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4> 하늘의 구름을 읽는 방법 조충제 씨

공학도 청년이 노래하는 노인이 되기까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부모님 권유로 전공한 기계공학
- 플랜트회사 근무 시절 이란 파견
- 제품불량 탓 대금 못받고 억류도

- 회사 은행관리로 피치못할 퇴직
- 섀시 공장·건설사 등 도전 쓴맛
- 카페 끝으로 일 관두고 인생 2막

- 15세 때 들은 ‘라 팔로마’에 꽂혀
- 독학으로 1600여 곡 음악 편곡
- 기타줄 튕기며 자신의 인생 노래

중학교 때 배운 구름을 읽는 방법을 기억하며 여전히 하늘의 구름을 살피는 분이 있다. 그는 날씨에 예민한 어부도 아니고 천문학자도 아니다. 20대 인생의 첫 직장은 조선공사이고 50대 이후 실패를 거듭하다 70대 마지막 직장은 동네의 작은 카페. 그곳에서 학창 시절부터 익힌 기타를 치며 자신의 방법으로 1600곡의 국내외 음악을 편곡했다.
   
조충제 씨가 집에서 연주하며 노래하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
처음 조충제(72·부산 남구 용당동) 씨를 뵈었을 때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 계셨다. 그때 카페에 꽂힌 책 한 권을 빌렸는데 뒤늦게 돌려드리는 자리에서 그분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중학교 때 문화반이 있었는데 단체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어요. 저는 그 돈으로 헌책방에서 세계 명작 중 한 권을 사서 읽게 되었지요.”

그렇게 흥미를 갖게 되어 헌책방을 돌며 소설과 위인전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책 읽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늘의 구름을 읽는 방법을 알면서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관련된 책도 꾸준히 찾아 읽었다.

■ ‘독서 소년’, 이란 가다

정작 조충제 씨는 공학도로 평생 중공업 계통에 몸담아왔다. 경남 함안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대구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집안 형님이 크게 출세를 해서다. 대구에 제일 큰 모직회사가 생기면서 육촌 형이 총괄 책임자로 내려오게 된 것.

“모직 공장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니까 동네 사람 전체가 이주했습니다. 육촌 형 처가가 의령 이 씨인데 그 마을 사람도 대부분 대구로 와서 같이 일하고 먹고 자고, 거의 공동체 생활을 했어요.”

그가 기계공학 쪽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 당시 모든 공장이 기계로 돌아가니 남자가 돈을 벌려면 기계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고 적극 권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조선공사에 200명 지원했는데 2명 붙었어요.”

그중 한 명이 조충제 씨였다. 이후 플랜트 관련 회사로 자리를 옮기며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갔다. 플랜트는 전력 석유 가스 등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공급하거나 공장을 지어주는 산업을 말한다.

“저희 회사가 영국 깁스사가 설계한 비료공장을 수주받아 이란에 세계 최대 비료공장을 짓게 됐어요. 그때 이란 혁명의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팔레비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때였는데 서방 세력과 교역을 금지하는 바람에 우리 회사도 공사 중에 쫓겨났어요.”

그러다 보니 이란 내부 경제도 힘들게 되고 외국에서 수입을 다시 하려 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어쩔 수 없이 개방하며 비료공장도 재개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이란에서 교역을 다시 트기 위해 직접 한국까지 찾아와 회사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83년쯤 공사를 완료하고 시운전하라고 하는데 사실 설계대로 공장만 지었지 시운전은 영국 깁스사에서 해야 되거든요. 우리가 못한다 하니까 출국을 안 시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시운전을 했는데 흰 비료가 30%만 나오고 누런 비료가 나와 결국 불량품이 되었지요. 공사 대금도 못 받고 억류되어 있는데 그때 우리 소장님이 대단한 결정을 하셨어요.”

■ 제1막, 기계공업인 시대

   
젊은 날 이란에서 일하던 때의 조충제 씨다. 말하자면 ‘리즈 시절’이다.
이란 정부의 반대에도 끝까지 밀고 나가 공장 자체를 한국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00% 하얀 비료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란에서 난리가 났어요. 한국 최고라고. 공사대금을 바로 주더라고요. 그 돈으로 서울 마포에 회사 사옥을 크게 지었습니다.”

그 일은 한국 중공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조선공사에 재입사하게 된 것은 싱가포르 플랜트 수주 때문이었다. 공사가 끝나고 들어와 보니 회사가 은행 관리에 들어가 퇴직하게 되었다.

“요즘은 도심에 공장지대 있으면 혐오시설이라고 기피하는데 어느 나라든 귀찮고 지저분하고 하더라도 수정해서 쓰면 되는 거지 이 자체를 없애버리면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겁니다.”

더불어 서민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철물점이나 전기 수도 같은 소규모 점포들이 같이 공존해 있어야 도시도 건강하다고 했다.

■ 69세, 편곡과 함께 인생 제2막

   
조충제 씨가 편곡한 악보 모음. 삶의 소중한 동반자다.
그는 87년 이후 부산을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부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작게 시작했다. 알루미늄 섀시 공장, 건설업체 등을 운영했지만 다 실패했다.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으로 함안에 나무집을 직접 지었는데 기둥을 흰개미가 파먹어서 몇 년 뒤 집을 포기하게 되었다.

