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2호기 수명연장 및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부산시민의 목소리가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여야 없이 뜻을 모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펼쳤던 부산 시민사회가 다시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및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100만명 서명에 나섰다.
지난 26일 오후 2시 부산광역시 시의회 브리핑룸에서는 부산지역 84개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부산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서명운동 돌입을 선언했다. 핵심은 ‘부산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중단하라! 영구화될 고준위핵폐기장 건설시도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진보 중도 보수 시민단체가 두루 참여해 정부와 부산시에 반대의견을 분명히 내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및 핵폐기장 저지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적극 전개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지난해 4월 한수원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원안위에 제출했으나 최신기술을 반영하지 않은 오래된 기준으로 작성돼 매우 부실하며 사업자가 공청회를 주관해 시민의견 수렴이 되지 못하는 절차적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부산지역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지적했으나 한수원이 지난해 말까지 관련 공청회를 강행하면서 파행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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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식 부산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전 동의대 교수)가 지난 26일 부산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및 핵폐기장 반대 서명운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소비자의 권리로서 노후원전 수명연장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준비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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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부산지역 시민사회는 지난해 12월 24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고리2호기 수명연장 관련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시민의 의견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산업통상자원부,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지난 26일에도 고준위방폐물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등 부산시민의 의견이 무시되고 있는데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한수원은 2월 초 ‘고리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 계획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통과시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수명연장 및 핵폐기장 임시저장시설이 강행된다면 부울경 지역은 세계 제1의 원전 밀집도는 물론 노후화된 원전 수명연장에다 영구적인 핵폐기장까지 떠안게 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 이날 기자회견의 긴박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날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고리2호기 수명연장 핵폐기장 반대 범시민 서명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범국민운동으로 확대 승화돼야 한다. 인류의 불행을 막는 강력한 운동이 부울경을 넘어 전국으로, 세계로 확산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지지발언을 했다.
정창식 부산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330만 부산시민은 소비자, 특히 에너지소비자이다. 소비자는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안전할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우리부산은 어느새 원전밀집도시가 돼버렸다. 고리원전 반경 30Km 안에 300만여 명이 살고 있는 도시가 있는가? 정부와 한수원은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재율 지방분권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는 “부산은 지난 2015년 6월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 부산시, 시의회, 지역 국회의원, 언론 등이 하나가 돼 고리1호기를 폐쇄한 자랑스런 승리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정책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으로 볼 때 고리2호기 폐쇄는 당연한 귀결임에도 현 정부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고리1호기 폐쇄 결정 당시 정부는 박근혜 정부였고, 당시 여당은 새누리당이었다. 같은 집권세력이 지금 상반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제 시민의 힘으로 100만 서명운동을 통해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자”고 격려했다.
오문범 부산YMCA 사무총장은 준비위의 향후일정과 관련해 “2월 15일 전후로 범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해 2월말 여야 정당들과 공동 토론회를 개최하고, 상반기에 부산지역 국회의원 간담회, 과학기술방송통신 상임위 국회의원 간담회 개최, 여야당 대표 면담 등을 통해 부산시민의 뜻을 적극 전달하고, 3월 11일 후쿠시마참사 12주기를 맞춰 대규모 인간띠잇기 행사 및 시민행진을 하고, 4월 지구의 날, 6월 환경의 날 등을 계기로 서울 부산 등 전국 집중행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는 동참한 84개 시민단체와 개인참여자 600여명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해 노후핵발전소 고리2호기 수명연장 저지 및 고준위 핵폐기장 반대 100만 서명운동(
bit.ly/3WQFzXh)을 전개하고 이와 함께 뉴스레터, 카드뉴스, 전단지, 릴레이 챌린지, 언론사 관련 토론회 개최 요구, 부산시장 및 부산시의회 동참 촉구, 시의회 고리2호기 폐쇄 특별위원회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시민홍보 및 대정부, 부산시를 압박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반대 범시민운동은 2015년 고리1호기 폐쇄 범시민운동을 소환한다. 윤 정부의 고리2호기 수명연장 추진은 문재인 정부 때의 ‘노후원전 폐로’ 약속을 뒤집은 것으로 부울경 주민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환경권의 하나인 정온권(靜穩權)권, 즉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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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전경.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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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와 한수원은 30년 설계수명연한인 고리1호기를 10연 연장한 뒤 또 다시 10년을 연장해 50년간 사용하는 고리1호기 재연장을 추진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부산시민들의 단결된 힘밖에는 없다는 자각에서 일어난 것이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이다. 2015년 6월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 신청기한을 앞두고 그해 2월 부산지역의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약 120개 시민단체가 뭉쳐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경성했다. 당시 범시민운동본부는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정치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 상공계 인사가 망라됐다. 초기 상임대표는 하선규 부산YWCA 회장이, 공동집행위원장은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김혜경 부산YWCA 사무총장,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김해창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범시민운동본부 결성의 필요성은 2014년 가을부터 시민사회에서 흘러나왔다. 진보 보수를 결합한 범시민연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러한 과정에서 1월 12일 부산YWCA, 부산환경운동연합이 주축이 돼 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키로 했다. 1월 20일에 진보·보수단체 각 1인을 공동대표로 세워 범시민운동본부 결성 준비회의를 갖고 2월 2일 운동본부 결성 제안 회의, 2월 10일 범시민운동본부 대표자회의를 갖고 상임공동대표를 선출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바로 ‘고리1호기 폐쇄 100만인 서명운동’ 캠페인에 들어갔다.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은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크게 대시민홍보와 대국회, 대정부 투쟁으로 다양하게 전개됐다.
