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우회 결성 등 실상 알려
- 인권위 ‘2세 실태조사’ 기여
고(故) 김형률(1970~2005·사진)은 피폭 2세의 ‘전태일’이라 불린다.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을 앓던 그는 피폭 2세 문제를 처음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 2005년 사망할 때 까지 원폭 2세대 환우회(환우회)를 이끌었다.
고인은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쌍둥이형은 출생 1년6개월 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김 씨는 2002년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원자폭탄 후유증을 앓는 피폭 2세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우리나라에 피폭 2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환우회를 조직한 김 씨는 2003년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에 피폭 2세 실태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피폭 2세에 대한 건강조사에 나선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 씨가 숨진 해인 2005년 피폭 2세를 대상으로 소규모 인터뷰와 우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직까지 피폭 2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 원폭피해자협회 류병문 부산지부장은 “김형률의 노력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다행히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한양대병원에 의뢰해 5년간 피폭자 후손의 유전체 검사를 하는 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된 피폭자 후손 건강조사는 대부분 인터뷰나 우편설문조사 형태로 진행됐다. 의·과학적 조사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부 측은 “이번 조사를 통해 실제 피폭의 영향이 후손에게 실제로 유전되는지 알아보려 한다. 앞선 연구들은 설문·인터뷰 중심이어서 과학적인 근거가 약했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연구에서 ‘고통의 대물림’이 증명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이나 전쟁을 일으킨 일본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길고 긴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피폭 2·3세들이 “김형률이 요구했던 것처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선지원 후입증’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