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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주도하는 지역혁신 <2> R&D 전략 혁신

신규사업 몰두해 추가투자 멈칫…신성장동력 문턱서 좌절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배지열 기자
  •  |   입력 : 2022-03-29 20:05:56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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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 이기주의에 지방 한건주의
- EU식 스마트 전문화 전략 필요
- 기술·시설·인재·제도·정책 잇는
- 패키지형 R&D 방식 도입 절박

- 동남권원자력단지 극명한 사례
- 기장 주민 스스로 대범한 결단
- 20년 난관 속 미래 먹거리 창출

- 尹 공약 ‘방사선 융합 클러스터’
- 첨단치료·연구·산업·교육 연계
- 성장동력 ‘크리티컬 매스’ 눈앞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에 이르지 못하고 그 문턱에서 주저앉고 만다는 것이다. 막대하게 투자해놓고도 막상 이걸 지역 신성장동력으로 못 만들고 ‘딱 거기까지’에서 멈춘다.” 손동운 부경대 산학협력중점교수(과학정책)는 R&D(연구개발)와 관련한 한국 과학기술 현실을 지역 관점에서 짚어달라는 물음에 간명하게 답했다. 그는 부산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활동하며 과학기술 분야 현장을 두루 샅샅이 겪은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크리티컬 매스는 ‘어떤 변화를 실제로 일으키기 위해 닿아야 하는 최소한의 규모, 즉 임계규모이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DISTEP)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술-산업-사회 기획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역의 흩어진 역량을 융합하면 사업화를 통해 새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지방소멸과 균형발전 차원을 넘어 ‘지역 중심의 국가혁신체계’로 전환하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법·제도가 중앙 중심이다. 지역 중심으로 바꾸려면 법이 있어야 한다.” GDP 대비 R&D 투자 규모가 현재 한국보다 큰 나라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밖에 없다. 한국은 이 분야 초강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지역의 많은 과학기술 전문가는 R&D와 관련해 왜 걱정이 많고 비판적일까? 그들은 한국 R&D ‘전략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 혁신 모델, 지역에서 나온다

잠깐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EU의 스마트 전문화 전략(Smart Specialization Strategy·3S)이라는 지역 혁신 모델이 있다. 유럽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로 지역 성장이 정체되고 불균형이 심해지자, 외부 전문가에게 기대거나 모범사례를 획일적으로 모방하던 관행을 버린다. 대신 지역혁신주체(지자체+민간 등)를 세우고, 과학기술 관점에서 자원·강점·요구를 파악한 뒤, 지역이 잘할 수 있는 부문을 찾고, 조직적으로 투자를 집중해 성공했다. 이민규 부경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스마트 전문화 전략은 남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서 임계규모까지 키우는 것”이라며 “기업이 투자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하고 일정 규모로 성장할 때까지 투자를 지속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는 지역 성장과 지역 혁신이 ‘일방적 벤치마킹’과 ‘투자 남발’에서 탈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벤치마킹’의 참뜻과는 상관없이, 한국에서는 남이나 다른 지역이 창출한 성공사례를 그대로 가져와 따라하는 식으로 통용됐다. 문화예술 영역을 중심으로, 21세기에는 이런 방식이 안 통한다는 게 판명 났다. 대신 ‘우리 지역’의 사람·자원·강점·요구를 발굴해 창의적 기획을 하고, 공적 지원을 결합해 새롭고 구체적인 성과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그러면 거기 새로운 관계·공감·참여·서비스가 남고 경제와 일자리 창출도 돌아간다.

■ 이제 ‘패키지형 전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AI 윤석열’을 통해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단지를 방사선의·과학 융합클러스터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는 동영상 장면.
R&D 전략 혁신으로 돌아와 보자. 여러 과제가 절박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그 중심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이다. 손동운 교수는 “지역 개별 시설이나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기술-시설-인재-제도-정책을 통으로 모두 잇는 패키지형 전략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R&D를 개별 장비·시설 단위에 한정하면, 지역 혁신 차원에서 효율이 떨어지고 부처별 칸막이식 진행에 갇히기 쉽다. 복잡한 인·허가나 법령에 발목 잡히거나 장기적 사업 추진이 불안해질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지자체가 지역의 경쟁우위 부문을 육성해 성장동력으로 만들고 지역에 활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좋은 모델이 있다. ‘패키지형 투자플랫폼(R&D PIE)’이다. PIE는 Platform for Investment(투자) and Evaluation(평가) 약자다. 이는 주요 분야별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R&D사업과 기술·산업·인력·제도 간 연계 맵을 그리고 예산 배분에 적용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패키지 형태의 종합 지원을 하고, 유사·중복 사업 조정과 투자 공백 영역 발굴·지원이다. 현재, 정부 R&D 사업에 적용하는 R&D PIE는 2019년 OECD가 뽑은 대한민국 정부 혁신 사례에도 포함됐다. 원동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투자분석실장은 “R&D PIE는 그간 중앙 부처 중심이었는데, 지자체에서도 R&D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바탕 위에 EU 스마트 전문화 전략의 핵심인 ‘지역발전투자협약’이나 ‘계획계약제도’를 도입해 ‘협약에 의한 중장기 추진’을 시행하면 지역 R&D의 효율은 크게 올라간다. 지역 인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전략도 이어진다. 개별 시설·장비에 국한된 방식에선 그 과정에 성장한 인재의 지역 이탈을 막기 힘들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지역대학 인재에게 연구·훈련 참여 기회를 주고 일정 기간 일하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주는데, 이런 방식도 결합할 수 있다.

