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에 ‘항쟁관련자’로 인정
- 올해 상해·트라우마 보상금 받아
- 재단 “관련자 상처 치유에 쓸 것”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 시위대를 따라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구금돼 43일간 폭력과 고문에 시달린 김효영(57) 씨가 피해보상금을 기증했다. 그의 나이 만 14세 때 겪은 피해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그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부마항쟁으로 구금을 당한 피해자 가운데 최연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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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항쟁 피해자인 김효영 씨가 3일 보상금을 기부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사무실에서 김 씨의 보상금 기증식을 열었다. 이날 김 씨는 항쟁 피해보상금 일부를 재단에 전달했다. 2019년 항쟁 관련자로 인정된 김 씨는 올해 상해·트라우마 피해 보상금을 받았다. 그는 자신과 같이 피해를 당한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재단에 보상금을 기증했다. 김 씨는 “기부금이 저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를 찾는 데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1979년 당시 부산 신선중학교 3학년이던 김 씨는 만 14세였다. 방학 기간 친구 2명과 집을 나와 마산(현 경남 창원시) 중성동의 중국집에서 배달부로 일했다. 그 해 10월 18일 그는 우연히 항쟁 시위대를 목격하게 됐다. 신기한 마음에 시위대에 합류한 그는 경찰의 몽둥이질에 머리가 깨졌다. 김 씨가 또래보다 덩치가 커 그를 시위대로 오해한 것.
골수가 보일 정도로 크게 다친 상태로 연행된 그에게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고문과 학대가 기다렸다. 경찰은 그에게 파출소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는 누명을 덮어 씌웠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그런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항변하면 ‘거짓말을 한다’며 수갑을 채워 거꾸로 매단 채 고춧가루 탄 물을 코에 들이붓는 일명 ‘통닭구이’ 고문을 가했다. 고향이 부산이란 이유로 ‘원정 시위대’로 몰아가기도 했다.
김 씨는 구금 43일 만에 석방됐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복학을 거부당했다. 전학가려고도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그는 항쟁 시위대를 따라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중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지금도 인생을 망친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오랜 시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이들을 향한 분노를 삭혀야 했다. 2020년에는 소설가 하명희가 김 씨의 인생을 소재로 ‘손수건’이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재단 최갑순 이사장은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유에 기부금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최 이사장도 부마항쟁 참여자로서 경남대 시위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23살이었던 나(최 이사장)도 그 지옥 같은 참상에 힘들어했는데, 14살의 소년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미안한 마음이다. 살아 있어줘 너무 고맙다”며 “(부마항쟁 피해자) 1563명 중 400여 명밖에 진상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을 대변한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돕는 데 기부금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