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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5> 이용수의 ‘붓 가는대로’

“아들 의사 됐어, 다 여보 덕이야” 천국에 띄운 글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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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소개로 만난 아내 정윤 씨
- 믿던 이에게 사기 당해 쓰러져
- 25년전 늦둥이 중3때 세상 떠나

- 홀로 빚 갚으며 끙끙 앓았는데
- 그때 당신에게 써내려간 일기
- 내 아픔 위로 받아 잘 이겨냈어
- 그 계기로 70대에 작가 됐어
- 3년전 수필집 ‘덕분에’도 냈지

- 행복 올 때마다 보고 싶은 아내
- 오늘도 여전히 당신이 그립소

이용수(78) 씨는 75세에 첫 수필집을 출간한 초보 작가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1996년부터 펜을 들었다. 25년째 일기 쓰듯 써내려간 글은 그의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엄마 없이 자란 아들은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됐다. 이 씨가 ‘인생 현상소’ 문을 두드린 이유는 고생만 하다 간 아내가 요즘 부쩍 그립기 때문. “아들이 의사고시에 합격했을 때와 결혼했을 때, 내가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할 때, 좋은 일이 생기면 아내 생각이 더 납니다. 옆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25년 동안 읽은 책들 앞에서 직접 펴낸 책 ‘덕분에’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이용수 씨.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이 씨는 1968년 부산에 정착했다. 직장 동료가 아내 제정윤 씨를 소개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두 사람은 부산진구 서면의 한 교회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알고보니 고향이 같아 금새 친해졌죠. 다방 같은데 가기도 그래서 교회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게 몇 번 만났나? 어느 날 자취방에 가니까 빨래가 다 되어 있었어요. 내가 없을 때 아내가 한 거지. 배려가 고마워서 주말마다 데이트 했어요. 그때 유행하던 호떡도 먹고.” 이 씨는 황령산 계곡에서 제 씨의 발을 씻겨주며 사랑을 표현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자 부모님이 반대했다. “아내가 몸이 많이 약했어요. 얼굴도 하얗고. 데이트할 때도 많이 걷지 못했으니까. ‘왜 병약한 사람과 평생 살려고 하느냐’는 부모님 설득하느라 애 먹었죠.”

제 씨는 시부모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이를 서둘러 가지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내가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어요. 자궁에 문제가 있다고 해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나 한의원은 모두 찾아가 치료를 받았어요. 명절 때마다 부모님이 아내의 배만 쳐다봤으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어요. 결혼한 지 10년 만에 드디어 임신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늦둥이는 이 씨 부부에게 늘 웃음을 안겨줬다. “아이가 생기고 얼마 안 지나 아내가 갑자기 살이 찌더라고. ‘임신하면 살 찐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출산하고서도 살이 안 빠져요. 병원에 갔더니 고혈압이래. 아내 혈압이 오를까 봐 부부싸움도 한 번 안 했어.”

몸무게가 40kg 안팎이던 제 씨는 아들 대성 씨가 5살이 되던 해에는 80kg까지 불었다. 건강은 더 악화됐다. “대성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내가 쓰러졌어요. 사기를 당한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메리야스 가게 하던 아내가 계를 몇 개 했는데 먼저 타먹은 사람들이 돈을 안 냈는가봐. 심성이 고와 보증도 많이 섰는데 잘 못 되기도 했고. 아내가 곗돈 타먹은 사람들 찾아갔는데 다들 모르는 척 했다더라고. 그렇게 며칠간 앓다가 쓰러진거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나흘 만에 저와 제 아들 곁을 떠났어요.”

   
아내 고 제정윤 씨와 이용수 씨가 아들 이대성 씨를 함께 안고 있는 모습.
아내가 사망하자 이사를 했다. “장을 보러 시장에 가도 아내 흔적이 많았어요. 이사하고 6개월이 지났나? 아들이 교복 재킷 한쪽이 다 뜯어진 채 집에 오더라고. 이야기 들어보니 아내가 서준 보증이 잘못돼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들이었어요. 그 중 한 명이 아들의 옷깃을 놓아주지 않아 다 뜯어진거지. 며칠 뒤에는 내 사무실에 빚쟁이들이 찾아오더라고. 알고 보니 아내가 서 준 보증이 6개가 넘는거야. 합하면 5000만 원대. 어쩌겠어요. 그때는 법을 모르니 제가 다 갚는다고 했죠. 7년 동안 월급의 50%를 압류당했어요. 한 달에 40만 원가량으로 살았지.”

이 씨는 빚을 갚을 때도 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 아들이 사춘기였거든.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더 방황할까 싶어서 입을 닫았지. 그렇게 혼자 끙끙 앓다 시작한 게 글쓰기에요. 아내에게 얘기하듯, 기도하듯 매일 일기를 썼어요. 책도 많이 읽었어요. 나보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을 보고 위로를 받기도 했고.”

은퇴한 이 씨는 수필을 배우러 평생교육원을 찾았다. 그의 나이 67세. “거기서 평생 스승인 박양근 교수를 만났어요. 그동안 써놨던 글을 보여드렸더니 ‘이 선생님 글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한 페이지 가득 빨간 볼펜 자국이었어요. 뒤에 다시 용기를 내 글을 보여드렸더니 ‘감성이 있습니다’고 칭찬 해주시는거야. 직업에는 은퇴가 있는데 다행히 글 쓰는 일에는 은퇴가 없다고 하시면서.”

2014년 이 씨는 마침내 한 출판사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받아 ‘작가’가 됐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지 3년 만이었다. “나이 71살에 등단했어요. 수필집 ‘덕분에’는 제가 이때까지 적었던 아내에게, 아들에게 썼던 일기들을 고치고 고쳐 만든 책이에요. 살면서 많이 치이기도 하고 억울한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 이겨냈지. 처음에는 ‘덕분에’라는 말을 안 좋아 했어요. ‘나는 안돼’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덕분에’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출간한 수필집이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 도서’에 선정됐지. 박 교수님이 감격해 눈물을 보이셨어요. 너무 좋았죠.”
   
이 씨 아들은 엄마가 사망한 원인인 순환기내과의 의사로 성장했다. 손자도 둘이나 뒀다. 인터뷰 도중 이 씨는 “행복이 찾아올 때마다 아내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닦았다. “여보, 우리 아들이 의대에 입학했을 때, 의사고시에 합격했을 때, 결혼했을 때, 제가 책을 낸 기념으로 출판기념회를 할 때, 손주들이 재롱부릴 때 항상 당신 생각이 납니다. 오래도록 해로하지 못한 것이 무척 마음 아파요. 여보, 하늘나라에서 편이 쉬어요.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남편 이용수가.”


※인생현상소 사연 모집

▷신청대상 :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누구나 ▷신청기간 :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응모방법 : 국제신문 이메일(inews@kookje.co.kr), 우편발송(부산시 연제구 중앙대로 1217 국제신문 5층 디지털국). 형식자유, 이름·나이·연락처 기재 ▷문의 : (051) 500-5249

※함께 제작된 동영상 인터뷰는 유튜브 ‘국제신문’ 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지원 : BNK

글 = 정채영 PD, 사진= 박희진 동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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