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습니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되고, 애원을 해도 안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습니다. 37년입니다.”
소금꽃나무. 1986년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용접공 김진숙(62) 씨의 별명입니다. 한국 첫 여성 용접공인 김 씨가 무려 37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만 60세 정년을 넘겨 복직이 어려운 듯 보였으나 노사 합의를 통해 명예복직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2018년부터 암 투병으로 수술까지 받았던 김 씨. 평생 소원이던 출근길에 오른 과정을 뉴스레터 ‘뭐라노’가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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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 김태훈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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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에서는 김 씨의 복직과 퇴직을 환영하는 노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김 씨는 피를 토하 듯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김진숙]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불심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차에 군홧발로 짓이겨 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
김 씨는 부산 노동계의 상징적인 인물. 2011년 한진중공업 생산직 400여 명이 구조조정되자 309일 동안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주역이기도 합니다. 전국에서 그를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5차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1982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용접공으로 입사합니다. 야학을 다니며 읽은 ‘전태일 평전’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1986년에는 사측의 이익만 대변하는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을 비판하는 홍보물을 배포했다가 3차례에 걸쳐 부산직할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됐습니다. 같은 해 강제로 부서 이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가 사측의 부당인사에 반발해 무단결근 하자 사측은 ‘징계 해고’라는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37년 간의 기나긴 복직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김 씨의 복직이 확정되자 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노동운동 역사의 귀중한 마침표’라며 환영했습니다. 노동계에서도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노사 합의를 통해 갈등의 골을 메운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직을 위한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동안 사측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근거로 복직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노동계는 “군사정권 시기 해고는 원천무효”라면서 갈등을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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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 텐트를 철거하는 노조. 김태훈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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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정년 6개월을 남긴 2020년에는 암 투병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450km 거리를 34일 동안 걷는 ‘희망 뚜벅이’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30년 넘게 꼬였던 실타래는 2021년 조금씩 풀렸습니다. 한진중공업을 인수한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사명을 HJ중공업으로 바꾸는 한편 노사갈등을 해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마침내 HJ중공업 노사는 최근 김 씨의 명예복직과 퇴직에 합의했습니다.
[홍문기 HJ중공업 대표이사] “명예복직과 퇴직을 맞이하신 김진숙 님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회사는 법률적 자격 유무를 떠나 과거 같이 근무하였던 동료이자 근로자가 시대적 아픔을 겪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명예복직과 퇴직의 길을 열어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기존의 한진중공업 적폐 경영진들과 관한 생각이 틀렸고 행동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먼저 HJ중공업 경영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김진숙 조합원의 복직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고 제가 보는 앞에서 이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금속노조의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습니다.”
김 씨는 자신의 복직이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김진숙]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단 한 명도 짜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김 씨는 꿈에 그리던 일터로 돌아온 25일 바로 퇴직했습니다.
[김진숙] “여러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김 씨의 복직이 노사 화합과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요. ‘뭐라노’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