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부랑인 시설 인권유린 증언] 수백 명 살던 시설, 일주일간 연탄 30장 주문…도망친 아이들 살려달라, 숨겨달라고 부탁도

당시 장림·신평 주민 목격담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2-11-13 20:20:38
  •  |   본지 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75년 당시 서구(현 사하구) 장림동 일대 항공사진. 왼쪽 사진 속 초록색 선은 당시 영화숙의 대표 번지(장림동 121·현 신평동 569-34)를 나타낸다. 1980년대 쓰레기로 땅이 매립되기 전 이곳 일대는 부산의 외곽 지역으로, 논밭과 갈대 습지가 가득했다. 사진제공=부산시, 부산 사하구
“족히 수백 명은 살았는데 연탄은 30장밖에 주문하지 않아 의아했죠. 대여섯 명이 일주일 쓸 양도 안 되거든요. 사무실에서 일하는 관리자들만 난방을 하고, 저 어린아이들은 얼음장 위에서 자는가 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 전역의 부랑아를 잡아다 집어넣은 시설이 영화숙 아닙니까. 그 시절 부랑아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가혹했겠어요.”

최영만(66·사진) 씨가 기억하는 1960년대 부산 최대 부랑인 시설 영화숙의 모습이다. 그는 사하구 신평동에서만 50년 이상 살았다. 그런 최 씨는 “당시 신평·장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영화숙을 모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산비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까머리 어린이들이 밭일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산역 등 각지에서 ‘소탕’된 부랑아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건 물론, 저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산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짐작됐다. “다들 못 먹고 사는 시절인데 부랑아들이 모인 시설에서야 오죽했겠나”는 거다.

그는 영화숙이 주문한 연탄을 배달하며 몇 차례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친구가 ‘영화숙에 들어가기 무섭다’며 부탁해온 통에 하는 수 없이 일을 맡았다. “우중충한 시멘트벽으로 된, 그리 크지도 않은 건물이었다. 여기가 수백 명이 사는 곳 맞나 싶었다. 주문하는 연탄도 적어서 어떻게 생활하는 건지 궁금했다”고 한다. ‘내 아이가 이곳에 갇혀 있다’며 도움을 청하는 외지 사람도 적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영화숙에 찾아가 연고를 확인해주면 마지못해 아이를 풀어줬다.

당시 동네 아이들에게 영화숙은 ‘귀신의 집’과 마찬가지였다. 신평동에서 10대를 보낸 김남주(가명·여·62) 씨는 “그 시절엔 주로 갈대밭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해가 지면 집집이 엄마들이 나와 아이를 데려가는데, 우리 엄마는 ‘자꾸 돌아다니면 ‘영화소’(영화숙)에서 잡아간다’고 겁줬다”고 기억했다. 저곳에 한 번 잡혀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못하고, 도망이라도 갔다가 잡히면 맞아 죽는다는 소문도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영화숙 아이들은 밭일 외에도 갖가지 노역에 동원됐다. 고된 생활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도망쳐 나온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신평동 토박이 오형자(여·67) 씨는 “내가 11살 무렵이다. 바닷물이 밀려오니까 영화숙 아이들을 시켜 돌담으로 둑을 쌓는 걸 봤다. 삽에다 끈을 묶어서 한 사람은 땅을 파고 두 사람은 끈을 당기는 식이었다. 울타리를 치거나, 갈대를 뽑아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다”며 “도망쳐 나온 아이들이 살려달라, 숨겨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이 아이들 하는 말이,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고 했다. 영화숙 출신의 남편 없는 여자가 아이와 함께 우리 마을에 정착해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대에 장림시장에서 옷 가게를 운영한 김태영(가명·여·60대) 씨는 “임신한 여성을 비롯해 허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담벼락 근처 햇볕 드는 곳에 쪼르르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바람을 그런 식으로 버텨내고 있었던 거다. 주변에는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는데, 손에 몽둥이 또는 방망이로 보이는 걸 꼭 쥐고 있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일 텐데, 참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사회통계연보를 보면, 영화숙의 당시 대표 지번은 ‘부산 서구 장림동 121’로 확인된다. 오늘날 ‘부산 사하구 신평동 569-34’와 그 주변부에 해당한다. 배고개~구평고개에 깔린 야트막한 비탈로, 현재는 공장과 상업 시설, 아파트가 자리한다. 1980년대 신평동 일대에 공단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논밭과 갈대 습지로 채워진 공간이다. 1960년대 이곳 주민은 고개 비탈에 올라 영화숙과 재생원에서 생활하는 ‘부랑인’을 직접 지켜봤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3. 3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4. 4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5. 5‘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근교산&그너머] <1484> 통영 학림도 망산
  8. 8147일 만에 투표지 공개 검증
  9. 9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10. 10아직 관객 많은 ‘오디세이’인데…아이맥스관에서 내린 사정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3. 3[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4. 4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5. 5‘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론 못낸 당정
  6. 6李 대통령 “국민 생명·안전 지키기가 최우선”
  7. 7여야 ‘조희대 국조’ 두고 공방 격화
  8. 8[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9. 9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10. 10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1. 1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2. 2‘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3. 3부산시 “부산에 글로벌 AI 허브 유치하겠다”
  4. 4퇴직금 2028년부터 사외적립…체불 예방
  5. 5미래에셋·대신증권·빗썸도 뚫렸다(종합)
  6. 6사실상 금융업 전체가 다 털릴 판…靑, 긴급 대응회의(종합)
  7. 7첫 100조 분기매출 하닉 “100조 주주환원 하겠다”(종합)
  8. 8전용터미널·화주 인센티브 등 북극항로 상업운항 지원 요구
  9. 9부산과학기술협의회·CTO평의회 역량 확대
  10. 10부산銀 센텀센터, 스타트업 지원 거점화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3. 3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4. 4영업중단 이어 단전 위기…피가 마르는 홈플러스 입점업체들
  5. 5아울렛서 만나는 김해 도자기
  6. 6후배 경찰 신체 ‘덥석’…파출소 팀장 추행 혐의 피소
  7. 7부경대 5108명 정보유출…위탁보안 비상
  8. 8“일부 수사 강압·부실” 부산변회, 권한 커진 경찰 첫 평가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9일
  10. 10“공장화재 대원 고립됐다” 실전같은 훈련
  1. 1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2. 2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3. 3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4. 4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5. 5‘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6. 6‘은퇴 기로’ 손아섭, 2년 만에 NC로…3000고지 향한 행진 계속
  7. 7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8. 8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9. 9김해FC, 제6대 사령탑에 설기현 감독 선임
  10. 10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우리은행
위기가정 긴급 지원
홀로 질병과 생활고 견디는 독거노인…수도까지 끊겨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노후 산단을 스마트 밸리로 혁신…구 소유 건물 팔아 재정 안정화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