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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03> 헬라스와 헬레네 : 두 헬렌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3-02-20 19:06:1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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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기축시대(Axial age)가 있었다. 인류 문화문명 기(基)반의 중심축(軸)이 크게 바뀐 때다. 기원전 약 800년부터 200년까지다. 인류의 삶을 전환시킨 사상 철학 지식 사고 등이 나타나던 때다. 동양에선 고대 중국 주나라 이후 춘추전국 시대 때 제자백가들이 활동하던 때다. 중양(中洋)에선 자라투스트라와 고타마 싯다르타가 활동하던 때다. 서양에선 오늘 글이 다룰 고대 그리스의 현인들이 활동하던 때다.

어찌 그리스라는 한 국가에서 엇비슷한 한 시대에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분야에서 그처럼 탁월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 놀랍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지은 호메로스, 민주정치를 이끈 솔론, 최초의 수학자 탈레스, 논리학을 세운 파르메니데스, 천문을 밝힌 아낙시만드로스, 이솝우화를 지은 아이소포스, 비극을 연출한 아이스킬로스, 희극을 연출한 아리스토파네스, 만물유전설을 펼친 헤라클레이토스,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 이데아 세계를 만든 플라톤, 만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원자론의 창시자 데모크리토스,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아테네 황금시대를 연 페리클레스, 페미니즘의 효시라 할 아스파시아, 부력의 원리를 밝힌 아르키메데스, 기하학의 아버지 에우클레이데스, 수사학을 정립한 이소크라테스, 7음계를 만든 피타고라스 등…. 고대 그리스에는 탁월한 인물들이 전방위로 즐비하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들의 시조는? 음차하여 희랍(希臘)인 헬라스의 어원이 되는 헬렌(Hellen)의 후예들이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인들이 지은 국가명은 그리스가 아니라 헬렌공화국(Hellen Republic)이다. 헬렌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손자다. 앞(pro)을 내다보았던 프로메테우스는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며느리인 퓌라로 하여금 방주를 짓도록 했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 부부는 아들 헬렌을 낳았다. 헬렌은 요정인 오르세이스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헬라스 전역을 3등분하여 다스렸단다. 그리스 역사라기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렇다.

태양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단다. 고대 그리스의 기축시대(BC 800~200)는 신화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전환하던 때였다. 그 이전 고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Hellen)이 존재했던 시기는 신화시대였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 끝자락에 등장하는 헬렌(Helen)은 신화와 역사가 혼재하던 때의 여성이다. 스파르타 왕비였던 헬레네, 즉 헬렌은 트로이 왕자인 패리스와 눈이 맞아 도망가고 이는 트로이 전쟁을 불러왔다. 트로이 전쟁은 역사적 사실일까, 신화적 허구인가? 아니면 둘 다일까?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는 인간세상의 역사적 사실을 분명정확하게 반영하기보다 애매모호하게 투영하는 듯하다. 신화의 세상을 이어 수많은 현인들이 활동했던 기축시대 고대 그리스 역사는 서양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로 불리는 헬라스(Hellas)에 사는 헬렌(Hellen)의 후예들은 별 존재감이 없다. 그리스 문화의 확산인 헬레니즘을 이룬 뛰어난 조상들에 비해…. 그나마 헬레나(Helena), 즉 헬렌(Helen)의 후예인 여성들이 두각을 드러낸다. 헬렌 켈러, 헬렌 레디, 헬레나 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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