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태풍 힌남노가 지금의 위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에 상륙한다면 태풍 매미(2003년) 때와 맞먹는 재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미가 불어닥친 당시 부산 울산 경남이 태풍의 위험반원에 들어가면서 유독 큰 피해를 봤는데, 이번 태풍 역시 부울경이 위험반원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이날 오후 1시 기준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약 370㎞ 해상에서 시속 17㎞로 북진 중이다. 현재 중심기압은 930hPa이며, 최대 풍속은 50㎧다. 6일 오전 8시 전후로 부산에 근접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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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부산항 5부두에는 대형 크레인 2대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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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륙 후 최대풍속이 가장 빨랐던 태풍은 ‘바람의 태풍’이라 불린 매미다. 태풍의 위력은 하루 최대 풍속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점에서 그 악명을 짐작할 수 있다. 거센 강풍을 동반했던 매미는 제주 고산 수월봉에 처음 상륙할 무렵 최대풍속 60㎧를 기록했다. 부산에도 47㎧에 달하는 위협적인 강풍이 불었다. 태풍의 최대풍속이 54㎧를 넘으면 ‘초강력’으로 분류된다. 44~53㎧는 ‘매우 강’, 33~43㎧는 ‘강’, 25~32㎧는 ‘중’으로 묶인다. 힌남노가 6일 오전 6시 부산 남서쪽 90㎞ 부근 바다에 이를 때 최대 풍속은 43㎧ 수준(강)으로 예상된다.
매미가 가져온 피해는 가히 ‘역대급’이었다. 그해 9월 12, 13일 약 7시간을 머무는 동안 발생한 이재민은 4089세대(1만975명)이다. 이 중 경남이 2330가구(6428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부산도 511가구(1552명)가 보금자리를 떠나 대피해야 했다. 인명피해 역시 경남(63명)이 가장 많았다. 부산(16명)도 적지 않은 이가 죽거나 다쳤다. 주택이 잠긴 사례도 경남(1만1067동)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산의 주택 또한 2996동이 침수당했다. 그달 12일 부산항 신감만부두에 서 있던 갠트리 크레인(980t) 11대(3대 궤도이탈)가 강풍에 맞아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사건은 지금도 부산지역 태풍 피해 사례의 대표적 장면으로 손꼽힌다.
부울경에 태풍 피해가 몰린 건 매미의 위력 외에도 접근 궤도의 영향이 컸다. 당시 매미의 중심이 경남 사천시(당시 삼천포) 인근에 상륙한 데다, 태풍의 위험반원에 이곳이 들어간 영향이다. 태풍이 이동할 때 진행 방향 오른쪽의 바람은 강해지고 왼쪽은 약해진다. 부울경은 매미의 오른쪽에 위치했다.
태풍의 오른쪽 반원에서는 태풍의 바람 방향과 이동 경로(편서풍)가 서로 비슷해 풍속이 빨라지지만, 왼쪽 반원에서는 그 방향이 서로 반대가 돼 상대적으로 풍속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태풍의 오른쪽 반원을 위험반원, 왼쪽 반원을 가항반원이라고 한다. 즉 오른쪽 반원에 자리한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이다. 여기에 매미가 온 시간과 만조 시간대가 겹쳐 해일 피해까지 동반됐다.
이번 태풍 때도 부산은 오른쪽 반원에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힌남노는 6일 오전 7시 전후로 경남 해안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부산과 울산의 북서쪽 30~40㎞를 지나겠다. 이대로라면 부울경은 태풍의 오른쪽 반원, 즉 위험반구에 놓인다. 다만 태풍의 진행 방향과 무관하게 중심지역 인근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을 지나게 되면 좌우 상관없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기상청 한상은 총괄예보관은 “힌남노 진로에 따른 폭풍 반경을 보면 남부지방은 물론 충청남부와 강원남부 일부 등도 들어간다”라면서 “태풍 진행 방향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폭풍 반경에 들면 매우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예상대로면 힌남노가 남해안을 지나는 시간대가 만조 때와도 겹친다. 기상청은 경남 해안을 중심으로 폭풍해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6일 만조시간을 보면 경남 거제와 마산(창원)이 각각 새벽 4시 41분과 새벽 4시 48분, 부산이 새벽 4시 31분이다.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등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한편 정전과 단수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미 때 부산에서는 전신주가 넘어지면서 33만 세대가 정전 사태를 맞았다. 감전으로 사망자가 속출한 만큼 외출을 삼가하는 것이 좋다. 해안가 접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당시 파도에 쓸려가 실종된 사람이 다수였다.
원자력 발전소 5기(고리1-2-3-4호기, 월성 2호기) 또한 가동 중단됐다. 부산 월래정수장 등 23개 시·군 47개 정수장이 가동 중단돼 식수 공급도 끊겼다. 시민 정선희(여·38·부산 연제구) 씨는 “매미 때 멋모르고 일찍 집을 나섰다가 뒤늦게 휴교 사실을 알아 낭패를 봤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전 영역에서 선제 조처에 나서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