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시민 90% ‘여가 줄었다’
- “주요 활동장소는 집” 6배 급증
- 연령·소득별로 다소 차이 보여
- 고소득층 한적한 지역 관광 등
- 대체활동 적극 찾아나선 반면
- 소득 적을수록 주거지 머물러
- 혼자 TV 보거나 독서가 전부
바이러스는 시민의 여가생활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다. 부산시민 10명 중 9명이 “코로나19로 여가 생활이 줄었다”고 응답할 정도로 전방위적이었다. 남녀노소,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여행·문화 생활· 야외 활동이 급격히 줄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은 코로나19 속에서도 기존 여가생활을 대체할 활동을 찾아냈지만, 저소득층은 여가생활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여가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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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직장인들이 골프장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독자 제공 |
■핫플 대신 골프
국제신문이 16일 부산시의회 연구모임 ‘격차를 줄이는 모임’과 공동으로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 전후 삶의 질 격차 분석(이하 격차 분석)’을 보면 코로나 후 여가활동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90.8%에 달했다. ‘변화 없다’는 6.7%, 증가는 2.5%였다. 코로나 발생 전 관광지와 자연공간에서 보내던 여가 활동 장소는 집으로 옮겨 왔다. 코로나 발생 전후 여가 활동 장소를 묻는 말을 보면 관광지와 자연공간은 47.3→9.7%로, 실내 문화·체육시설 19.8→2.9%로 급격히 줄었다. 반면 집은 7.9%에서 55.6%로 무려 6배 이상 급증했다. 집에서는 주로 영상 게임 홈트레이닝 등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가생활이 줄어든 것 자체는 전 시민이 똑같았지만 여가를 보낸 장소는 소득별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고소득층은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기존 여가 생활을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냈다. 가구 월 소득이 800만 원인 대기업 과장 A(36) 씨도 마찬가지다. A 씨는 코로나 발생 전에는 외국 여행을 하거나 핫플레이스에서 아내와 데이트를 즐겼다. 콘서트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 주말에는 서울행 기차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를 더 향유할 수 없게 되자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A 씨는 “아무래도 코로나19 전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주 경주 같은 유명 관광지 대신 전남 구례나 경북 안동 같은 조용한 관광지를 찾아다닌다. 커피숍도 사람이 북적이는 대형 카페 대신 한적하고 작고 예쁜 카페를 찾아서 데이트를 즐긴다”고 말했다. A 씨는 영화관 대신 집에서 영상 콘텐츠를 즐긴다. 예전에는 유료로 보는 영상 서비스가 1곳이었는데, 지금은 유료로 보는 영상 서비스가 총 3곳으로 늘었다. 골프도 코로나 전보다 더 많이 즐긴다. A 씨는 “여행 비용이 크게 줄어 골프장에 가는 횟수가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분기에 한 번 정도 갔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것 같다”며 “지인들과 야외에서 즐기기 때문에 씻지만 않으면 코로나 감염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격차 분석을 보면 여가를 보내는 장소로 관광지 자연공간을 꼽은 사람은 코로나 이전 47.3%에서 발생 후 9.7%로 전반적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고소득층의 17.9%는 여전히 관광지와 자연공간에서 여가 활동을 보낸다고 응답했다. 반면 월 소득 100만 원 미만 계층에서는 8.9%만이 관광지와 자연공간에서 여가를 보냈다.
■TV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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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부산 동구의 한 자취방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소득이 적을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코로나 후 여가활동 장소로 집을 택한 비율을 가구 월 소득별로 보면 ▷100만 원 미만 64.4% ▷100만~300만 원 57.4% ▷300만~500만 원 56.5% ▷500만~700만 원 57.3% ▷700만~1000만 원 50.0% ▷1000만 원 이상 43.3%로 나타났다.
기초생활수급자 박병수(43) 씨도 코로나19 발생 후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만 보낸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고시텔에서 생활하는 박 씨는 형편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지만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교회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가 활동을 즐겼다. 함께 공원을 거닐거나 봉사활동도 다녔다. 체육대회 등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빠짐 없이 참석했다. 그러나 방역지침이 강화되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늘고, 자연스럽게 교회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줄었다. 박 씨는 “코로나 이후에는 혼자 집에서 책을 보거나 TV를 보는 게 여가의 전부다.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져 사람을 못 만나니 외롭고 허전하다”고 털어놨다.
부산진구 부전동 쪽방에서 지내는 조천우(65) 씨도 박 씨와 크게 다를 게 없이 종일 TV만 본다. 조 씨는 “ 원래부터 특별히 여가라고 할 게 없었다. 그래도 코로나 전에는 동네 지인과 수다도 떨고, 한 달에 한두 번 노래주점에서 노래도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코로나 후에는 그런 걸 못하게 돼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박 씨가 TV를 보는 것은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는 “TV도 딱히 좋아하는 게 있어서 TV를 보는 게 아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른 채 드라마든 스포츠든 나오는 대로 본다”고 말했다. 박 씨의 경우처럼 아예 여가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선택한 비율도 저소득층일수록 높았다. 코로나 후 주요 여가활동을 묻는 말에 대해 ‘별다른 여가활동 없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7.3%였는데, 이를 가구 월 소득별로 보면 ▷100만 원 미만 18.9% ▷100만~300만 원 8.9% ▷300만~500만 원 5.9% ▷500만~700만 원 7.2% ▷700만~1000만 원 6.4% ▷1000만 원 이상 3.4%로 조사됐다.
코로나로 강화되는 여가 격차에 대해 부산시의회 박민성(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발생 전에도 시민의 여가 관련 지표는 뒤에서 1, 2위 수준이었다. 그나마 집 주변 공원에서 이웃과 떨던 수다마저도 코로나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자 스스로 포기하는 분이 많다”며 “이런 분을 위한 여가·문화 정책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