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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농촌개발사업 실패 딛고, 노인 IT교육 셀럽 우뚝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21> 라영수 ‘은빛둥지’ 원장

  • 고영삼 동명대 교수
  •  |   입력 : 2023-02-21 19:10:46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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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에 캄보디아 대규모 투자
- IMF 환란으로 전 재산 잃어
- 새출발 결심 안산대 수업 청강
- 2년간 밤낮 없이 컴퓨터 공부

- 2003년 정보화 교육단체 설립
- 노인들에 포토샵·영상 등 교육
- 전시·사진봉사 등 다양한 활동


◇ 라영수의 인생Tip

시대에 맞는 일을 선택하고 도전정신으로 밀고 나가라
라영수(왼쪽 두번째) 원장과 동료 교육생이 안산시의 본오들판에서 가을풍경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고 있다.

챗GPT, 갑통알, 메신저감옥, 워케이션, 갓생살기…. 신조어가 연방 쏟아진다. 디지털 기술이 일으키는 문명이 예사롭지 않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런데 80이 넘은 나이인 데에도 70대에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과 기업을 경영하는 분이 계신다. 경기도 안산의 은빛둥지 라영수 원장. 1940년생, 올해 83세인 그는 노인 IT 교육 쪽에서 이미 셀럽이 되어 있다. 그는 어떻게 그 경지에 이르렀을까?



-원장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줌으로 인터뷰 하는 라영수 원장 모습.
▶저는 노인들에게 포토샵 동영상 편집 등 컴퓨터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요즘 디지털 변화가 극심하다 보니 노인들은 꼭 딴 나라에 사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저는 농경시대에 태어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이 디지털 기술과 의식을 갖춘 ‘신노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조직을 꾸려서 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우리 은빛둥지는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네요. 정회원이 100명 정도이고요, 준회원이 7000명 정도 됩니다. 5명이 상근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안산시에서 고맙게도 공간을 무상으로 주었습니다.



애초 그에게 인터뷰를 위해 경기 안산시를 방문하겠다 하니, “그럴꺼 없다”면서 “줌으로 하자”고 제안해주셨다. 줌을 열어 만나본 83세의 라 원장은 목소리가 우렁차고 안정되어 3시간이나 변함없었다.



-주력하시는 일을 말씀해 주세요.

▶은빛둥지는 ‘당신은 반세기를 더 살아야 합니다’는 구호를 내걸고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은빛둥지는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노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휴전선 별곡’ 프로젝트입니다. 매달 노인들을 모집하여 휴전선 철책을 찾아 분단과 통일을 체계적으로 이해시키고 디지털 자료를 만드는 행사입니다. 부산에서는 동래학춤 박소산 명인께서 버스킹에 참여하신 적도 있습니다. 또한 영정사진을 찍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원에서 디지털 사진기술을 학습한 교육생들이 노노(老老) 봉사 차원에서 다른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있지요. 1년에 약 200명, 그동안 총 5000명은 찍어드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요?

▶코로나로 많이 힘들었지만 홍보영상 제작, VR 기술을 활용한 관광기념 영상콘텐츠 제작, 노인을 대상으로 1인 크리에이터 양성반 운영 등 다양합니다. 디지털카메라나 동영상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안산시의회를 감시하는 은빛의정봉사단도 운영했죠. 우리 활동은 유튜브에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 젊은 시절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말레이시아 태국 쪽에 대형 건설공사를 수주하는 로비스트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다 50대에 들어서 캄보디아에서 대형 농촌개발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쪽의 실세와 인연이 닿아 캄보디아농업개발공사(Cambodia Agriculture Development Corp.)를 설립했죠. 한국의 우수한 농업기술을 캄보디아에 적용하여 농업혁명을 일으킨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준비했죠. 그런데 운이 내 편이 아니었어요. 사업을 진행할 때 한국에 IMF 국가부도가 일어났습니다. 달러 환율 문제로 인해 모든 재산을 투여한 필생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평생의 재산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어요. 인생일모작의 마지막은 처참했었죠.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57세였는데 귀국해 집에 와보니 집까지 차압을 당했더군요. 분노와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술에 의지한 채 지냈고,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만 있었죠.

