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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93> 기 리 이 미 ; 헛똑똑이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2-12-05 19:57:2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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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巳) 이(已) 기(己)는 모양이 비슷하다. 세 한자의 의미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다. 뱀을 뜻할 때 쓰이는 한자는 뱀 사(蛇)다. 뱀 사(巳)는 열두 띠인 12지를 따질 때 여섯 번째 동물인 뱀의 뜻으로 빌려다 쓴 글자다. 원래 巳는 뱀이 아니라 태아를 그린 한자다. 엄마 뱃속 巳는 아직 바깥 세상으로 나온 생명체가 아니다. 슬슬 바깥 세상으로 나올 때가 되면 이(已)가 된다. 100% 완전하진 않아도 이미 생명체로 여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미 이(已)다. 글자 왼쪽 윗부분 선이 다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선이 다 없어지면 완전한 자기로서의 생명체가 된 것이니 몸 기(己)다.
기 리 이 미로 끝나는 하찮은 동물들과 하찮은 인간.
모든 생명체는 몸(body)을 가지고 있다. 마음(mind) 정신(spirit) 영혼(soul)만 가진 이 세상 생명체는 없다. 크든 작든 생명체는 몸이 있다. 생명체는 몸 己를 가진 존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기로 끝나는 동물들이 있다. 여기서 기는 충전기의 틀 기(機)나 도자기의 그릇 기(器)가 아니라 몸 기(己)에 가깝다. 기러기 뻐꾸기 메뚜기 구더기 모기 노래기 등…. 고기도 살을 가진 동물의 몸이다. 아마도 이 기가 발음의 편의상 몸을 나타내는 접미어인 리 또는 이로 바뀐 것 같다. 리와 이 접미어로 끝나는 동물들은 많다. 접미어 앞 글자에 받침이 없으면 리로 끝난다. 해파리 개구리 오소리 이리 잠자리 파리 오리 가오리 멍텅구리 코끼리 독수리 거머리 병아리 너구리 노고지리 꾀꼬리 딱따구리 종다리 불가사리…. 접미어 앞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이로 끝난다. 지렁이 고양이 원숭이 송충이 거북이 올챙이 호랑이 부엉이 달팽이 풍뎅이…. 아직 지금 내 머릿속에 미처 떠오르지 못한 기 이 리 접미어 동물들이 또 더 많을 줄로 안다. 또한 개미 거미 올빼미 피라미처럼 미 역시 동물을 뜻하는 접미어다. 기 이 리라는 접미어 발음이 앞 글자와 어울리게 미로 변한 것 같다.

이처럼 기 리 이 미와 같이 ㅣ 모음 접미어로 끝나는 동물들은 사람인 인간보다 못한 하등 동물들로 여겨진다. 그런데 인간들한테도 그런 접미어를 붙이기도 한다. 머저리나 멍청이는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아둔하며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놀림조로 부르는 혐오단어다. 꼴통 등신 바보처럼. 멍청한 물고기는 멍텅구리다. 엉터리는 실속 없이 바르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비정상인이다. 그 외의 인간들은 모두 다 똑똑이들일까?

이 질문에 대해 그런 게 아니라고 아주 강도 높게 심각한 비판을 한 책이 있다. 그레이(John Gray 1948~)가 쓴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다. 원제목은 ‘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다. 인간은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폭력적인 호모 라피엔스란다. 지푸라기로 만든 개(Straw Dogs)처럼 하찮은 존재란다. 휴머니즘의 꿈에서 깨란다.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 인간 중심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인류의 역사는 진보할 것이라는 인간의 통념과 환상에 통렬한 신랄한 어퍼컷을 날린다. 아프더라도 맞을 만하다. 이 책의 내용을 가만히 새겨듣는다면 인간이나 사람이라는 고상한 단어는 안 어울린다. 슬기로운 머저리나 지혜로운 멍청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헛똑똑이들인 호모 사피엔스 스튜피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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