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6%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수십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모집한 뒤 잠적한 인력공급업체 A 대표(국제신문 지난 13일 자 8면 보도)가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돈으로 불법 사채놀이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 A 대표의 사기 행각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 가운데 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까지 나와 경찰의 ‘수사 속도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이 A 대표 가방에서 발견한 전단. 여기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피해자들은 A 대표가 불법 사채를 운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일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6일 A 대표의 회사 이름으로 된 의문의 전단을 발견했다. 그날 피해자들은 은신 중이던 A 대표를 부산 수영구 한 당구장에서 찾았다. 당시 A 대표는 ‘긴급자금지원’이라고 적힌 전단을 가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기능공 임금 선지급. 1개월 이상 근무, 신용불량 무관’이라는 내용이 쓰여있다. 전단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자 ‘변경된 번호’라는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바뀐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연락은 닿지 않았다.
애초 A 대표는 자신이 1군 건설사에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사업을 한다고 소개했지만, 실상은 건설 노동자에게 불법 사채를 빌려줘 고리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B 씨는 “A 대표가 투자금으로 건설 현장에서 사채놀이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렵게 A 대표를 찾았지만, 피해자들은 그를 경찰에 인계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체포영장 발부는커녕 피고발인 소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A 대표 또한 “나를 붙잡아두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터였다.
이날까지 부산진경찰서에 들어온 A 대표 관련 고소는 16건으로 피해액은 28억 원에 달한다. ‘부산진구 초읍동에서 건설이 추진 중인 한 아파트 부지에 알박기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금 명목으로 땅 살 돈을 뜯어낸 경우도 있다. A 대표는 과거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극을 벌인 전과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끊는 피해자까지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A 대표의 여자친구(30대)가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그는 A 대표와 혼담을 나눌 정도로 관계가 두터워 자신도 1억3000만 원가량의 돈을 투자했지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아 정확한 사고 계기를 알 수 없지만, 피해자들은 그 또한 A 대표 탓에 심적 고충이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피해자들은 경찰의 더딘 수사가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경찰이 처음 A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7월 6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약 2개월 뒤인 지난 8일에야 A 대표를 소환했고, 그가 잠적하자 지난 15일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부산진서 관계자는 “고소가 계속해서 접수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범죄사실을 수집해 소환한 뒤 대질해야 제대로 조사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