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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 시설 인권유린 증언] <3>5살 무렵 잡혀간 황송환 씨

“인생 첫 기억이 영화숙 갇힌 것…폭력 묵인 부산시가 주범”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2-11-20 19:35:03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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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에게 끌려가 갇혀 살다
- 11살 재생원서 강제노역 시작
- 제식 훈련에 매질 등 부지기수

- 경찰 자녀 사망사고에 풀려나
- 이후 형제복지원서 악몽 반복
- 이름·시설만 바뀐 부랑인 시설
- 잡히지 않는게 사는 길이었다

옛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인 영화숙·재생원과 ‘형제복지원’은 본질적으로 같은 공간이다. 시대와 장소만 다를 뿐 피해자들은 동물보다 못한 삶을 버텨야 했다.

일종의 ‘사설 감옥’이 죄 없는 시민을 가두고 때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산시 같은 공공기관의 지원과 묵인이 자리한다. 국가폭력의 무대였던 셈이다.

국가가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해야 할 곳은 지금도 수두룩하다. 부산에선 형제복지원에 앞서 영화숙과 재생원이 있었다. 부산 바깥에선 서울시립아동보호소와 갱생원(광주)·선감학원(경기)이 운영됐다. 더하거나 덜할 것 없이, 수용인들은 공히 국가폭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피해자들은 “예전 한 두 군데 집단수용시설이 ‘인권을 침해했다’는 식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 국가폭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가 중요하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까지 시야를 넓혀야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1960~70년대 부랑인 수용시설 피해 생존자인 황송환(가운데) 씨 등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권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영화숙·재생원에서의 유년기

황송환(70) 씨의 인생 기억은 ‘영화숙’에서 시작된다. 5살 무렵인 1957년 끌려갔다. 그 이전의 기억은 희미하다. 가족의 얼굴이나 이름도 알지 못한다. 엄마는 꿈에서 딱 한 번 봤다. 꿈속에서 엄마는 황 씨가 영도구 남항동에서 태어났으며, 동생이 둘 있다고 가르쳐줬다. 엄마와 동생의 이름도 꿈에서 처음 알게 됐다. 꿈속 대화가 가족에 관해 황 씨가 아는 유일한 정보다. 그는 지금도 꿈에 엄마가 들려준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영화숙에 들어가게 됐는지 모른다. 낯선 아저씨 손에 붙잡혀 하얀 차를 탔다는 어렴풋한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그곳에는 또래 아이가 많았다. 친구들과 소꿉장난이나 술래잡기, 구슬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밥도 세 끼를 다 먹었고, 강제로 노역을 당하지도 않았다. 한 방에서 10명가량이 함께 지냈는데, 겨울에는 난로를 피워줬다. 바깥에 나갈 수 없어 심심하다는 것 외엔 지낼 만했다.

그렇게 황 씨는 영화숙에서 6년을 살았다. 11살이 되던 해 영화숙 바로 옆에 자리한 ‘재생원’으로 옮겨갔다. 왜 갑자기 거기로 가게 됐는지 모른다. 아이들만 있던 영화숙과 달리 재생원에는 나이 많은 어른도 더러 섞여 있었다. 한 방에 수용되는 인원도 족히 수십 명은 됐다. 일과도 영화숙과는 너무 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식 훈련을 받아야 했다. 몽둥이로 얻어맞는 등 폭행을 당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황 씨는 “재생원 노래가 있었다. ‘오늘도 찬 바람이 살살 부는 재생원, 모여라 엎드려라 엎드려 뻗쳐라…’ 아침 호루라기 소리에 기상해 이 노래를 부르면서 구보했다. 제식 훈련은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맡았다. 왼발 오른발, 좌로 삼 보 우로 삼 보, 그렇게 굴렸다. 동작이 늦으면 ‘다 튀어나와’라며 몽둥이로 팼다. 식사는 손바닥만큼 줬다. 그것도 빨리 안 먹으면 혼내고 때렸다”고 증언했다.

수시로 날아드는 매질에 다치거나 죽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황 씨도 그때 종아리를 맞은 탓에 지금도 거동이 편치 않다. 맞아 죽은 아이들은 가마니에 말아 야산에 묻었다. 아이들이 삶의 비참함에 허덕일 때 원장 내외는 민간단체가 후원한 구호물품을 빼돌려 팔았다. 황 씨는 “원장이 밤 11시가 될 무렵 트럭에 미군이 주고 간 간식을 가득 싣고 나가는 걸 여러 차례 봤다. 국제시장 같은 데다 가져다 파는 거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시설 아닌 국가의 문제”

영화숙·재생원 등에 강제수용된 황송환 씨.
황 씨는 1년 만에 재생원을 빠져나왔다. 탈출이 아니라 시설에서 풀어줬다. 그의 기억에 경찰 간부의 아들이 재생원에 잡혀갔다 죽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서 서장 아들이 제식 훈련 중 머리를 잘못 맞아 죽었는데, 재생원에서 도망친 아이들 몇 명이 이걸 경찰에 이야기했다. 지프차 여러 대가 와서는 ‘내 아들 어디다 묻었느냐’며 강하게 따졌다. 이 일을 계기로 수용인 여러 명이 재생원에서 나오게 됐다”고 했다.

황 씨의 불행은 재생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밥벌이를 위해 그는 아이스크림이나 껌을 팔거나 구두를 닦았다. 넝마주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거리를 집 삼아 살던 그는 1967년 동구 초량시장에서 잠자던 중 난데없이 순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순경이 집이 어디냐고 묻길래 집이 없다고 했더니 남구 용당동 형제원(형제육아원)으로 끌고갔다”고 회상했다. 형제육아원은 형제복지원(사상구 주례동)의 전신이다.

형제육아원에서의 삶은 재생원과 다르지 않았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곡괭이 자루가 날아들었다. 형편없는 식사와 군대식 관리도 똑같았다. 3개월 만에 형제육아원을 탈출한 황 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와 부산 소년의집을 전전했다. 그러다 1975년 남포동에서 또 다시 형제복지원 선도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렇게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4년간 폭행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황 씨는 “영화숙·재생원이나 형제복지원이 아니라 국가에 인권유린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맞는 걸로는 재생원이, 억지 일을 시키는 건 형제복지원이 심했어요. 부산시나 정권이 부랑인은 다 잡아 넣으라는 지시를 내려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겁니다. 잡혀 들어가지 않는 게 사는 길이었습니다. 부산시나 국가로부터 사과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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