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 전면 무상급식 도입 선도
- 원스트라이크 아웃 등 부패 근절
- 부교육감 직대체제로 운영 전환
- 내년 4월 재보선 새교육감 선출
8일 타계한 노옥희 교육감은 울산 최초의 진보 교육감이자, 여성 교육감이다. 평소 아이들이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고 삶과 미래를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교육철학으로 삼았던 그는 강력한 추진력과 지도력으로 울산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8일 노옥희 울산시교육감 빈소가 차려진 울산시티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 교육감은 첫 임기(2018년 7월~2022년 6월) 동안 전국 최하위권이었던 울산교육청의 청렴도와 교육복지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두 번째 임기에서는 맞춤형 교육복지와 미래 책임교육 등을 실현해 울산교육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임기동안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강력한 부패 비리 근절책을 도입하고 ▷고교 전면 무상급식 지원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등학교 입학준비금 지원 등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교육복지를 시행해 매번 광역기관장 평가에서 정상에 랭크됐다.
이 같은 성과는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통해 이미 내재돼 있었다. 노 교육감은 195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 금곡초, 한림중, 부산 데레사여고,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부터 울산 현대공고에서 교편을 잡는 것으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노 교육감은 초임 교사 시절 만난 한 제자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쉬는 시간에 학교 매점에서 일하면서 공부했던 그 학생은 졸업 후 취업했으나, 산재 사고를 당했다. 1980년대 초에는 산재를 당해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제자를 돕고자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교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그때부터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제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부했다. 그의 교육운동은 1986년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명의로 발표된 교육민주화선언 참여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해직됐다.
해직시절 전교조 울산지부 1·2대 지부장을 지낸 그는 13년 만인 1999년 울산 명덕여중 교사로 복직했다. 하지만 정책 변화 없이는 교육이 근본적인 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울산시 교육위원 출마를 위해 2002년 퇴직했고, 그해 교육위원으로 선출돼 2006년까지 역임했다. 이후 학교급식 울산연대 집행위원장, 장애인교육권연대 자문위원 등 교육·인권운동에 매진하며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로,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동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노 교육감은 이른바 보수교육감이 수장을 맡은 지난 20년 동안 울산 교육계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판단, 2018년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었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낡은 교육, 교육비 부담 전국 최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교육계가 울산교육의 현주소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정부패 척결, 교육복지 확대, 교육과정 혁신 등 교육의 큰 그림을 그리는 공약과 학생 치과 주치의 도입, 급식실·화장실 환경 개선, 학교 청소예산 증액 등 작지만 필요한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많은 7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였지만 결국 울산 첫 진보·여성 교육감에 당선됐다. 초선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1남 1녀가 있다.
노 교육감 별세로 당분간 울산교육은 내년 4월 5일 전국 지방 재보궐선거까지 이용균 부교육감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노 교육감이 추진해 왔던 정책 대부분을 이어가는 선에서 대행 업무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울산지역 교육계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 예비후보 등록은 선거 일정상 지난 6일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