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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4> 어머니 김영자의 ‘한’

“최루탄 맞고 평생을 앓다 간 내 딸…누구도 사과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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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딸로 언제나 든든했던 회인이 
- 부마항쟁 당시 하굣길서 날벼락  
- 피범벅 머리 보고 가슴 내려앉아
- 결혼도 했지만 후유증으로 고통
- 결국 마흔도 못 넘기고 떠났지

- 올해 42년만에 피해 인정 받았어
- 회인이 너가 하늘서 도와준거니 
- 요즘들어 부쩍 그리운 날이 많아   
- 나중에 만나 우리 남은 한 풀자 

부모 잃은 자식을 고아(孤兒)라 한다. 자식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 그 애끓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김영자(81·부산 동래구) 씨는 2000년 딸 서회인(당시 39세) 씨를 잃었다. 죽음의 이유가 기막히다. 부마민주항쟁이 한창이던 1979년 10월 17일. 회인 씨는 하굣길에 부산 중구 대청동의 한 육교에서 ‘사과탄’이라 불리는 소형 최루탄을 맞았다. 폭발한 최루탄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1987년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숨진 이한열 열사처럼. 김 씨는 6개월간 치료 받고 퇴원한 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투병생활을 지켜봐야 했다. 2018년 출범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 김 씨의 증언을 토대로 회인 씨를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회인 씨가 최루탄을 맞은지 42년 만이자 숨진 지 21년 만이다. 김 씨가 ‘인생현상소’에 보낸 사연에는 굴곡진 근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 있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고 서회인의 어머니 김영자 씨가 카메라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회인이는 어른스러웠어. 등교 전에는 늘 청소하고 동생 셋 밥부터 챙겼거든. 동네 어른들이 ‘딸래미가 어찌 저리 잘하능교?’라고 칭찬했지.” 1979년 동주여상(현 동주여고) 야간부 2학년이던 회인 씨는 성격도 대찼다. “회인이가 이가 안 좋았어. 이를 해달라고 하기에 ‘아빠가 나으면 하자’고 했지. 애 아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거동을 못했거든. 어느 날 회인이 친구가 찾아오더니 ‘회인이가 극장 앞에서 껌을 판다’고 하더라고. 무슨 일인가 해서 물었더니 ‘아빠 나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돈을 벌고 있다’고 해. 기특해서 회인이가 버선 안에 모아둔 돈에 내가 더 얹어서 치료를 했지.”

1979년 10월 17일 저녁. 부산대 앞에서 식당을 하던 김 씨는 딸을 기다리다 선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김 씨를 깨운 건 키 큰 남자와 학생 한 명. “회인이가 크게 다쳐 입원했습니다.” 서둘러 택시를 탔다. “병실에 도착했더니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데. 팔은 상처투성이고. 무서워서 가까이 가질 못했어.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뜬눈으로 밤을 새고 아침에 장사하러 갔지. 남편과 자식 넷을 먹여 살려야 하잖아.” 김 씨는 회인 씨 옆자리 환자 보호자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를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김 씨가 간직하고 있는 고 서회인 씨의 사진.
딸이 정신을 차리고서야 왜 다쳤는지 알게 됐다. “친구들이랑 하교하는 데 사방에서 데모 하고 있었다네. 육교 올라가는 도중에 하필이면 회인이가 최루탄을 정면으로 맞았어. 친구들이 간신히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지. 밥장사 하다 전화 오면 병원으로 뛰어가는 일이 계속 반복됐어. 삶이 끔찍했지.”

김 씨는 국가의 무관심에 또 울었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내가 가게 있을 때 장교 한 명이 병원으로 찾아왔어. 회인이한테 20만 원 든 봉투 주면서 ‘맛있는 거 사 무라’고 했다네. 병원으로 뛰어갔더니 벌써 가버리고 없더라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 없이. 자기 자식이 다쳤으면 그랬을까.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가 있어.”

