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산재 사망자 882명 중
- 과반 458명이 건설 분야서 발생
- 노동자 “운 좋아야 산다” 넋두리
- 아파트 신축 하도급 업체 직원
- 옹벽 외부 비계서 떨어져 숨져
- 아들, 국회·언론 등 찾아다니며
- 건설사 잘못 사건진상 밝혀내
- “사고 날 위험성 알면서도 뒷짐
- 얼마나 더 희생자 나와야 하나”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882명이다. 그 중 절반이 넘는 458명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 가장 많은 비율(51.9%)을 차지했다. 늘 그랬다. 통계를 더 넓혀봐도 전체 사고사망자 대비 건설업 사망자는 ▷2019년 855명 중 428명(50.0%) ▷2018년 971명 중 485명(49.9%) ▷2017년 964명 중 506명(52.4%) ▷2016년 969명 중 499명(51.4%)으로 산업 현장 가운데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올해 부산지역에서도 건설현장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2월 북구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배관 설치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위에서 떨어진 가스관에 깔려 숨졌고, 지난 4월에는 해운대구의 한 주상복합 건설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크레인과 H빔 사이에 끼여 숨을 거뒀다. 한 달 뒤 중구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도 30대 노동자가 130㎏의 크레인 훅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운이 좋으면’ 살아남는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자 주검 위에 세워진 아파트
2019년 10월 부산 남구에서는 경동건설의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현장에는 하도급 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정순규(57) 씨도 있었다. 당시 그는 중력식 옹벽 전면부에 설치된 높이 약 2.15m인 외부 비계 발판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발판과 난간대 사이로 나와 비계 밖에 설치된 사다리를 통해 내려오던 중 균형을 잃고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결국 정 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밤 11시30분께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그때부터 정 씨 가족은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아들 석채(36) 씨가 앞장섰다. 아버지 죽음에 한 점 의혹 없는 수사가 이뤄지길 바랐다. 사고를 유발한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 더 이상 제 2의 정순규 씨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석채 씨는 언론과 국회, 시민단체, 법원, 검찰 등에 도움을 요청하고 목소리를 낼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진행한 정보공개 청구만 40건이 넘고 언론사에 보낸 제보 메일도 수천 통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건이 다뤄지고, 재판 과정에서 경동건설이 안전·관리에 책임을 진다는 관리감독자 지정서에 고인의 이름으로 대신 서명한 사실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도 석채 씨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석채 씨는 건설사들이 ‘예고된 살인’을 계속 일어나도록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 현장에서 규정에 맞는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아버지 정 씨처럼 현장 노동자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후 사건 현장엔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 방호 조치가 완료됐고 비계는 옹벽 안 쪽으로 이동돼 발판과 옹벽 사이로 노동자가 떨어질 수 없게 바뀌었다.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바꿔 말해 하루면 모든 안전 조치가 가능했지만, 시공사의 소홀함은 결국 석채 씨와 아버지의 인생을 빼앗아갔다.
석채 씨는 “건설사가 하루 만에 안전 조치를 끝낸 것은 사고 위험성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것”이라며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하나. 노동자가 사망해도 벌금 몇 푼 내면 되니까 겁내지 않는다. 억울한 희생자와 그 가족만 남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사건으로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경동건설 관리소장과 하청업체 이사, 그리고 경동건설 안전관리책임자는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6월 1심에서 관리소장과 이사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안전관리책임자는 금고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경동건설과 하청 법인에는 각각 10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아들의 이름으로… 끝없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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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동건설 산재 사망자 고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 씨가 건설 현장의 사고 발생에 대해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곽재훈기자 |
사고 후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석채 씨는 생업을 포기했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서울과 부산을 수십 번 오가며 진실 알리기에 나섰다. 중학생인 여동생과 어머니의 아픔을 달래주고 아버지의 억울함이 헛되지 않게 의연히 싸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아버지는 그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석채 씨가 서울에서 활동해 20년을 떨어져 지냈지만 아버지는 매일 그와 통화할 만큼 각별하고 자상했다. 공사 현장에 가면 늘 사진을 찍어 가족에게 보내 안심시켰다. 석채 씨는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답을 구했다. 진로를 비롯한 고민을 얘기하면 아버지는 늘 방향을 잡아준 길잡이와도 같았다.
석채 씨는 끝까지 갈 생각이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겨 죽으면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 것으로 바꾸는 안이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가해자가 잘못을 사과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국민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고가 나면 건설사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까지 걸며 유가족이 지쳐 포기하길 바란다. 그 힘든 싸움을 버티기 위해선 사회와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며 “죽음 앞에서조차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코로나19 확진자처럼 산재 사망자 수도 매일 알려줬음 좋겠다. 아버지와 모든 노동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
※공동기획 : 안전보건공단·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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