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소중한 사람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꺼내 보세요. 국제신문이 ‘인생현상소’를 통해 대신 전해드립니다. 첫 편지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위를 그리워하는 장인이 보내왔습니다.
- 아들보다 더 살가웠던 우리 사위
- 10년 전 일 마치고 귀가하던 길
- 졸음운전 피해로 마흔에 떠났지
-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찾았는데…
- 내가 암이래, 치료한다고 뜸했어
- 미안허이! 자네가 좀 기도해줘
- 손주 반장됐어, 다 자네 덕이야
- 편지 받았거든 꿈에 한번 찾아와
“사랑하는 내 사위 경환아! 너는 사라졌다. 지금 여기에 없다. 그것이 너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항상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다시 만날 때 못다 한 이야기 실컷 하자꾸나. 그때 꼭 마중나와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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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위와 휴대폰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배진규 씨. 사진 =박희진 동주대 교수(사진가) |
배진규(72) 씨는 2011년 사위 문경환을 잃었다. 아들보다 더 살갑던 백년지객(百年之客)은 마흔의 삶을 마감했다. 졸음운전의 피해자였다. 그때부터 배 씨는 한 달에 두 번 사위가 묻힌 부산추모공원을 찾았다. 자전거로 꼬박 2시간을 달려 묘비를 닦았다. “지난해 내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어. 항암 치료하느라 1년을 자주 못 가 미안했지.” 지난 9월 취재진과 사위를 찾은 배 씨는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경환아, 잘 지냈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손주가 반장이 됐다. 자네가 잘 돌봐준 덕분이네. 장모가 자네를 보고 싶어 하네. 꿈에서라도 한번 꼭 껴안아 주렴.”
■사위가 아니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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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맞으며 사위의 비석을 지키는 배진규 씨. |
“딸이 문 서방을 데려왔을 때 몇 가지 테스트를 했어. 호강까지는 아니어도 평범하게 살려면 체력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람이 정말 진국이었어. 사위가 ‘따님을 집에 데려다 줄 때면 늘 친척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는 걸 봤습니다. 나도 화목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감복을 받아 2000년 결혼을 허락했지.”
사위는 늘 일을 마치면 장인의 집을 찾았다. 직장 얘기가 나올 때면 장인은 인생 멘토가 됐다. 사위도 장인의 직장생활 10년(충남 장항제련소)과 자영업 40년 경험을 귀 담아 들었다. “경환이는 내가 전화하면 백이면 백 다 집으로 뛰어왔어. 나도 경환이를 사위보다 아들로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 하는 말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사이였거든.”
2011년 5월 1일. 사위가 초인종을 눌렀다. ‘어버이날을 미리 축하하러 왔다’는 말에 장안사 주변의 메기 매운탕 집을 찾았다.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하자’는 배 씨의 말에 사위가 처음으로 거절했다. “내일 중요한 계약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운전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다음 날 문 서방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그날 술 한잔 못한 게 지금도 가슴에 맺혀. 실컷 마셨다면 피곤해서 계약하러 못 갔을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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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 꽃을 들고 있는 배진규 씨.
사진 =박희진 동주대 교수(사진가) |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던 사위는 포항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참극을 당했다. 화물트럭 기사가 졸음운전하다 사위의 차를 덮쳤다. “사고가 났을 때 10분 이상은 살아있었을 거라고 믿어. 그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자식들이 밟혀 눈이나 편하게 감을 수 있었을지.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마음이 쓰였을까.”
당시 8살·3살짜리 손주들은 몇 년간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들과 밖에 나가면 아빠랑 같이 노는 다른 아이를 빤히 쳐다보더라고. 현관 밖 인기척만 들려도 ‘아빠 왔다’며 뛰어나가. 두 돌도 안된 손녀는 오후 6시만 되면 ‘아빠가 맛 있는 거 사올거야’ 하면서 현관에서 기다려. 내 가슴이 찢어졌지.”
배 씨는 부산추모공원을 찾는 참배객에게도 편지를 썼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교통사고를 남의 일로만 봤는데 저에게도 이러한 불행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위의 49제를 지내고 나오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던 큰 손주가 ‘아빠는 잘못이 없는데 왜 죽어야 했느냐’고 하더군요(중략). 부디 식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운전대를 잡아 주세요. 졸음이 오면 반드시 휴게소에 들르거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중략). 우리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생명을 앗는 일이 없도록….”
■자전거 타고 왕복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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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규 씨가 사위에게 보내는 편지. |
배 씨가 자전거를 타고 부산추모공원에 가는 이유가 있다. “경환이에게 가면 사소한 집안 이야기를 다해. 손자가 상을 받거나 손녀가 엄마일을 도왔을 때는 할 말이 더 늘어나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사위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정리해. 자동차를 타면 생각할 틈도 없이 금방 도착해버리잖아.”
그는 사위가 살아 있을 때 쓰던 폴더폰을 꺼내 사위와 통화하듯 대화한다. 전화기에 온갖 추억이 다 들어 있어서다. “자네가 사랑하던 아내는 아직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고 있다네. 집과 차도 그대로야. 남편이 이루어 놓을 걸 포기 못하는 게지. 코로나19 펜데믹 때문에 요즘은 고역을 치르고 있어. 오래 일한 직원 두 명 중 한 명은 내보냈다네.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손주들이 다 크면 대리점을 정리하려 하네.”
묘비를 닦고 풀을 베던 배 씨는 11월부터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사위를 만나러 갈 계획이다. “대장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받는 1년 동안 자주 찾지 못해 마음이 아팠지. 곧 완치 판정을 받으면 예전처럼 자주 와야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사위에게 읽던 그는 두 손 모아 “하늘에 있는 사위에게 꼭 전달해주세요”라고 했다. “나도 앞만 보고 달려왔어. 백화점에서 옷 한번 사지 않고 알뜰살뜰 돈을 모았네. 자네의 빈 자리를 내가 조금이라고 채워주지 못하면 저 어린 것들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는가. 내가 두 손주 대학 졸업 때까지는 책임질테니 아무런 걱정 말게. 자네가 내 꿈에 나와서 ‘편지 잘 받았어요’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오늘 밤 찾아오겠지?”
※인생현상소 사연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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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영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