진 일이니까 한 거지. 나중에는 빚 갚는 것도 재미가 있더라고요. 하나 끝나면 그리 시원할 수가 없어요.” 아무런 원망도 없이 빚 갚는 이야기를 적금 붓는 이야기처럼 듣기는 처음이었다. 집을 얻어주었던 아주머니는 아직도 이웃에 살고 계시는데, 그 돈 갚았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했다.

■나도 저랬겠구나, 또 공부가 되고

“나는 여태 돈을 받고 일했지, 연조 보살은 영도에 있는 한마음선원에서 돈도 안 받고 15년이나 공양간 일을 했어요.”

대기업에 다녔던 남편 덕에 평탄하게 살았던 연조 보살님은 갑상선 문제로 몸이 너무 아팠고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때 대행큰스님과 연이 닿아 절에 다니게 되면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공부를 대부분 공양간에서 한 셈이라고 했다. “여기 있으면 온갖 사람을 다 겪어요. 나도 저랬겠구나, 하면 또 공부가 되고.”

이젠 아들도 결혼해서 잘 살고 보살님 몸도 건강해졌다고 한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스님이셨는데 중학교 때 절에 가면 산신각 아래 물이 졸졸졸 내려가는 것도 좋았어요. 자주 찾아뵈었는데 저한테는 스님 되라고 안 하시더라고요.”

고심정사(부산 중구 중앙동)는 집에서 가까워 새벽기도 왔다가 인연이 되었고 1년만 해야지, 했는데 그게 어느새 십오 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만두려고 하니까 공양간 소임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해보자 해서 3년 했는데 3년 해도 또 그 모양, 그러다 보니까 보살님이랑 마음이 맞고, 일하는 게 재미도 있고. 지금까지 이러고 있습니다.”

공양간 일을 오래 했어도 두 분 다 점심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침저녁은 괜찮은데, 점심 공양은 신도도 많고 메뉴를 매일 바꿔야 하니까 그게 한계가 있잖아요, 거기다 오신채 안 쓰지요. 옛날에 파 들어가는 거 끓였다가 혼났어요. 여기는 그런 게 철두철미해요. 그래도 드시고 맛있다 하면 하루 피로가 다 풀려요.”

원심미 보살님이 마지막으로 진 빚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그때 세 들어 살던 집이 너무 낡아서 이사를 가려고 알아보니 세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부동산 사장님이 그러지 말고 융자 좀 받아서 집을 사라고 해서, 빚을 졌지요.” 원심미 보살님 스스로 진 생애 첫 빚이었다. 그 빚도 올 7월이면 다 갚는다는 말에 연조 보살님과 나는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보살님!”

   
어느 새 저녁 준비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며칠 뒤 재(齋)가 있다는 날 다시 들렀다. 일 조금 도와드리고 생애 가장 맛있는 비빔밥을 얻어먹었다.

시민기자·소설가 ksh1055254@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3. 3“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4. 4“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5. 5[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6. 6“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7. 7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8. 8"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9. 9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10. 10[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1. 1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2. 2[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3. 3[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4. 4李대통령,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에 “철저 조사 지시”
  5. 5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6. 6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7. 7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8. 8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9. 9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10. 10‘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1. 1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3. 3"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4. 4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5. 5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6. 6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7. 7SK지주 최태원 지분율 3% 하락…최 회장 재산분할 자금 충당
  8. 8카카오 월4900원 멤버십 출시…네이버 쿠팡과 3파전
  9. 9웰컴저축은행도 정보유출…법인고객 정보 2200건 추정
  10. 10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3. 3“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4. 4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5. 5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6. 6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7. 7ADHD 치료제 처방 2년 새 38% 급증…“공부 잘하는 약 없어”
  8. 8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9. 9“차량 흔들린다” 술 취해 소화기로 버스기사 폭행한 60대
  10. 10"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3. 3[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4. 4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5. 5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6. 6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7. 7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8. 8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9. 9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10. 10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우리은행
준비 안 된 '경찰시대'
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