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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21> 이정미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전 헌재 권한대행

최연소 헌재 재판관…“통진당 해산·박근혜 탄핵 가장 고뇌”

  • 김일출 Systems Wisdoms Korea 대표이사
  •  |   입력 : 2021-07-25 19:26:0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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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언니 덕 법조인의 길 걸어
- 공복의식은 교육자 부친 영향
- 두 차례 헌재소장 권한대행
- ‘헤어롤 판사’ 닉네임도 얻어

- 판사 시절 소통 통한 합의 최선
- 소송 쌍방 웃으며 나갈 때 보람
- 직장생활·가사 병행 맘 고생
- 로펌 변호사 생활 … 평안 얻어

- 부산, 해사법원 설립 최적지
- 균형발전·현장 중심 측면 당위

이정미 법무법인 로고스(유) 상임고문은 49세에 최연소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었다. 재임 중 두 차례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적인 통합진보당 해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재판에서 주심과 재판장을 각각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잊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공복의 자세’로 맡은 소임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퇴임 후 모교에서 잠시 강단에 섰다. 지금은 로고스의 상임고문 변호사다. 먼 길을 거쳐 돌아온 자리다. 두 판결을 말하자 “헌재로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라고 했다. 역사적 사건 현장에 서야 했던 이들은 대개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공직자는 더욱 그렇다. 영광은 잠시이고 부담은 평생이다. 국가체계 속에서 이뤄지는 일은 개인의 의지나 처지를 뛰어넘는다.

   
이정미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시절 힘들었던 판결에 관한 소회를 털어놓고 있다.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이 고문이 개인을 넘어 공직자로서 공복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에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이 고문은 울산화학단지 인근에서 아버지 이재만과 어머니 김성희의 4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무오사화 때 난을 피해 울산으로 찾아 든 경주 이 씨의 후예다. 아버지는 평생 교편을 잡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은 처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고단한 농부의 일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1937년 농고(당시 울산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가 되어 46년6개월을 보냈다. 30대에 교장이 되었다. 자신이 졸업한 울산 대현초등학교에서 1986년 2월 23일 정년퇴임했다. 녹조훈장(1978)과 국민훈장 동백장(1986)을 받았다. 그리고 한 권의 자서전을 남겼다. 출판기획 두레에서 1998년 1월 출간된 ‘춘계만보(春溪漫步)’다. 이 책에서 그는 “공무원은 보수의 고하에 관계치 않고서 본무에 전력투구하여 국민이 추호도 동요치 않도록 하여 국리민복을 조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리라. 공무원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157쪽)고 강조했다.

이 고문을 서울 강남 도심공항타워 14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지난달 14일 만났다. 그는 “부울경의 좋은 대학과 병원, 문화시설이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을 막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에서 보낸 시간이 만만치 않았겠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고 있다. 국제신문 DB
▶많은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못지않은 일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이다. 민주주의 하의 정당 정치사에서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정당 해산이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없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 때 나는 주심 재판관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엄청난 무게의 짐을 졌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판결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참으로 곤혹스럽고 힘든 시절이었다. 매사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책임감과 부담감 또한 매우 컸다. ‘헤어롤 판사’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그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실수한 것인데 크게 보도되고 오래 인구에 회자되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2017년 3월 정년퇴임했다. 모교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이제는 로펌의 (상임고문) 변호사로 소송도 맡고 여느 변호사와 별다를 것 없는 일을 하며 산다.

-헌법재판소와 재판관의 역할은 매우 무겁다.

▶헌법재판소는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속의 헌법재판 기관으로서 뚜렷이 자리를 잡았다. 외국에서도 헌법재판의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 헌재의 제도를 배우려 애쓴다. 헌재는 잘못된 법률과 제도를 개선하고 우리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두 차례 헌재 소장 권한대행을 지냈다. 첫 번째 권한대행은 15일 정도로 짧았다. 차기 소장도 내정되어 있었던 때여서 부담이 크지 않았다. 두 번째 권한대행은 두 달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재판을 진행 중이어서 부담이 무척 컸다. 헌재 소장 권한대행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재판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인용 의견을 냈다. 수개월간 기록 검토와 증거 조사를 거쳐서 법리에 따라 판단했다. 재판관 8인 전원 일치였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역시 1년 가까이 기록 검토와 증거 조사를 거쳤다.

