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청년과, 나누다 3 <8> 정상규 역사작가

폐지 줍는 국가유공자에 충격…'잊힌 애국지사' 발굴 나서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고 한다. 2017년 공개된 ‘3·1운동과 대한민국 100주년 마스터 플랜 수립’에 따르면 월소득 200만 원 미만의 독립유공자 후손은 전체의 74.2%. 독립운동가 발굴과 후손들에 대한 예우도 갈 길이 멀다.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묘지에 묻힌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는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조차 받지 못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는 ‘봉오동 전투’ 101년 만인 15일에서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됐다. 정상규(36)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20대부터 7년간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있는 역사작가. 2015년에는 공군 장교 신분으로 ‘독립운동가’ 앱을 만들었다. 50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인터뷰해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를 위한 민간재단 설립의 꿈을 가진 정 작가는 “역사를 알아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정체성이 생기고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7년간 50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만난 정상규 역사작가가 독립운동가 후손의 실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찬영 PD


●전환점이 된 미국 유학
정 작가는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최연소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딴 그의 꿈은 구글 입사. 2학년 때는 수학과로 전과. 친구들이 자신을 ‘천재’라고 불렀다. 수업 내용이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었기 때문. 3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자신을 뛰어넘었다. “자존감이 지하 100m 아래로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두려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경쟁의식과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그의 하소연을 들어준 사람은 도서관 편의점에서 일하던 야간 아르바이트생 닉.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감정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닉은 ‘네가 말한 모든 불행과 아픔조차 부럽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청소년 시절을 소년원에서 보낸 닉은 정 작가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매일 새벽 편의점으로 출근. 닉은 고마움의 표시로 유통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빵과 우유를 줬다. “유학 생활 통 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입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순수하게 배움을 나눴기 때문이에요. 교육 비영리단체 ‘MASA(Math And Science Asoociation)’를 설립한 계기였습니다. 제 인생의 변곡점이 됐던 순간이었죠.”

정 작가가 쓴 ‘미국 유학의 모든 것’은 유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은행 계좌 만드는 법부터 교수님에게 이메일 보내는 법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담았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 유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잊혀진 독립유공자
졸업을 앞둔 정 작가는 어머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귀국하라는 것. 미국 생활을 정리한 그는 2013년 공군 학사장교 131기로 임관해 강원도 GOP(남방한계선)에 배치됐다. 여기서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부대 근처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만났어요. 그의 목에 무공훈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장교 교육대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2015년 ‘독립운동가’ 앱을 만든 이유다. 앱에는 400여 명이 넘는 독립운동가 정보를 담았다. 보훈회관이나 독립유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보훈 GPS’ 기능도 넣었다. 어릴 때 프로그래밍을 배운 덕에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에 한국 역사를 다룬 앱이 거의 없었어요. 내가 독립운동가 앱을 무료로 운영하면 다른 누군가가 더 발전된 앱을 만들거라는 믿음이 컸습니다.”

현역 군인 신분인 탓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겪었다. 기무사에서 ‘의열단 등 좌파 계열 독립운동가는 삭제하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 전역을 앞둔 정 작가는 말년 휴가를 내고 버텼다. 그 결과 이 앱은 5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민족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 할 것 없이 광복을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막상 기무사에서 압박이 들어오니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독립운동가’ 앱 제작 당시 정상규(가운데) 작가. 정상규 작가 제공
●공동체를 위한 삶
전역 후 정 작가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 발굴 작업에 뛰어들었다.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알게 된 독립운동가 후손들과의 인연으로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2017)라는 책도 썼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 67명을 다뤘다. 후속작 ‘독립운동 맞습니다’(2019)에는 6년 간 인터뷰한 513명의 독립운동가 후손의 증언이 담겼다. 야산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 묘소 4500여 개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작업도 주도했다.

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잊혀져 있는 독립유공자들이 마침내 서훈을 받을 때 가장 기뻤습니다. 홍재하·신홍균·안맥결 선생이 대표적이죠. 그들의 후손이 저를 만나러 와 감사인사를 전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처우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사료 수집과 법 개정이라고 했다 “서훈 심사 과정이 굉장히 불합리하고 복잡해요.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거든요. 국내 독립운동 자료 대다수는 6·25 전쟁 때 불타 버려서 더 힘듭니다. 해외 자료를 찾으려면 일본이나 중국·러시아를 뒤져야 하는데 개인이 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고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합니다.”

누구도 선뜻 도전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 작가는 인터뷰 내내 ‘공동체’를 강조했다. “저는 미국 유학도 가고, 좋은 대학도 나왔으니 혜택 받은 거잖아요. 성공한 비영리단체(NGO)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공동체를 위해 재능을 나누는 사람이 사회로부터 더 인정 받는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느 누군가 저를 보고 ‘저 길을 가도 되겠구나’ 생각해준다면 너무 기쁠 것 같습니다.” 이동윤 기자 dy1234@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2. 2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3. 3“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6. 6[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7. 7시민이 만든 '부캉이' 공공 자산으로…부산시, 상표권 독점 막는다
  8. 8“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9. 9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10. 10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3. 3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4. 4[속보]우크라 외무 “한국 중요해…외교적 오해 해결바라”
  5. 5김민석 부산 찾아 “전재수 시정 성공시키겠다”
  6. 6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7. 7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8. 8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9. 9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10. 10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삼성중공업, 올해 LNG운반선 20척 수주. 글로벌 경쟁력 입증
  4. 4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5. 5최태원, 9440억 규모 SK 지분 매각 결정…노소영 재산분할액과 같은 규모
  6. 6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7. 7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8. 8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9. 9국민·하나·부산은행도 당했다…금융권 해킹 피해 확산(종합2보)
  10. 10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4. 4‘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5. 5시민이 만든 '부캉이' 공공 자산으로…부산시, 상표권 독점 막는다
  6. 6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7. 7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8. 8김해시민 민생회복지원금, 2주 만에 지급률 80% 돌파
  9. 9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10. 10“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성적 부진·단장 공백·감독 결별·구단주 경고…김해FC ‘사중고’
  6. 6자존심 지켰다…남자 양궁 리커브 단체전서 금메달
  7. 7LoL 대표팀, 대만 꺾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무실 세트 제패
  8. 8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9. 9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10. 10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우리은행
준비 안 된 '경찰시대'
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