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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기장옛길 스토리 여행 <중> 윤선도·이도재의 길

유배 온 고산(孤山·윤선도)은 문학정신을, 어사 이도재는 애민을 이 길에 새겼네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06-28 19:10:44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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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조문학 최고봉 윤선도
- 6년 동안 기장서 유배 생활
- 황학대 자주 찾아 마음 정리
- 약초 캐 주민들 치료하기도
- 작별의 애환 담은 시도 남겨

- 침몰한 배에서 볏섬 떨어지자
- 굶주렸던 백성들 헤엄쳐 건져
- 관아, 이들 끌고 가 심한 매질
- 어사 이도재, 월매의 호소 듣고
- 백성 풀어주게 하고 폐해 알려

기장옛길 스토리 여행의 두 번째 순서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와 ‘어사’ 이도재(李道宰, 1848∼1909)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길이다. 이는 좌수영 가는 옛길과 연결된다. 기장읍성 남문에서 사라리(기장읍 대라리 사라마을), 무곡리(기장읍 청강리 무곡마을)를 지나 기장읍성과 30리(11.78㎞) 정도 떨어진, 조선 시대 경상좌도 수군본부이던 좌수영(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수영)으로 가는 길이다. 좌수영으로 가는 옛길은 조선 후기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전선창, 지금의 기장읍 대변리 동쪽 바닷가)으로도 이어졌다. 이 주사창(舟師廠)의 동쪽 죽성리에 좌수영에 속한 도모포 만호영(斗毛浦 萬戶營, 두모포영), 즉 두모포 수군기지(두모포진성)가 있었다. 이러한 죽성리 일대가 이번 스토리 여행지다.
   
기장에서 6년간 귀양살이를 했던 고산 윤선도가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는 황학대. 동상과 시비가 세워졌다. 기장군 제공
■ 출장길과 같았던 유배길

기장 죽성리를 이야기할 때 윤선도의 귀양살이를 빼놓을 수 없다. 먼저 귀양살이 형벌에 대해 알아보자. ‘대명률(大明律)’에 따른 조선 시대의 형벌은 크게 다섯 가지로 규정됐다. 대쪽으로 볼기를 치는, 가장 가벼운 형벌인 태형(苔刑), 곤장으로 볼기를 때리는 장형(杖刑),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한 도형(徒刑), 귀양을 보내는 유형(流刑), 목숨을 빼앗는 사형(死刑) 등의 순서였다.

   
유형은 귀양살이 보내는 거리에 따라 2000리(785.45㎞), 2500리(981.8㎞), 3000리(1178.18㎞) 등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이는 드넓은 중국 대륙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므로 땅이 비좁은 조선에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유형은 600리(235.64㎞), 750리(294.55㎞), 900리(353.45㎞) 등으로 정해졌다. 조선 시대 유배를 많이 보냈던 곳은 제주도 거제도 진도 흑산도 남해 해남 등의 순이었다. 부산의 동래는 전국에서 12번째, 기장은 14번째 험지로 꼽혔다. 기장은 서울과 1100리(432㎞)나 떨어진 곳이다. 당시에는 서울과 멀수록 생활 여건이 열악하다고 여겼던 듯하다.

일반 사대부와 관직자의 유배길은 서로 딴판이었다. 일반 사대부는 죄인처럼 취급돼 압송됐는데, 유배길의 소요 경비까지 스스로 해결했다. 이와 달리 관직자는 압송관과 동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의 본가에서 ‘배정’ 받은 유배지로 떠났다. 심지어 유배 길목의 지역 수령들이 필요한 물품과 금전을 제공하기도 했다. 윤선도는 함경도 경원에서 유배지를 옮길 때 지역 수령들로부터 많은 물품 ‘찬조’는 물론 노비 40여 명, 말 20여 마리까지 받았다. 유배길이 아니라 지방 출장 행차와 같았다.

■ 유배지 찾은 동생과 작별

   
이른바 ‘죽성리 앞바다 양곡사건’의 스토리텔링이 녹아 있는 어사암 일대. 기장군 제공
정철(鄭澈, 1536∼1593), 박인로(朴仁老, 1561∼1642)와 함께 시조문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윤선도. 그는 1617년(광해군 9년) 유배지를 함경도 경원에서 기장으로 옮겼다. 32세 때였다. 윤선도는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6년간 기장에 머물렀다. 그의 기장 유배 처소는 지금의 기장읍 죽성리 일원이었던 것 같다.

