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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6> 김판수의 ‘지키지 못한 약속’

“7년 전 경주 참사로 잃은 딸…네 친구 전화에 오늘 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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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에 무너진 리조트 지붕
- 신입생 행사 도중 참변 당해
- 딸 돌아올까봐 거실서 잠들고
-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던 나날
- 딸이 남긴 쓰레기조차 못버려
- “아빠, 꼭 데이트하자”했는데
- 그 약속 못지켜 내내 생각 나

2014년 2월 17일. 경주에는 무척 많은 눈이 내렸다. 기상청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은 적설량”이라고 했다. 비극은 그날 밤 찾아왔다.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경주 마우나리조트 강당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김판수(65) 씨의 딸 진솔(당시 21세) 씨도 이날 하늘나라로 떠났다. 슬픔에 빠진 김 씨는 3개월 내내 술에 파묻혀 지냈다. ‘딸이 돌아올까 봐’ 3년 넘게 거실에서 잤다. 7년이 지난 2021년 11월. 김 씨는 딸과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며 ‘인생현상소’ 문을 두드렸다. “오늘도 공주가 보고 싶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자꾸 눈물만 나. 아빠가 데이트 약속을 못 지킨 것이 아직도 후회가 돼. 우리 꿈속에서라도 데이트하자. 공주, 아프지 말고 잘 지내.”

   
딸과 약속했던 데이트가 꿈속에서라도 이뤄지길 기다리는 김판수 씨.
김 씨는 딸 둘을 둔 아빠다. 진솔 씨는 열 살 터울의 동생 아현(19) 양을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돌봤다. “그땐 아내도 일을 하고 있어서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대신 진솔이가 아현이를 키웠지. 의젓했거든. 부모에게 애정표현도 잘하고. 힘든 일 있을 땐 친구처럼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어요.”

진솔 씨의 꿈은 세계 일주 여행가이드.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1년 떠난 가족여행이 계기였다. “해외로 3박 4일 여행을 갔어요. 진솔이가 가이드랑 자주 대화를 하더니 ‘여행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 흔쾌히 허락했죠. 다른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도 마다하고 2013년 부산외국어대로 진학했어요. 꿈을 위해서.”

2014년은 악몽이었다. “진솔이가 태국어과 대표라 오리엔테이션 준비에 바빴어요. 나도 일 때문에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다 보니 경주 가는 아침에도 얼굴을 못 봤어요. 저녁이 돼서야 진솔이가 아내와 통화하는 것을 들었죠.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고 했대.” 그날 김 씨는 아내와 TV를 보다 ‘마우나리조트가 무너졌다’는 뉴스를 봤다. “너무 놀라서 딸에게 전화를 계속 했는데 받지 않아. 친구들한테 전화했더니 모두 ‘진솔이는 무사히 빠져나와서 다른 학생들 챙기고 있어요’ 하더라고.”

   
그의 딸 진솔 씨. 김판수 씨 제공
그래도 불안했던 김 씨는 딸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렸다. TV만 쳐다보길 2시간째. 김 씨는 결국 부산외대로 향했다. “아내와 함께 갔지. 밤 11시쯤이었나, 학교에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TV 자막에 ‘김진솔’ 이름이 뜨더라고. 학교 상황실에 들어가 보니 어느 병원에 있는지도 모릅디다. 진솔이가 울산의 한 병원에 있다는 뉴스가 나오길래 무작정 달렸지. 40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30분이 넘게 걸렸어요.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는 거야. 가다 쉬다 반복하다 새벽이 돼서야 겨우 도착했어요.”

이튿날 새벽. 김 씨는 울산의 한 영안실에서 딸을 만났다. “당시 울산 살던 조카가 먼저 영안실로 갔는데 진솔이가 없다고 해. 내가 가보니까 있었어. 추운 눈 속에 있다 보니 얼굴이고 몸이고 성한 데가 없으니 진솔이를 못 알아본 거지. 딸이 3시간 동안 눈 속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요.” 참사가 빚어진 날 경주에는 31.2㎝의 눈이 내렸다. 며칠간 폭설이 이어지는데도 마우나리조트 관리자들은 가설 건축물인 강당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지 못했다. 지붕이 무너지자 당시 무대 위에 있던 진솔 씨를 포함해 10명이 참변을 당했다.

김 씨는 진솔 씨를 잃고 3년 동안 거실에서 잤다. 혹여 ‘딸이 돌아올까’하는 헛된 기대의 시간이었다. “3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못 하고 술만 마셨지. 50년 동안 마신 술보다 그때 더 많이 마셨어. 직장도 못 가고 잠도 못 잤지.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길을 가다 진솔이 또래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거야. 가족들도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요즘도 많이 그리워해요. 언니한테 공부 배우던 막둥이 딸은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아직도 (언니 생각에) 가끔 멍하게 있더라고. 그럴 때면 마음이 아프죠.”

   
부산외대에서는 매년 추모식이 열린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지만, 매년 추모식 때 피해자 가족이 모여 점심도 먹고 하죠. 저희 쪽(피해자)은 ‘3년까지만 추모식 하고 그만하자’고 했는데 학교에서 매년 해주시더라고. 어버이날이나 그런 기념일만 되면 학교에서 또 연락이 와요. 매번 챙겨주시니 고맙죠.”

진솔 씨 친구들도 김 씨에게 자주 연락한다. “생일이나 어버이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전화를 해. ‘아버지 술은 조금만 드시고 계시죠?’ ‘밥 잘 챙겨 드시죠?’ ‘저 올해 결혼해요’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울컥하지. ‘진솔이도 살아 있었으면 결혼할 나이구나, 남자친구를 데리고 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 씨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오리엔테이션에 가기 며칠 전 진솔 씨가 아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못했기 때문. “사고 며칠 전부터 무슨 얘기를 내게 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그땐 일이 바빠 들어주지 못했죠. 데이트를 신청하는 솔이에게 ‘알겠다’고 하고는 계속 미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사고가 나서…. 그게 항상 가슴에 박혀 있어요.”

김 씨는 딸을 아직 보내지 못했다. 진솔 씨 사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유학 갔다고 둘러대기 일쑤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더 그리워. 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진솔이 물건들을 다 가지고 있어요. 버리려고 둔 쓰레기마저도. 꿈속에서라도 못 다한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하늘 나라에선 부디 아프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글=정채영 PD 사진=박희진 동주대 교수

※함께 제작된 동영상 인터뷰는 유튜브 ‘국제신문’ 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지원 :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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