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기념물 235호인 경남 진주 촉석루 아래 일명 논개 바위인 ‘의암(義巖)’에 새겨진 글씨가 사라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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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의 의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 추경화 실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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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의암.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 추경화 실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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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원은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진주성 절벽과 50㎝가량 떨어진 의암에 새겨진 의암 글자가 30년 전에 확연히 보였으나 최근 글씨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라지고 절리 현상과 함께 공중부양 상태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진주문화원은 의암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한편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남해 노량해협에 있는 죽방렴 형태의 시설을 설치해 물이 내려오면서 의암을 직접 접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암 글자가 새겨진 면은 강의 상류 방향을 향해 있어 강물에 의해 침식이 일어난다.
또 의암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도록 주변으로 내려오는 강물을 분산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해안 방파제용 테트라포드(개당 2t~50t) 50여 개를 천수교와 의암 사이의 남강 물속에 넣어 물의 흐름을 분산해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 추경화 실장은 “의암 글자를 30여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며 “석공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보니 이 상태로 두면 1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진주성 관계자는 “현재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며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보존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1593년 6월 29일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 게이무라 로쿠스케를 이곳으로 유인한 뒤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해 순국했다. 진주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로운 바위’라고 불렀으며, 인조 7년(1629년) 선비 정대륭이 벽면에 전자(篆字)로 한자 ‘의암’이라고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