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속·수용 전 과정 인권유린
- 부랑인 입소자 3만8000여 명
- 의문의 사망 다수·사유서 조작
- 약물 과다·화학적 구속 정황도
# 보안사 요원 위장 침투해 관리
- ‘조직적 불순분자 집단’ 명명
- 교도소보다 강한 규율로 통제
- 공안사범 신원 특이자로 수용
# 검찰 수사에도 비호 받은 원장
- 수용자 자립적금 미지급·착복
- 아동은 호적 말소·가족과 이별
- 市, 피해자 진정·소송 회유도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설치와 운영에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확보했다.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수사·공판 기록과 부산 각 경찰서 소장 ‘즉심사건부’ ‘구류자명부’ ‘소년범죄사건처리부’, 각 시설별 아동카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카드 등을 비롯해 보안사 문건, 정신과 약물 투입 목록 등을 입수했다.
■화학적 구속·보안사 감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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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대우 씨가 24일 자택에서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발표를 접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민철 기자 |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657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애초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많은 수치다. 사망자 통계·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다. 또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에는 응급 이송 중 사망(DOA, Dead On Arrival) 같은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망진단서도 조작한 것으로 확인했다.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4년에는 최대 4355명에 달했다. 수용자들의 사망자 수도 일반 사망보다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한 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당시 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0%였다. 결핵사망률은 더 높았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무려 29.2배 높았다.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하는 ‘화학적 구속’ 정황도 나왔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 정인데, 이는 1년간 342명(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 총 395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1986년 형제복지원 회계에서 지출된 ‘정신환자시약비’는 총 1267만여 원으로, 일반환자시약비 1015만여 원보다 많았다. 진실화해위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에는 정신과 전문의약품으로 정신분열증과 양극성장애 치료제인 할로페리돌, 간질성 경련 및 부정맥치료제인 디펠과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 바리움·달마돔 등도 포함됐다. 위원회는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군보안사령부가 형제복지원을 관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납북 귀환 어부 김모(당시 29세) 씨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위장 침투시켰다. 보안사는 1986년 5월 8일 이 수사 공작을 ‘갈채 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을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인 집단행동 유발가능성이 높은 집단’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하는 곳’으로 판단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해 관리체계를 구축했다.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을 어긴 공안사범을 신원 특이자로 구분해 강제 수용한 사실도 밝혀졌다. 공안사범 15명은 사회안전법 및 요시찰인 업무조정 규정에 의해 관리됐다.
■공기관 전방위 비호 받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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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씨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갔음을 입증하는 관련 문서. |
진실화해위는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한 대가인 자립적금을 형제복지원이 미지급하거나 착복했다고 봤다. 1986년 1인당 평균예입액은 55만819원인데, 1인당 평균 지급액은 20만4729원으로 34만6090원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자립적금 몰수 사실은 박 원장 수사 당시 검찰이 압수한 ‘기증금 세입결의서’ ‘기증금 출납부’ 등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조사 과정에서 48년 만에 가족을 상봉한 사례도 확인됐다. 진실규명 신청자인 설모(54) 씨는 여섯 살이던 1974년 부산역 부근에서 단속반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다. 설 씨는 입소 당시 신상기록카드에 생년월일 오기, 주소 불명으로 기재됐다. 가족들은 설 씨를 찾지 못해 군대 소집 불응에 따른 벌금이 부과되자, 사망 신고했다. 설 씨는 1982년 형제복지원을 탈출해 배달원, 공사장 잡부 등을 하며 살아왔다. 설 씨는 지난 1월 48년 만에 남동생과 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났다. 유전자 검사를 받아 혈연관계를 입증하고, 현재 원적 회복 절차를 밟고 있다.
이처럼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아동 피해자 상당수가 성명과 생년월일 등 중요한 신상정보가 변동돼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이중 호적이 만들어진 후 원호적이 말소 처리된 사례 등이 다수 나타났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 경찰 안기부 등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한 점도 확인했다. 특히 시는 피해자와 유족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이 다시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