첫째, 범시민대회 개최 및 시민행진 그리고 홍보서명운동의 전개이다. 범시민운동본부는 2015년 3월 7일 부산역에서 약 1,700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고리1호기폐쇄 부산시민대회’를 개최했다. 3월 7일에는 간나오토 전 일본 총리를 초청해 ‘후쿠시마는 말한다 고리1호기를 멈추라고’를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3월 28일 100만인 서명운동 집중캠페인을 초읍 어린이대공원에서 벌였고, 부산YWCA는 전국YWCA와 함께 10만 서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14년 11월부터 2015년 6월까지 고리1호기 주변은 물론 부산지역 곳곳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이 30차례나 계속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과 녹색당 정의당 등 지역 야당 차원에서 1인 시위나 탈핵행사 등이 꾸준히 전개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에서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 대표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둘째, 부산시장 및 부산지역 국회의원에게 고리1호기 폐쇄여론을 전달하고 국회를 압박했다. 고리1호기 폐쇄 부산지역 국회의원 정책질의를 3월 하순에 실시해 지역 국회의원 9명의 동참을 받아냈다. 응답을 하지 않은 6명의 의원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범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방문, 면담을 통해 고리1호기 폐쇄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고, 문 대표는 시민단체 요구 사항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범시민운동본부 대표단은 5월 21일 부산시장 접견실에서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부산시장 울산시장 고리1호기 폐쇄 촉구 공동 선언’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면담 주선 등을 제안했고, 6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동철 위원장을 국회 본관에서 면담해 고리1호기 폐쇄를 촉구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도 고리1호기 폐쇄를 지지했고, 당시 새누리당 소속 국회 산자위 이진복 의원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5선 여당 최다선인 서병수 의원은 아무런 말이 없고, 이진복 의원은 현재 윤 정부의 정무수석으로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셋째,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고리1호기 폐쇄 압박이다. 4월 22일 부울경 시민단체 대표자 등 200여명이 세종시 정부청사 산자부 앞에서 고리1호기가 7차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되지 않도록 산자부 장관에게 지역여론을 전달하는 항의 방문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4월 29일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고리1호기의 폐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국회 산자위 방청을 하기도 했다. 6월 2일에는 서울 외교부 청사 4층 집무실에서 대표단이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면담해 고리1호기 폐쇄를 거듭 촉구했다. 6월 8일에는 대표단 등 30여명이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 고리1호기폐쇄 해결 강력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고, 6월 10일에는 부산시청 앞에서 최후의 농성에 들어갔다. 6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앞에서 열린 국가에너지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고리1호기 폐쇄안 수용 촉구 부산울산공동기자회견’을 가졌고, 이날 오후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인 산자부 장관으로부터 18일 이전에 한수원에 고리1호기 영구 정지를 권고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받아냈다. 범시민운동본부는 6월 13일 고리1호기 폐쇄안 환영 기자회견을 갖고 농성을 해제했으며, 24일 고리1호기 폐쇄 성과 시민보고대회를 갖고 해단식을 가졌다.
2015년과 2023년의 고리원전 범시민운동은 평형이론이 와 닿을 정도로 닮았다.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설계수명연한 30년을 넘어 10년 연장한 노후원전 고리1호기를 더 이상 연장해선 안 된다는 데 대한 시민적 공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1990년대 중후반 위천공단 반대운동에 버금가는 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종래 진보 환경단체가 주장해오던 반핵·탈핵운동을 부산YWCA, 부산참여연대 등 일반 시민단체는 물론 자유총연맹, 새마을협의회 등 보수단체를 참여시켜 대정부, 부산시에 대한 발언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부산시장과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나서 다양한 노력을 했는데 이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이 ‘고리1호기 폐쇄’ 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심판을 적극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민단체도 부울경 지역은 물론 서울지역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압박 수위를 높였고, 시민행진이나 서명운동 등 자발적인 시민참여를 통해 고리1호기 폐쇄의 당위성을 시민들에게 적극 홍보했고, 지역언론도 고리1호기 폐쇄 당위성에 대한 보도 및 특집을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펼쳤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고리1호기 수명재연장 추진을 ‘부산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는 폭거‘라며 ‘향후 총선 및 대선에서 표로 심판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진보·보수할 것 없이 중앙집권적 원전정책에 대한 반발심과 에너지지방분권의 큰 목소리를 낸 것이 정부의 방침을 바꾸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선거가 없지만 2024년은 총선이 있다. 결국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여야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는 주권자여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정창식 부산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장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애향심 없는 사람이 애국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현재 여야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시구의원들 가운데 진정으로 부산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부산시장도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하러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산의 미래를 위한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및 방폐장 건설 반대 목소리를 내고 이에 대해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