-그러다 어떻게 재기하셨나요?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분풀이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멋있게 사는 것이 분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생을 좌시할 수 없더군요. 모색 끝에 안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미 안산예술인 주택사업으로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안산대학교 교수님들을 면담하여 청강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2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 두 개를 싸 들고 주야간 가리지 않고 컴퓨터 관련 모든 수업을 완파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몇 년 뒤 대학에서 청강생인 저에게 졸업식 때 총장의 표창장까지 주더군요.



인생이 한없이 흔들릴 때는 전환의 계기를 붙잡아야 한다. 라영수 원장은 마음 깊은 곳의 단단한 도전정신 DNA를 다시 잡은 사례다. 경영자들이 존경하는 경영자라 일컬어지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회장은 인생 방정식을 사고법×열의×능력이라고 표현했다. 똑같은 열의와 능력이라도 사고법이 긍정적이어야 인생과 일은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힘든 세월의 어느 날, 실패를 하늘이 준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단호하게 새 출발을 했다.



-다행이군요. 그리고 어떻게 하셨나요?

▶2001년 우연히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안산시 본오복지관을 방문했다가 마침 노인 컴퓨터 교실을 열며 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너무나 좋아했어요. 그리곤 우여곡절 끝에 2003년에 안산시와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마련했고, 동네 노인들과 ‘은빛둥지’라는 정보화 교육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포토샵 등의 영상기술도 가르쳤죠. 2006년에는 교육생들이 만든 사진으로 지역 국회의원과 안산시장이 참여하는 디카로 찍은 사진전인 ‘황혼의 길손’을 열었고, 그 뒤에 매년 1회씩 12번을 개최했습니다.

-그때가 66세였는데, 지금 83세까지 활동해오셨군요. 수상 실적도 엄청나다던데요?

▶그 뒤 웹디자인 파워포인트 동영상 엑셀 포토샵 등을 자생자립적 신념으로 운영하여 교육사업을 계속 활성화시켰죠. 그리고 2013년에 은빛둥지를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했지요. 업종은 영상콘텐츠 제작업이었습니다. 물론 노인들에게 무료 컴퓨터 교육도 계속했지요. 우리의 야심작은 영화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안산의 대지주 출신으로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염석주 선생에 대해 7명씩 조를 짜서 만주 시베리아를 수십 번 탐방하며 다큐를 제작했습니다. 그게 ‘대지의 진혼곡: 염석주를 찾아서’입니다. 이 작품은 각종 영화제에서 대상을 타고, KBS에서 광복 65주년 특별방송으로 방영되기도 했죠. 또한 시민의 콘텐츠로 시민이 방송하는 국내 유일의 시민방송 채널인 RTV((재)시민방송)에 많은 콘텐츠가 올려져 있습니다. 수상실적요? 너무 많습니다. 정부나 민간으로부터 우리 단체가 받은 상과 교육받은 개별 노인들이 출품하여 받은 상을 합치면 모르긴 해도 백 개도 넘을 것입니다.



들어보니 은빛둥지는 노인컴퓨터 교육단체 이상이다. 기초부터 고급까지 가르치고 고급기술을 다시 적용해 전문가 수준의 콘텐츠까지 제작하는 노인 일자리 기업이다. ‘노인조직’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 같군요.

▶한국 사회의 노인들은 어떤 편견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 이미지인데요.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노인들은 디지털 기술에 취약하다 뿐이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죠. 저는 70, 80대 노인들과 함께 디지털 콘텐츠 쪽에서 수익모델을 만들어왔습니다. 노인들과 함께 뒷방을 걷어차고 나온 것이죠.

-네 정말 그렇군요.

▶현재 과기정통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배움터 사업은 초기에는 긍정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노인 IT교육기관이 자생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확장해야 합니다. 노인은 존엄을 지키며 경제활동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는 저열한 임시방편의 일거리를 주어 노인을 폄하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인을 양질의 일자리만이 아니라 활동적인 디지털 시민으로 만드는 저의 ‘신노인’ 모델은 노인을 고양된 자존감을 갖고 살게 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과 세대공감을 일으키도록 해 줄 것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네//…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는 것이라네.” 시인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시 ‘청춘’의 한 구절이다. 이 시의 말미는 다음과 같다. “너나없이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안테나가 있다네/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항상 청춘이라네.” 이 시는 사무엘 울만이 라영수에게 올린 헌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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