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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2> 코로나병동 간호사 김혜리 씨

“부부싸움 대신 코로나와 싸운 우리…신혼여행 꼭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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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2월 내 인생의 단짝된 병준아
- 내가 코로나 환자 돌보며 힘들때
- 투정·하소연 다 받아줘서 고마워
- 듬직한 남편의 응원에 힘이 나 :)

- 집에 못 가며 방역과 사투벌이는
- 의료원 동료들이 난 자랑스러워
- 이 사태 잠잠해져 좋은 날 오면
- 둘이 손 잡고 여행 많이 다니자!

부산의료원 코로나19 병동 간호사 김혜리(31) 씨가 ‘인생 현상소’에 편지를 보내왔다. 수신인은 남편 최병준(31) 씨. “안녕. 내가 힘들 때 풀어놓는 투정을 다 받아줘서 고마워. (피곤을) 녹여주는 네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 (의료진의) 가족이 피해자 아닌 피해자였잖아. 피해 주기 싫어 자취방 구해 생활하는 간호사도 기억에 남아. 감염병과의 싸움을 잘 견디고 있는 동료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부산의료원 코로나19 병동 간호사 김혜리 씨가 환자 차트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혜리 씨는 2013년 부산의료원에 입사한 9년 차 간호사. 올해 2월 결혼한 남편 병준 씨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필터’ 없이 쏟아내는 하소연을 남편이 다독여줬기 때문. “사실 남편이 가장 큰 피해자에요. 직접 환자를 간호하지 않아도 병동 상황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올해 2월 팬데믹을 뚫고 부부가 됐다. 신혼 살림을 장만하러 다닐 때 혜리 씨 이마와 콧잔등에는 늘 마스크 자국이 선명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결혼을 준비했어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제 직업이 간호사라는 얘기는 안 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 환자를 돌본다고 하면 경계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혜리 씨도 격리된 적이 있었다.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난감해 할 때 예비신랑이 집에 가서 챙겨줬어요. 제가 먹고 싶다는 것도 사서 병동 앞에 맡겨두고….” 남편 얘기를 할 때 혜리 씨의 눈에서는 꿀이 떨어졌다. 동갑내기 남편은 ‘내조의 왕’이었단다. “동갑이라 친구 같이 지내요. 스트레스는 수다로 푸는 편인데 남편이 다 받아줘요. 자신도 퇴근하면 쉬고 싶을텐데 집안일도 해주고. 고마워, 신랑.”

   
김혜리 씨와 남편 최병준 씨.
부산의료원은 지난해 2월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현재까지 이곳에서 치료한 환자는 5000여 명. 간호간병 포괄 서비스 병동을 담당하던 혜리 씨도 두꺼운 방호복을 입었다. “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랜 시간 잡히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첫 환자가 음압 병동에 입원한지 며칠 안 돼 확진자가 급증했어요. 병실이 부족해 일반 환자는 퇴원시키거나 전원시켰습니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 임시 음압병동을 만들기도 했어요.”

음압 병동의 핵심인 음압기는 공기압을 낮춰 내부의 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 간이 음압기는 너무 크기도 했지만 소음도 커 환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처음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국가적인 차원의 프로토콜이 없었어요. 의료진뿐만 아니라 병실도 부족하고.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간호사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어요. 청소는 물론 CT 찍으러 갈 때도 간호사가 동행해 환자를 관찰했습니다.”

   
가족과 따로 떨어져 지내는 의료진도 많았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후배는 따로 자취방을 구해 나왔어요. 감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자신 때문에 혹시나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몇 달에 한두 번 집에 들러 옷가지만 챙겨 나온다는 말에 가슴 아팠답니다.”

언제 가장 힘들었을까. “지난해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병상이 부족해 많은 노인 환자들이 부산으로 이송돼 왔어요. 쇠약해진 탓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힘든 분도 있었고. 어디가 아픈지조차 말하기 힘들어 하는. 그때는 제가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가 환자 상태를 체크해 병동 밖에서 기다리는 간호사에게 전달했어요. 청소부터 기저귀 교체에 환자 식사까지 챙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요. 의료진들은 끼니를 건너 뛰거나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혜리 씨는 섭섭한 적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료진 덕분에’라는 말을 듣고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의료진의 헌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느껴져요. ‘파견 간호사의 대우가 좋다’는 방송 뉴스를 본 환자가 ‘그만큼 받았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고 하더라구요. 나와 같은 일반 간호사들은 평소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데도 ‘돈 많이 번다’는 인식이 퍼지니 스트레스를 받죠.” 그래도 혜리 씨는 ‘조금 편한’ 직장으로 옮길 생각이 없다. “근 2년간 감염병과 싸우면서도 이탈한(힘들다고 떠난) 사람이 없어요. 서로 힘내라고 늘 ‘으쌰 으쌰’ 합니다. 친한 동기·선배랑 세 명이 밥 먹고 여행하면서 서로를 다독여주기도 하고. 남편도 고생한다며 ‘우쭈쭈’ 해주니까.”

혜리 씨가 그만둘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책임감이다. “고령의 환자나 기력이 떨어지는 분들은 더 많이 신경 쓰여요. CC(폐쇄회로)TV로 계속 환자들을 체크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때가 많답니다. 아예 거동이 안되시는 분들은 2시간에 한 번씩 방호복 입고 들어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마사지를 해드려요. 그래야 환자분들이 편안해 하시거든요.”

퇴원한 환자 중에는 두 손 가득 빵과 음료수를 사 들고 오는 경우도 많단다. “환자분들 중에 블로그 하시는 분들이 저희 병동에서 치료받은 후기를 올리세요. 한번 들어가서 봤더니 ‘고생한다. 감사하다’고 적혀 있었어요. 뿌듯하기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찾아서 보고 그래요.”

혜리 씨는 코로나19가 잡히면 남편과 다시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로 2박3일 짧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아쉬워요. 예전부터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언젠가는 남편과 손잡고 갈 날이 있겠죠.” 병준 씨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살짝 민망하고 부끄러운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이 좋게 지내자. 내 평생 친구야! 사…사…. 집에서 보자.ㅋㅋ”

※인생현상소 사연 모집

▷신청대상 :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누구나 ▷신청기간 :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응모방법 : 국제신문 이메일(inews@kookje.co.kr), 우편발송(부산시 연제구 중앙대로 1217 국제신문 5층 디지털국). 형식자유, 이름·나이·연락처 기재 ▷문의 : (051) 500-5249

글=정채영 PD, 사진=박희진 동주대 교수

※함께 제작된 동영상 인터뷰는 유튜브 ‘국제신문’ 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지원 :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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