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죽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돼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들게 됐다”.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기자회견에서 임상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제 개막일인 6일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기자 시사에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 제작 과정을 묻자 나온 답이었다. 개막작 기자회견에는 임상수 감독과 최민식, 박해일, 이엘, 조한철,임성재 배우,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허 집행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임상수 감독의 팬인데 이 영화를 보고 놀랐다. 전작은 대부분 냉소적이고 비판적인데 임 감독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 자신도 이런 변화를 의식했는지 궁금하다”고 첫 질문을 던졌다. 임 감독은 “아까 허 위원장이 임상수답지 않게 영화가 촌스러워서 더 좋다고 하셨다(웃음). 선량한 영화이고 착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과 죽음이라는 요소가 전작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사실 완전히 다른 영화다. 이번 영화에서는 돈의 행방을 놓고 쫓고 쫓기지만 결국 누가 차지하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행복의 나라로’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가수 한대수의 노래제목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전부터 음악을 먼저 생각하고 쓴 것인지 작업을 하면서 내용이나 분위기가 어울리는 노래를 찾은 것인지 궁금했다. 이번 영화의 제작을 맡은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한대수의 노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이나 배우 모두 이 노래와 가수에 대한 존경이 대단하다. 노래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나오고, 영화 마지막에는 가수 장기하의 목소리로 노래 ‘행복의 나라로’를 들을 수 있다.
행복의 나라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죄수 203(최민식)이 파브리병을 앓고 있는 남식(박해일)과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다. 두 남자가 길을 떠나며 겪는 소동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스토리 이므로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이 중요한데 둘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두 배우가 한 영화에서 만난 건 처음이다. 최민식 배우는 “특별히 해일이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것은 없다. 다른 작품을 보고 연기가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느낌이 들어서 낯설지 않았다. (박해일이) 오토바이를 이렇게 잘 타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재미있고 안전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박해일 배우는 “최민식 선배와 언제쯤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 지 15년이 넘었다. 게다가 로드무비는 기회가 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두 가지의 소망이 한 영화에서 이뤄진 것이다. 함께해서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과 이엘은 모녀 사이로 나오지만 마치 마피아의 대부와 그의 후계자처럼도 보인다. 203과 남식을 쫓는 경찰 반장과 검거에 큰 역할을 하는 경찰도 여성이다. 임 감독은 “두 남성이 중심인 로드무비라, 보통 남성들이 맡는 역할을 여성에게 맡겨서 분위기를 달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203이 죽음을 무릅쓰고 만나러 가는 딸도 나이는 어리지만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인 보호나 배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오히려 마음은 더 성숙하고 큰 캐릭터”라며 너무 남성중심 서사가 아니냐는 비판에 해명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두 사람이 도주하면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자연이다. 깊은 숲 속으로 두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장면에서 화면 가득한 초록빛 속에 인물이 작게 담긴 인상적인 화면과, 모래가 가득 담긴 트럭 안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부둥켜 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담당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미장센만 놓고 봐도 아주 아름다운 영화다. 두 사람이 한대수의 노래를 청량한 목소리로 부르는 일레인의 목소리에 이끌려 펜션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기가 막히다”고 극찬했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 |  |
|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기자회견에 감독 및 배우들이 질문을 듣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