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사회생활 30년 지인, 알고 보니 부마항쟁 때 생명의 은인

피해자 인정 정남진 씨 한 편의 영화같은 사연

수십 년 만에 경북 포항 직장서 두 사람 재회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마민주항쟁 때 진압 경찰에 폭행당해 기절한 한 남성이 자신을 구해준 고등학생과 수십 년 만에 직장에서 재회했다. 타지에서 우연한 계기로 친분을 쌓은 동생이 바로 그날 거리에 쓰러진 자신을 병원까지 데려간 생명의 은인이었다.
부산대 부마민주항쟁 기념비. 국제신문DB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4일 정남진(64·경북 포항시) 씨를 항쟁 상이 피해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 17일 열린 제77차 본회의에서 이같이 심의·의결했다.

정 씨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79년 10월 18일 부마항쟁 때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경찰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휘말렸다. 당시 22세의 청년이었던 그는 초·중·고교에 시험지를 배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날도 배달을 위해 거리에 나선 정 씨는 당시 신마산역 인근에서 일어난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경찰을 목도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경찰은 무자비 그 자체였다. 그들은 최루탄의 하얀 연기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는 시민을 향해 마구 곤봉을 휘둘렀다. 피 흘리며 쓰러진 시민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연행 차량까지 가축처럼 질질 끌고 갔다. ‘어떻게 다친 사람에게 저럴 수 있느냐’는 마음에 피가 끓은 정 씨는 경찰의 곤봉을 빼앗아 저지하는 등 다친 시민을 구하려 애썼다.

시민을 지키려던 그 역시 경찰의 곤봉을 피할 수 없었다. 머리를 맞은 그는 바닥에 뉘어져 연신 구둣발에 짓밟혔다. 이가 3개 부러지고 왼팔이 골절된 그는 기절한 채 한참을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의식이 없는 그를 경찰서, 병원으로도 데려가지 않았다. 홀로 방치된 그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등학생 서너 명이 다가왔다. 이들은 정 씨가 의식을 차리도록 한 뒤 그를 마산 성모병원 근처까지 부축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한 정 씨는 이 고등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혹여 병원 측이 경찰에 폭행 피해자가 왔다고 신고해 뒤늦게 연행될까 두려웠다. 정 씨는 깁스 같은 응급 처치만 받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후 정 씨는 자신이 항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춘 채 생계에만 전념했다. 항쟁 때 경찰에게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정 씨는 1981년에는 마산을 떠나 울산을 거쳐 포항에 새 둥지를 틀었다. 1988년부터는 지역 대기업의 계열사에서 임원 운전기사로 일했다. 당시 그는 이 기업의 하청 경비업체에 다니던 동생뻘 지인 A 씨와 자주 어울렸다. 자신의 고향인 마산 말씨를 쓰는 그가 유독 반가웠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같은 고향 출신 지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10여 년 전 어느 날, A 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정 씨는 오랫동안 숨겨온 그 날의 기억을 들려줬다. A 씨라면 믿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참 정 씨의 말을 듣던 A 씨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형님, 그 사람 접니다.”

처음에 정 씨는 A 씨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A 씨의 설명을 듣고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밖에 믿을 수 없었다. 마산상고 학생이었던 A 씨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신마산역 인근을 거닐던 중 경찰의 시위 진압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한 남성이 거리에 쓰러져 있었는데, 낯이 익은 사람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에 늘 시험지를 배달해주던 분이 그날 피를 흘린 채로 기절해 있기에 친구들과 도와줬습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형님이었다니!”

