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사람 죽는데 뭐든 하자” 전단 뿌리니 서면에 계엄군 쫙 깔려

부산에 5·18 알린 사람들

  • 박주현 기자 qkrwngus30@kookje.co.kr
  •  |   입력 : 2023-05-16 20:17:28
  •  |   본지 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영남상고 교사였던 신종권 씨
- ‘광주소요는 항쟁’ 직감 후 결행
- 징역 살고 97년에야 무죄판결

- “태화극장 앞 모여 총궐기하자”
- 김재규 씨 등 유인물 제작·살포
- 다음 날 탱크·군인 거리 점령

- 이병철 당시 가톨릭농민회 국장
- 광주참상 목격 후 부산에 알려

“뭐라도 하자, 이런 마음으로 했죠. 대단한 결의가 있는 건 아니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뭐라도 알려야 안 되겠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신종권 씨가 1980년 계엄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피해자들의 재심 관련 국제신문 기사를 보고 있다. 박주현 기자
1980년 5월 24일 부산 서면 천우장에서 5·18 광주 상황을 담은 유인물을 뿌린 박모(71) 씨는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그는 “무용담으로 알려지기 싫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43년 전 부산에는 광주 참상을 알게 되자 이를 알리는 유인물을 뿌리거나 시위를 계획한 청년들이 있었다.

■“소요라고 보도되자 항쟁 직감”

김재규 씨(왼쪽), 이병철 씨
영남상고(현 부산정보고) 교사였던 신종권(70) 씨는 같은 해 5월 21일 “광주만 당하게 해선 안 된다”며 동아대 후배들을 자택에 불러모았다. 부산에서도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일으키기로 했다. ‘광주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 비판’과 같은 내용의 유인물도 만들기로 결의했다. 신 씨는 “부마민주항쟁 때 집회의 시발점이었던 남포동 부영극장에서 시위를 갖고 유인물을 뿌릴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역사 교사였던 신 씨는 계엄사의 언론 검열로 5·18이 광주 소요사태로 보도되자 항쟁이라고 직감했다. 신 씨는 재학 시절 ‘동아독서회’ 서클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1세대다. 그러다 5·18을 보도한 일본방송을 보면서 이를 확신했다. 당시는 부산에서도 일본방송이 수신됐다.

동아대 모임자 중 한 명인 성병덕(69) 씨는 유인물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성 씨는 “서두만 작성한 상태였다. 광주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 비판을 담은 내용이었다”며 “작성을 마친 후에 신 선배가 등사할 예정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24일 시위 계획이 계엄합동수사단에 새나갔다. 결국 교사 신분이었던 신 씨가 모든 책임을 떠안기로 했다. 신 씨는 이 일 때문에 계엄법 위반 혐의로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받고,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났다. 그 후 1997년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 씨는 “당시 뜻 있는 사람들은 신군부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서도 “중도에 그쳐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쑥스럽다”고 말했다. 신 씨와 성 씨는 당시 광주 상황을 알린 김재규(76) 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모임과는 다른 동아대 모임이었다.

■“유인물에 계엄군 발칵 뒤집어져”

박모 씨가 1980년 5월 24일 유인물을 뿌린 천우장 건물을 가리키는 모습. 박주현 기자
1980년 5월 24일 서면중앙대로엔 ‘전두환을 타도하자’ ‘광주 전주 애국시민 학생들을 학살한 자들을 처단하자’ 등과 다음 날 서면 태화극장(현 쥬디스태화) 앞에서 모여 총궐기하자는 내용의 유인물이 흩날렸다. 김 전 이사장을 필두로 한 청년들이 서면 등지에 이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이들은 2인 1조로 젊은 연인이 데이트하는 것처럼 위장해 동시다발적으로 버스 천우장 태화극장 등에서 살포했다.

익명을 요구한 문모(71) 씨는 버스가 멈춰 섰을 때 환기통에 유인물을 얹어놓고 달아났다. 버스가 출발하면 유인물이 흩날리는 것이다. 누가 유인물을 뿌렸는지 파악하지 못해 경찰과 계엄군이 발칵 뒤집어졌다. 박모 씨는 “다음 날 서면을 가보니 도로에 탱크가 있었고 계엄군은 착검을 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이사장 모임에 광주 참상을 알린 이병철(75) 당시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은 “행사 준비 차 광주 금남로 가톨릭센터 사무실에 있다가 5월 18일 시위에 나선 학생을 향한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 장면을 목격했다”며 “‘이래선 안 된다. 이걸 전부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김 전 이사장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김재규 모임에 상황을 알려주고 어떻게 알릴지, 유인물을 어떻게 담을지 상의하고 다음 날 서울로 갔다”고 밝혔다.

1980년 당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의 ‘2군 상황 일지’에 김 전 이사장 모임이 살포한 유인물을 수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일지 속 24일 ‘중사 계급의 흰 명찰을 한 성명불상 군인 1명이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유인물을 살포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 유인물 속에는 ‘민족 반역자 전두환 물러가라’와 김 이사장 그룹이 알렸던 다음 날 시위 내용도 적혀 있다고 기록됐다. 김 전 이사장 모임과 활동은 당시 적발되지 않았으나 1981년 부림사건 때 대부분 드러나 고초를 겪었다.

차성환 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은 “당시 광주의 희생이 압도적이라서 상대적으로 부산 운동이 조명받지 못했다”면서 “이러한 저항이 있어 1987년 6월 항쟁과 같은 더 큰 저항을 할 수 있었다. 이제라도 조명을 하는 것이 그때 투쟁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평가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3. 3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4. 4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5. 5“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3. 3‘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노후 산단을 스마트 밸리로 혁신…구 소유 건물 팔아 재정 안정화를”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