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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33> 궤도와 궤적 : 오빗 아닌 오비탈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1-10-04 18:52:4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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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자)로 불리는 남자는 성자(聖者)급 인간이다. 어린 자식을 뜻하는 자가 역설적으로 극존칭 위인을 뜻하다니! 중국사에서 관자 공자 맹자 고자 노자 장자 순자 한비자 손자 묵자 주자(朱子 周子)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한국사에선 노론 세력에 의해 송자로 추앙된 송시열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영자 미자 옥자 춘자 명자 등 많은 ○자들도 子급 반열의 훌륭한 인간일 수 있다. 아들 자(子)를 쓰기에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하면 썰렁하다.

   
단순한 궤도가 아니라 다양한 궤적에서 요동치는 전자.
생명세계의 종자(種子) 포자(胞子)처럼 물질세계에도 탁자(卓子) 상자(箱子) 애자(礙子) 등 子가 들어간 물건들이 있다. 그런데 생명이건 물질이건 미시세계에서 자가 들어가는 건 근원적 존재들이다. 원자 양성자 중성자 전자 양자 광자 입자 중에서 스타는 단연 전자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돈다. 양자(量子)나 광자(光子)는 전자(電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전자의 움직임으로부터 빛을 내니 광전자인 광자(photon)이며, 전자의 물리량이 정수배로 띄엄띄엄 불연속적 양(量)으로 이루져 있어서 양자(quantum)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a-tom) 원자를 나누어 보니 그 안에 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1897년에야 알았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전자를 밝혀내는 과정은 과학사에서 가장 재밌는 한 편의 드라마다.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건포도처럼 생긴 전자가 원자라는 빵 안에 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전자가 원자핵을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전자가 궤도를 돌며 궤도 사이를 순간 이동한다고 생각했다. 전자가 입자냐 파동이냐의 논쟁도 치열했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고 했다. 드디어 전자는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상보(相補)적으로 지닌 물질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전자는 어떻게 움직일까?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이 낸 현대원자모형이 ‘오비탈’이다. 왜 오빗이 아니고 오비탈일까? 전자가 분명한 궤도(orbit)에서 회전하는 게 아니라 궤도스러운(orbital) 전자구름과 같은 희미한 궤적 안에서 요동(搖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비탈에서 전자가 어디서 나타날지 정확히 모른다. 확률 밀도로 추정할 뿐이다. 그러한 전자의 요동을 숫자로 나타낸 게 양자수(quantum number)다. 양자의 갯수가 아니라 양자적 성질을 가진 전자의 요동을 수치화하여 오비탈의 특성을 나타낸 것이므로 양자번호라 해야 이해가 쉽다. 양자번호를 가진 전자가 어디서 요동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전자 요동의 흔적인 궤적이 공 아령 꽈리처럼 보일 뿐이다. 미시세계에서도 그 질량을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입자인 전자는 파동이기도 하다. 이처럼 요상스러운 전자의 요동이 원자 및 원소의 성질을 결정하고 분자 및 물질의 성질까지 결정한다. 생명체 에너지도 전자 전달계로부터 나온다. 물질 구성과 생명현상 모두 전자의 요동으로 인한다. 희미한 궤적 내에서 전자 주고받기의 요동이다. 무미건조한 과학이라지만 감명적이다. 감탄 감동할 일이다. 공자도 영자도 너도 나도, 이도 저도 전자 요술의 작품이라니! 참 …….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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