정 씨가 진상규명위에 피해를 신청한 데도 A 씨의 권유가 있었다. A 씨는 그 때 당한 피해를 숨길 필요가 없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정 씨를 설득했다. 정 씨는 “40여 년 전 나를 구해준 데 이어 이번엔 명예를 회복하는 것도 도와줬다. 지금은 막역한 형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는 내 인생의 은인이다”고 말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추경에 밀린 북항…예산 23% 깎였다(종합)
  2. 2강서자이 에코델타 “특별공급 잡아라”
  3. 3연제1, 25살 나이 차 3번째 리턴매치…북구1, 기초→광역 16년만에 재격돌
  4. 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2> 걷기 강사 박미애 씨
  5. 5부산시장 후보 심층 인터뷰 <1> 더불어민주당 변성완
  6. 6은퇴 시즌 맞아? 불혹의 이대호 타율 2위 맹타
  7. 7신공항기술위, 공기단축 논의 착수
  8. 8동네를 바꾸는 백자의 힘…시민선거캠프 '동백' <1> 시민 제안 공약 분석
  9. 9[국립 인간극장] <17> 갓 - 정춘모 기능보유자
  10. 10[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어부바’ 배우 정준호
  1. 1연제1, 25살 나이 차 3번째 리턴매치…북구1, 기초→광역 16년만에 재격돌
  2. 2부산시장 후보 심층 인터뷰 <1> 더불어민주당 변성완
  3. 3동네를 바꾸는 백자의 힘…시민선거캠프 '동백' <1> 시민 제안 공약 분석
  4. 4주미대사 조태용, 질병청장 백경란(종합)
  5. 5부산시민이 꼽았다, 시장 후보에 전할 100개의 공약 제안
  6. 6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 임명 강행…한덕수 인준 불투명
  7. 7행안부 요직 두루 거쳐…인상 푸근해 ‘곰돌이’ 별칭
  8. 8부산 기초단체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14> 동래구
  9. 9부산 기초단체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15> 영도구
  10. 10여야 “해운대·남·사하 승리” 동상이몽…북·기장 예측불허
  1. 1추경에 밀린 북항…예산 23% 깎였다(종합)
  2. 2강서자이 에코델타 “특별공급 잡아라”
  3. 3제일전기공업 ‘AI스마트케어’ 매출 본격화
  4. 4주가지수- 2022년 5월 17일
  5. 5에코델타시티 품은 부산 강서구, 해운대 아파트값 넘을까?
  6. 6[단독]尹정부, 추경 이유로 부산항 북항 등 예산 줄줄이 삭감
  7. 7부산 강동 공공주택지구에 아파트 1598호 건설(종합)
  8. 8테라 ‘20% 수익 보장’에 이더리움 창시자 “바보 같은 말”
  9. 9북항재개발추진단장에 남재헌 부이사관 임명(종합)
  10. 10상하이 봉쇄 50일…부산항 영향 적어 ‘안도’
  1. 1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2> 걷기 강사 박미애 씨
  2. 2신공항기술위, 공기단축 논의 착수
  3. 3“노인복지 위해 양산시 직영병원 건립 추진할 것”
  4. 4“지방선거 불량후보 퇴출” 시민단체 결의대회
  5. 5오늘의 날씨- 2022년 5월 18일
  6. 6서부산의료원 어떤 시설 들어올까… 밑그림 작업 시작됐다
  7. 7부산교육감 두 후보 ‘강 대 강’ 70분
  8. 8부산항 북항 2단계에 지역정체성 담는다
  9. 9‘검찰의 시간’이 돌아온다…검수완박 무력화 전방위 공세
  10. 10돌아온 '캠퍼스 꽃' 대동제...게임하고 가요제 보려 티켓팅도
  1. 1은퇴 시즌 맞아? 불혹의 이대호 타율 2위 맹타
  2. 2살라흐 부상 결장…손흥민 득점왕 뒤집나
  3. 3상승세 이경훈, PGA 챔피언십 정조준
  4. 4[이준영 기자의 전지적 롯데 시점] 2군행 김진욱, 선발행 서준원…젊은피 희비
  5. 5김하성 NL 유격수 OPS(출루율+장타율) 공동 1위
  6. 6AC밀란 ‘명가의 부활’ 승점 1만 남았다
  7. 7시동 걸린 박민지, 'KLPGA 첫 '2주 연속대회 2연패' 도전
  8. 8스파크맨 개인 최다 이닝 던졌지만…롯데, 9회 KIA에 역전패
  9. 9아스널, 뉴캐슬에 0-2 완패…멀어지는 토트넘과의 4위 싸움
  10. 10번트안타·도루…롯데 황성빈 ‘2번 타자 우익수’ 대안 부상
우리은행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걷기 강사 박미애 씨
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안창홍 서양화가
  • 부산해양콘퍼런스
  • 부산야구사 아카이브 공모전
  • 낙동강 일러스트 공모전
  • 제21회 국제신문 전국사진공모전
  • 바다식목일기념 대국민 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