-판사 재직 때 소통을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판사로서 부산 울산 대전과 서울에서 근무했다. 소송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썼다.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다. 나뿐 아니라 모든 판사가 다 그러려고 한다.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서 이루어지는 소송이 어느 한 쪽에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가능한 양쪽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고 절충점을 찾아 합의에 이르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잘된 판결도 합의만 못 하다. 서로 웃으며 악수하고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이 컸다.

-법조인의 길로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내 인생의 길을 안내한 이는 언니 이연숙(66)이다. 일찍이 부산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부산대를 거쳐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동경대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부산 동의대 교수를 지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울산여상으로 진학해 은행원의 길로 갔을 것이다. 당시 울산의 분위기가 그랬고, 지역의 교사였던 아버지 역시 은근히 이를 바라셨다. 그러나 언니의 강권으로 태어나고 자란 고향 울산을 떠나 당시 입학시험을 통해 선발했던 마산여고로 진학했다. 고교 시절 종일 수학 문제를 풀 정도였다. 수학을 너무 좋아해 수학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예기치 않았던 부마항쟁이 발생하고, 10·26사태가 터지면서 당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때 막연하나마 법대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박봉의 공무원 아버지와 그 생계를 떠받치느라 어머니는 손수 배밭을 가꾸며 종일 고단한 노동을 하고 살았다. 당연히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4년 전액 장학금 덕분에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운 좋게 졸업하자마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 일은 어떤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가난한 초등학교 교사의 막내로 태어나 과수원 농사를 도왔다. 초등학교 때는 아예 공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언니, 오빠들과 방과 후 일을 거들었다. 2000여 평 정도에 200주 정도의 배밭이었다. 열매 솎아내기, 가지 바로잡기, 봉지 채우기, 따서 상자에 채우기, 봉지 만들기와 봉지 묶을 깡통 자르기 등 사시사철 일이 끊일 새 없었다. 그래도 만개한 하얀 배꽃을 밤에 마주하면 가슴이 설레었다. 아버지가 꽃과 나무를 좋아하셨다. 마당 가득 온갖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천리향과 채송화, 모란, 다알리아 등이 가득했다. 가을이면 국화 향이 온 집안에 넘쳤다. 당시에는 울산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마당에 가득 쌓인 눈으로 눈싸움도 하고 집 앞 연못에서 썰매도 탔다. 봄이면 들과 산으로 쑥이며 산나물을 캐러 다녔다. 진학이 어려웠던 형편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날듯이 기뻤다. 장성해 아이들을 얻었을 때 가장 좋았다. 어린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처지여서 오랫동안 안타까웠다. 아파도 제대로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다. 보모가 아이들을 방치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때도 있었다.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는 것은 판사인 내게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퇴임 후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요즘이 행복한 때다. 아이들도 이제 다 제자리를 잡았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부산 울산 대전에 근무하며 서울에 아이들을 두고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때와 통합진보당 해산과 대통령 탄핵 사건을 재판할 당시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시기였다. 2년 전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주말에 시간이 될 때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가족과 근교로 여행을 떠난다. 나이 환갑이 되어 비로소 얻은 평안이다.

-부산에서 해양수산부와 해사법원을 유치하려고 한다.

   
김일출 Systems Wisdoms Korea 대표이사
▶여러 도시가 치열한 경쟁을 한다고 들었다. 해사법원의 경우 법원행정처에서 설립을 가시화하고 있다. 부산이 유력한 후보지라고 생각한다. 해사 사건의 80%가 부산지역에서 일어난다. 대전에는 특허법원이 있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 기능의 분산과 현장 중심이어야 한다는 양 측면에서 해양수산부와 해사법원의 부산 유치는 타당성이 매우 높다.


◇ 이정미 상임고문은

▷울산 출생 ▷학력 : 울산 대현초등 학성여중 마산여고 졸업(1980) 고려대 법학과 졸업(1984) ▷경력 : 사법연수원 16기 수료(1987.2), 서울지법, 서울고법 판사, 울산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현직 : 법무법인(유)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2020.7~), 사회복지법인 씨제이나눔재단 이사(2020.7~), 재단법인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2020.3~), 국립암센터 이사(2019.4~), 금호석유화학㈜ 사외이사(2021.3~)

김일출 Systems Wisdoms Korea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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