기장 유배 기간 윤선도는 죽성리의 황학대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수십 그루의 노송이 있는 황학대는 중국 양쯔강 하류의 황학루에서 따온 듯하다. 옛날 신선이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태백 도연명 등 많은 시인이 찾았던 명소이다. 황학대에는 이를 기려 윤선도 동상과 시비가 세워졌다. 또 윤선도는 유배 기간 거처 인근 봉대산에서 약초를 캐 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서울에서 온 의원님’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기장 일광면 삼성리에 있던 삼성대(三聖臺)에도 윤선도의 자취가 남아 있다. 1621년(광해군 13년) 윤선도는 자신의 유배지를 찾아온 동생과 작별하면서 ‘증별소제(贈別少弟)’ 2수를 지었다. 애절한 마음을 담은 이 시에 ‘삼성대’란 이름이 나온다. ‘신유년 8월 24일 삼성대에 이르러 보내면서 지었다’는 것으로, 기장 유배 기간 윤선도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 ‘남천일록’에 보이는 왜성

국가어항인 대변항 일대는 조선 후기 전선을 정박시켰던 주사창의 터다. ‘기장읍지(機長邑誌)’(1899)에 ‘기장현 남쪽 7리(2.75㎞) 되는 곳에 수군 대장 1명, 병선감관 1명, 군기감관 1명, 선직 1명이 관할하던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이 배치되었다’고 돼 있다. 얼마간의 수군과 병선만 배치한 것을 보면, 만일에 대비해 방비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처 두모포영이 1629년(인조 7년) 부산포로 옮긴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기장읍 죽성리에 있던 두모포영의 두모포진성은 원래 토성이었다가 1510년(중종 5년) 석성으로 개축됐다. 좌수영 휘하의 수군 진성으로, 병선의 정박과 물자 보급을 위해 해안에 쌓은 것이다. 하지만 종4품 수군 만호와 병선 16척, 군사 843명을 두었다던 두모포진성은 임진왜란 때 처참하게 깨졌다. 왜군은 두모포진성을 허물어 죽성리 왜성의 자재로 썼다.

죽성리 왜성은 현재 땅 소유자의 철망에 둘러싸여 접근하기 어렵다. 죽성리 왜성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효전(孝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책에도 전한다. 기장 유배 기간의 일상을 깨알 같이 담은 ‘남천일록(南遷日錄)’이다. 심노숭은 죽성리 왜성을 보고 다음과 같이 썼다. ‘왜성은 언덕 위에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우리 고향의 대국령(對局嶺) 같았다. 좌우에 있는 이른바 왜성 터는 계단으로 빙 둘러 있었는데 특별히 볼 만한 것은 없었다. (중략) 깎은 면은 먹줄을 대고 떡을 자른 듯하니, 그들의 기술이 매우 공교로움을 알 수 있다’(정경주 외, ‘옛길 따라 만난 부산’,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2020.12, 66쪽).

■ ‘죽성리 앞바다 양곡사건’

황학대에서 죽성 드림세트장으로 향하면 어사암을 볼 수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그 ‘어사’다. 이곳의 어사는 조선 고종 당시의 이도재다. 1883년(고종 20년) 양곡을 실은 배가 부산포로 가던 중 죽성리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를 본 굶주린 마을 사람들이 헤엄쳐 바닷물에 빠진 볏섬을 건져 먹었고, 이 때문에 관아에 끌려가 심한 매질을 당했다. 당시 경상좌도 암행어사이던 이도재가 진상조사에 나섰는데, 기생 월매가 어사를 설득해 주민들을 풀어주도록 했다고 한다. 어사암 매바위에는 ‘기월매(妓月梅·기생 월매) 이도재(李道宰)’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굶주린 마을 사람들’이다. 전라감찰사를 거쳐 대한제국 때 외부대신 등을 지낸 이도재가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1883년 무렵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국가 재정의 기본을 이루는 전세(田稅), 군포, 환곡을 거두어들이는 일 자체가 엉망진창이었다는 얘기다. 탐관오리는 날뛰고 백성은 주린 배를 채우기 힘들었다.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 없던 나라였다. ‘죽성리 앞바다 양곡 사건’이 빚어진 그 해 고종실록 20년 9월 23일 조에는 암행어사 이도재가 올린 제도 개선안을 의정부에서 고종에 보고하고 윤허받는 내용이 있다. ‘환곡의 폐해’, ‘양전(量田)의 난맥상’, ‘조운(漕運)의 폐단’, ‘동해 연안 각 읍의 바다와 포구의 폐해’ 등이 숱하게 등장한다. 백성을 위한 정치는 어떠해야 하느냐에 관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공동기획 : 기장군·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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