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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년간 50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만난 정상규 역사작가가 독립운동가 후손의 실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찬영 PD |
●전환점이 된 미국 유학
정 작가는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최연소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딴 그의 꿈은 구글 입사. 2학년 때는 수학과로 전과. 친구들이 자신을 ‘천재’라고 불렀다. 수업 내용이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었기 때문. 3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자신을 뛰어넘었다. “자존감이 지하 100m 아래로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두려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경쟁의식과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그의 하소연을 들어준 사람은 도서관 편의점에서 일하던 야간 아르바이트생 닉.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감정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닉은 ‘네가 말한 모든 불행과 아픔조차 부럽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청소년 시절을 소년원에서 보낸 닉은 정 작가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매일 새벽 편의점으로 출근. 닉은 고마움의 표시로 유통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빵과 우유를 줬다. “유학 생활 통 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입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순수하게 배움을 나눴기 때문이에요. 교육 비영리단체 ‘MASA(Math And Science Asoociation)’를 설립한 계기였습니다. 제 인생의 변곡점이 됐던 순간이었죠.”
정 작가가 쓴 ‘미국 유학의 모든 것’은 유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은행 계좌 만드는 법부터 교수님에게 이메일 보내는 법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담았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 유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잊혀진 독립유공자
졸업을 앞둔 정 작가는 어머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귀국하라는 것. 미국 생활을 정리한 그는 2013년 공군 학사장교 131기로 임관해 강원도 GOP(남방한계선)에 배치됐다. 여기서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부대 근처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만났어요. 그의 목에 무공훈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장교 교육대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2015년 ‘독립운동가’ 앱을 만든 이유다. 앱에는 400여 명이 넘는 독립운동가 정보를 담았다. 보훈회관이나 독립유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보훈 GPS’ 기능도 넣었다. 어릴 때 프로그래밍을 배운 덕에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에 한국 역사를 다룬 앱이 거의 없었어요. 내가 독립운동가 앱을 무료로 운영하면 다른 누군가가 더 발전된 앱을 만들거라는 믿음이 컸습니다.”
현역 군인 신분인 탓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겪었다. 기무사에서 ‘의열단 등 좌파 계열 독립운동가는 삭제하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 전역을 앞둔 정 작가는 말년 휴가를 내고 버텼다. 그 결과 이 앱은 5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민족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 할 것 없이 광복을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막상 기무사에서 압박이 들어오니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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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앱 제작 당시 정상규(가운데) 작가. 정상규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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