■ ‘크리티컬 매스’ 앞에 온 기장

한국의 지역 혁신과 관련해,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바로 부산에 있어 흥미롭다. 부산 기장군의 ‘동남권 원자력 의·과학 단지’다.

이 현장을 들여다보면, ‘지역 R&D 전략 혁신’으로 획기적인 지역 혁신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확연히 보인다. 동시에 한국의 지역 R&D가 ‘크리티컬 매스’를 돌파하기 직전에 머뭇거리는 한계도 볼 수 있다.

동남권 원자력 의·과학 단지는 탄생과 성장 과정부터 굉장히 인상 깊다. 2002년께 한국 최대 원자력발전소 밀집 지역인 부산 기장군의 주민들은 원전 지역에 주는 정부 보상금을 민원성 사업에 쓰지 않고,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방사선 의학과 방사선 과학 중심지로 기장을 키우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EU 스마트 전문화 전략을 빌리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미래 성장동력으로 가꾸고자 대범한 결단을 내리는 ‘의도된 일탈 (Mindful Deviation)’을 ‘집단적 기업가 정신’(Collective Entrepreneurship)을 통해 단행했다.

이런 결정은 세계에서 드문 일이었다. 그 뒤 숱한 난관이 닥쳤지만, 기장군은 부산시·지역사회·지역언론 등과 함께 극복하고 지역 R&D 시스템 등을 활용해 ▷동남권원자력의학원(2010년 개원) ▷중입자가속기(2023년 예정) ▷수출용신형연구로(2025년 예정) ▷동위원소융합연구기반시설(2024년 예정) ▷파워반도체상용화센터(2023년 예정)를 유치했다.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단지 자체는 올해 준공 예정이다.

■ 동남권 원자력 의·과학단지

그런데 여기서 멈췄다. 국내에 첨단의료복합단지나 바이오클러스터 등 국가가 지정한 의료단지는 10개가 넘는다. 하지만 임상을 할 수 있는 병원은 없고, 연구·행정·지원시설이 주축이다. 기장군처럼 전문 암센터와 꿈의 암치료기, 방사선 의약품생산시설이 모인 방사선 암 치료와 연구단지는 세계적으로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국가가 아니라 부산시가 지정한 일반산업단지일 뿐이다. 주요 시설과 장비에만 1조4000억 원이 투입됐으나 최근 10년 가까이 후속 계획이 없고 일부 부지는 용도변경까지 거론됐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동남권 원자력 의·과학 단지를 ‘방사선 의·과학 융합 클러스터’로 확대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부산시·기장군·부경대는 방사선 의학의 연구·치료·산업화를 병행하는 의사과학자(MD-Ph.D)를 육성할 ‘방사선 의·과학대학 설립’ 공동 업무협약을 2020년 맺었다. 부경대·기장군의회가 부산을 글로벌 암치료 허브로 만들기 위해 연구·치료·교육·지원시설 등 4개 분야 10개 시설 설립을 건의했고 국민의 힘은 이를 공약화했다.

정동만 국회의원(국민의힘·부산 기장)은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산업단지는 부산의 미래먹거리 산업의 중심축일 뿐 아니라 한국의 지역 R&D 혁신 차원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첨단 방사선 집적단지인 동남권 방사선의과학산단이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세계적인 방사선 의·과학 융합 클러스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공동기획=국제신문·부경대 과학기술정책전문인력육성지원사업단

동남권 방사선의·과학단지에 조성중인 의과학 핵심시설 사업비 1조1015억 원 투입

시설

 사업기간

면적

사업비

주요시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2004~2010

7만1725㎡

1749억 원

300병상, 암센터, 암연구센터, 방사선비상진료센터

중입자 가속기

 2010~2023

8만1743㎡

2606억 원

중입자치료센터, 연구시설동

수출용신형연구로

 2010~2023

13만495㎡

4389억 원

암 진단 및 치료용 동위원소 생산, 중성자 도핑시설 등

동위원소융합연구기반시설

 2017~2022

1만9369㎡

331억 원

RI 융합기술 사업화 연구·지원시설 등

파워반도체 상용화센터

 2017~2023

4만5490㎡

1940억 원

파워반도체 연구플랫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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