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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라면·과자에 없는 점자…‘훈맹정음’을 허하라

시각장애인들은 키오스크도 사용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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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라면 순한’이라고 표기된 점자.이우정PD
‘훈맹정음’. 시각장애인들이 글자를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점자 이름입니다.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 한글인 셈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훈민정음’과 달리 ‘훈맹정음’은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키오스크나 자판기에도 점자가 잘 보이지 않는데요.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손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필수적입니다. 일상생활에선 점자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경우가 드문데요.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시각장애인에겐 어려움이 따릅니다. 점자가 표기된 물건이 거의 없기 때문.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가 물건의 점자를 손으로 읽고 있다.이우정PD
서로 다른 캔음료에 제품명이 아닌 ‘음료’(좌), ‘탄산’(우)이라고 점자가 새겨져 있다.이우정PD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 “이건 다 커피들이네요. 캔 같은 경우에는 웬만하면 점자는 다 붙어 있는데, 다 그냥 ‘음료’라고만 적혀있어요. 정확한 상품명이 없어서 솔직히 내가 어떤 걸 먹고 싶다고 해서 고르는 건 좀 힘들고... 컵라면도 점자가 적혀있는 거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딱 하나 본 적 있어요. 진라면! 진라면 순한 맛이었는데... 과자는 점자가 없어요. 내가 까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난해 한국식품산업협회 161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 7개 업체만이 식품에 점자 표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저도 제품명이 아닌 음료, 탄산 등으로 약식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분이나 유통기한 등의 정보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표준 규격 또한 정해지지 않아 위치나 방향, 간격 등이 제각각입니다. 식품의 점자 표기가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보니 참여도는 현저히 낮은 상태입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시각장애인 고객들이 물건을 사서 얻는 이익보다 시각장애인 고객을 위해서 이런 점자 표기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다고 지금 기업들은 판단하고 있는 거죠.”

[한지혜 부산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처음 시도가 어렵지 (점자를 도입) 하고 나면 그게 계속해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되는 일은 아니거든요.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나 저희들도 저희가 원하는 제품을 저희 돈으로 직접 구입해서 소비할 권리는 있는 거잖아요.”

‘후시딘 연고’라고 적힌 점자.이우정PD
의약품의 경우 지난해 약사법 개정에 따라 2024년부터 점자 표기가 의무화되는데요. 구체적인 기준과 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적용 대상이 ‘안전상비의약품 및 식약처장이 지정한 품목’에 한정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이게 작년 7월에 개정이 됐고 시행은 3년 뒤예요. 2024년 7월부터예요. 그러니까 아직 시행되기 전인 거죠. 그래서 그 기준 같은 것도 아직 안 만들어 놓은 거죠. 보통 시행될 때 맞춰서 만들거든요. 어떻게 보면 법이 없는 상태다라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공공시설의 점자 표기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행정복지센터 203개 중 점자 편의시설이 부적정하게 설치된 경우가 35.7%, 설치되지 않은 경우도 35.3%에 달했습니다.

[한지혜 부산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공공기관의 편의시설 점검을 하러 직접 나가기도 하거든요. 그 기관에 대한 길 안내, 약도 표지 그런 촉지도라는 게 있어요. 근데 거기를 관리를 안 하다 보니까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그거를 점자로 만지면 진짜 손을 여러 번 씻어야 하는 상황도 있고...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이런 점자 표기가 거꾸로 되어 있다든지...”

키오스크를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 이우정PD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편리함의 상징이 된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또한 시각장애인에게 넘어야 할 관문입니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이 역시 오랜 유예기간이 설정돼 당장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 “이게(키오스크가) 터치식인가요? 그래서 저희는 불가능합니다. 보통은 키오스크 있는 집에 가면 종업원분들에게 부탁해서 카운터에서 주문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고... 누르는 게 뭔지를 얘(키오스크)가 말해주지도 않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내가 닿는 순간 선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는 노릇이어서...”

[한지혜 부산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최근 들어 식당에 가면 그냥 그 앞에 큰 쇳덩어리가 하나 있는 거지 그거를 저희가 보고 활용하고 할 수가 전혀 없어요. 기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나 노년층이 왔을 때는 이런 부분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를 권고가 아니라 그게 법으로 같이 선행되었으면 좋겠고...”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이우정PD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 “ATM기 같은 경우는 이어폰을 꽂으면 이제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인 걸 인식해서 안내를 시작한단 말이죠. 거기서 입금은 1번, 출금은 2번 이렇게 하고 그 옆에 키패드 형식으로 되어 있는 판이 있어요. 키오스크에서도 음성 지원이랑 키패드 형식 버튼 형식 그런 게 있으면 충분히 키오스크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사실은 이게 터치 기반이어도 스마트폰 같은 경우는 시각장애인들이 다 사용하거든요. (시각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두 대를 설치하면 그중에 한 대라도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어쨌든 기술은 있으니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의 외곽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각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은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지혜 부산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우리 이용인 중에 한 분이 추석에 선물을 받으셨어요. 비닐에 들어 있는 곰탕 같은 거를 받으셨는데 아무 표기가 없으니까 본인은 그게 트리오라고 생각한 거예요. 리필형 트리오. 저희에게는 점자로 식별의 기준을 두지 않으면 그냥 비닐에 든 내용물이에요. 내용물을 뜯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시각장애인 김한수(26) 씨] “친구 집에 한번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잠시 밖에 나가 있고 씻고 나서 스킨 좀 빌린다고 해서 스킨을 찾았는데 스킨 통처럼 보였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스킨 통이 아니라 향수더라고요? 그거를 바르고 알았다는... 점자가 어느 순간에 필요하다라고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바꿔서 말하면 비장애인분들한테 ‘글자가 어느 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거랑 같은 말이기 때문에...”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길 안내를 돕는 기기다.이우정PD
훈맹정음은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발표한 것으로, 시각장애인들이 한글과 같은 원리를 통해 글자를 익히도록 한 고유 문자체계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10월 15일은 흰 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 11월 4일은 한국 점자의 날입니다. 소외된 장애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아닌 똑같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많은 제도적 변화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제신문이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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