회인 씨는 퇴원하고서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최루탄 연기가 폐로 들어가 기침이 잦아졌다. 가슴이 답답해 주저앉기 일쑤였다. “딸과 어디 다니질 못했어. 조금만 걸어도 숨쉬기 힘들다고 했거든. 지나가는 고교생들 보면 늘 부러워 하더라고. 그때부터인가 우울증이 심해졌어.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됐어’라고 울곤 했거든.”

오토바이 사고로 누워있던 김 씨 남편은 1980년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6개월 동안 입원비에 먹고 사는 걱정까지, 말도 못 한다. 회인이 다친 거는 친척들에게도 안 알렸다. ‘가시나가 별나서 그렇다’고 비난할 게 뻔하잖아. 치료비 때문에 빚을 지다가 가지고 있던 연립주택도 팔았어. 그걸로 친척들한테 손가락질도 많이 받고 그랬지.”

   
※김영자 씨가 직접 편지를 쓰기 어려워 PD가 대신 작성 했습니다.
김 씨를 돕기 위해 제주도에 살던 동생이 부산으로 왔다. 김 씨를 대신해 학교와 경찰서를 다니며 보상을 요구했으나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동생이 회인이를 데리고 안 가본 곳이 없었어. 그런데 다들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고 하잖아. 무정해도 이렇게 무정할까 싶었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 살기 바쁜데 어떻게 계속 신경을 쓰겠어.”

회인 씨는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누군가가 ‘회인이가 어떤 남자랑 절에 왔다 갔다’고 전해주데. 작게 결혼식을 올려줬지. 몸이 좋지 않아서 신혼여행은 못 가고.” 회인 씨는 친정에서 살다시피 했다. 결핵까지 겹처 창원(마산)의 결핵병원에 입·퇴원하기를 반복. “2000년이었나? 회인이 병수발 때문에 아들이나 며느리한테 너무 미안한거야. 그래서 회인이를 사위 집에 데려다 줬지. 간 김에 청소하고 반찬도 챙겨주고. 그 날 따라 회인이 얼굴이 좋더라고. 사위가 퇴근하길래 집에 가려고 나왔지. 그런데 사위가 뒤따라 오더니 ‘어머니 갔습니다’ 하더라고.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018년부터 ‘서회인 찾기’에 나섰다. 부마항쟁을 취재한 조갑제 기자가 쓴 ‘유고’에는 ‘동주여상 서혜인이 밤 9시40분 소형 최루탄에 얼굴을 맞았다’고 적혀 있었다. ‘서해인’(계엄군 기록)이나 ‘서혜란’(부산대 자료)으로 표기된 문서도 많아 정확한 인적사항 확인이 어려웠다. 진상규명위는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올해 ‘서회인’의 존재를 확인했다. 서 씨 사망 이후 21년 만이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안 아픈 곳이 없어. 그동안 쉴 새 없이 일을 했지. 무릎도 나가고, 자궁도 들어내고, 심장도 좋지 않아. 그래선지 요즘 회인이가 부쩍 보고 싶어. 가끔 잠들면 회인이가 나타나 ‘엄마 고맙다. 고생했다’고 해. 아마 회인이가 엄마한테 보상금이라도 받게 해주려고 지금껏 노력했던 것 같아. 난중에 만나면 그동안의 한 맺힌 이야기 다 할 거야.”


※인생현상소 사연 모집

▷신청대상 :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누구나 ▷신청기간 :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응모방법 : 국제신문 이메일(inews@kookje.co.kr), 우편발송(부산시 연제구 중앙대로 1217 국제신문 5층 디지털국). 형식자유, 이름·나이·연락처 기재 ▷문의 : (051) 500-5249

함께 제작된 동영상 인터뷰는 유튜브 ‘국제신문’ 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지원 : BNK

글 = 정채영 PD, 사진= 박희진 동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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