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알아야 할 위트컴 장군 <4>한복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한 이유는
리차드 위트컴(1894~1982) 유엔군(미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준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시의 도심 기능을 복원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선행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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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트컴 장군이 부산 메리놀 병원 건립을 위해 한복을 입고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트컴희망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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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 부지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메리놀병원 신축에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군은 주어진 미군대한원조(AFAK) 기금을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차원을 넘어 부산 시민을 위한 일을 찾아 다녔다.
메리놀수녀회가 1950년 4월 부산 중구 대청동 4가, 현 부산가톨릭센터 자리에 진료소를 열고 무료 진료에 들어갔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부상자와 피란민이 밀려들면서 진료소의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병원 측은 위트컴 장군과 AFAK 지원을 받아 지상 3층, 16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증축하기로 하고 1954년 7월 29일 기공식과 함께 공사에 들어갔다.
병원 신축이 공사비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위트컴 장군은 예하 미군 장병에게 월급의 1%를 공사비로 기부하게 하며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장군은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 시내를 활보했다. 부산시민에게 널리 알려 더 많은 병원 건립기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다. 부산시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사령관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셈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 격주간지 <라이프(Life)> 1954년 10월 25일 자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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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1월 13일 라이프에 소개된 한복 차림의 위트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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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 장군은 예하 부대원에게 “부산지역 기관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거나 안 입는 옷, 선물, 돈, 기타 물품을 기부하라”고 지시했다고 미국 <성조지(Stars and Stripes)>는 1954년 1월 13일 자에 보도했다.
메리놀병원은 우여곡절 끝에 착공 8년 만인 1962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종합병원을 준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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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7월 29일 부산 메리놀병원 신축 기공식이 위트컴 장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강석환 부산관광협회 부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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