“공장 짓듯 지었는데 튼튼하기는 해도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혼자 아집대로 짓다 보니 흰개미가 그 짓을 할 줄 몰랐던 거지요.”

조충제 씨가 음악 편곡을 하기 시작한 것은 69세부터였다. 인생에서 돈 버는 일을 끝내며 작정하고 그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15살 때 영화 ‘블루하와이’를 처음 봤어요. 엘비스 프레슬리, 조안 블랙맨 주연의 음악 영화였어요. 엘비스 프레슬리가 보트를 타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얼마나 멋지게 들렸는지.”

그 노래를 찾으려고 3년을 노력했다고 한다. 어느 날 집안 형님 한 분이 그 노래를 부르기에 물어보니, 돌아온 답이 ‘라 팔로마’였다.

■ 기타여, 나의 동반자여

“그 이후 서점을 다 뒤졌습니다. 아마 62년도 일 겁니다. 드디어 찾았지요. ‘세계 명곡 330 곡집’이라고 오페라, 아리아 등 그때까지 전 세계에 나왔던 좋은 노래를 다 모아 놓은 책에 그 노래가 있었어요.”

그 당시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음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악보에 계명을 붙여가며 그 노래를 스스로 익혔다. 입으로 계명을 부르니 노래가 되고, 영화에서 본 그 감동이 그대로 느껴졌다고 한다.

“집 근처에 기타 공장이 있었는데 어느 날 소달구지에 기타를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거예요. 마부한테 사정해 그 당시 950원 주고 기타 하나를 샀어요.”

독주법을 배울 데가 없어 자신의 방법대로 멜로디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반주 없이 친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제 방식대로 밀고 나갔지요. 멜로디의 악기하고 제 목소리하고 같이 공명을 이루면서 기가 막히게 좋은 감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조충제 씨 방식으로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기 위한 이 모든 작업은 오로지 기타를 동반자 삼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위한 거였다.

“처음엔 집사람이 곁에서 좀 듣더니 요즘은 그냥 다른 방으로 가버려요.” 그래도 전보다 실력이 늘었다고 슬쩍 한마디 한다고 했다. 그 많은 편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고.

■ “요즘 관심? 우주 암흑물질!”

“지식이라는 것도 속에 쌓아 두면 못난 힘으로 작용합니다. 부지런히 내보내야 돼요.”

그 중화 작업 중 하나가 노래일지도 몰랐다. 그는 요즘 우주의 96%를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매료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같이 이야기할 친구가 없어요. 노래도 그렇고, 나이 들고 다 귀찮아해요.”

   
마지막까지 내가 잘 듣고 있어서인지 헤어지며 그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쓸쓸한 그의 무대에 첫 관객이 되는 것은 영광이었다.

시민기자·소설가 ksh1055254@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3. 3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4. 4[사설]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5. 5‘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6. 6‘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7. 7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8. 8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9. 9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10. 10매표소 오픈런…레드카펫 ★ 보려 외국인 새벽부터 달려왔다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3. 3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4. 4여야, 국감서 알래스카 LNG 사업 집중 추궁
  5. 5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6. 6이 대통령 "북극항로 시범운항 선박 귀항 부산의 미래 깃발, 신경써달라"
  7. 7‘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8. 8부산 민주당 "주진우, 암살자(들) 부산영상위 시사회 사실왜곡 비판"
  9. 9[속보]조희대 작심 발언 “국회·대통령은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 못 해”
  10. 10검찰개혁, 중수청장 임명 두고 커지는 집안싸움
  1. 1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2. 2‘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3. 3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4. 4롯데백화점, 업계 첫 외국인 매출 1조 ‘포문’
  5. 5금감원 “AI 해킹 시도 IP 28개 확인”
  6. 6부산 극지해양 전문강사 “현장 능력 키워요”
  7. 7부산 청년기업 ‘DPP(디지털제품여권)’ 국내 첫 상용화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6일
  9. 9보스턴다이내믹스, 글로벌 AI 전문가 CEO로 영입
  10. 10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3. 3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4. 4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5. 5전기車 높아진 인기에 예산 동나…부산시, 하반기 1520대 더 지원
  6. 6전재수 시장, 소통 행보…사흘 연속 생중계 회의(종합)
  7. 7부산중수청장 “정치 중립성·수사 독립성 엄격히 지키겠다”
  8. 8양산시보건소 일반진료 줄인다
  9. 9“침묵하는 대주주, 대화 자리 나서라”
  10. 10박완수 경남도지사 “행정통합 위해 부울 시장 설득”
  1. 1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2. 2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3. 3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4. 4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5. 5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6. 6“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7. 7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8. 8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9. 9‘손흥민 A매치 한국인 최다 골’ 우즈베키스탄에 2-0 완승
  10. 10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누이센터·대봉산 휴양밸리 등 준비해 온 사업, 완성할 차례”
준비 안 된 '경찰시대'
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