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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산 골짜기 별천지 공동체…여긴 물만골입니다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최혁규 기자
  •  |   입력 : 2023-05-23 20:12:20
  •  |   본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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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층아파트에 둘러싸인 곳
- 부산의 빈민가로 통하지만
- 공동체 정신 형형한 마을을
- 월세방 얻어살며 탐구하다

지난 20일 부산 연제구 물만골 마을회관 앞에선 ‘물만골 행복마을 축제’가 열렸다. 박순애 물만골공동체 운영위원장은 “주민등록 인구 529명 중 40%인 200명이 오늘 모여 끈끈함을 보여줬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노래자랑이 시작되자 동네 터줏대감인 김작치(85) 어르신부터 박 운영위원장의 손녀인 박예빈(9) 양까지 10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국제신문이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에 작은 방을 얻어 ‘부산 빈곤의 역사와 공동체 탐구’를 주제로 생활 취재에 나섰다. 사진은 ‘제2회 물만골 행복마을 축제’를 앞두고 국제신문 최혁규(왼쪽 세 번째) 기자와 주민이 마을을 청소하는 모습. 이원준 기자
물만골은 ‘물이 많은 골짜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행정 1번지 부산시청과 약 2㎞ 떨어져 있다. 연산동에서 광안리해수욕장이 보이는 남천동(수영구)으로 넘어 가는 황령산 고갯길에 349세대가 무허가 판잣집과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모여 산다. 부산 대표 빈민가이자 대중교통이라고는 마을버스 노선 1개뿐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 옆에 공동화장실도 있었다.

물만골 주민의 결속력은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1970년대 주택지 개발 광풍에 밀려 물만골로 몰려든 이주민들은 ‘주거공간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 갈등을 거듭했다. 50년 세월은 반목을 녹여냈다. 2000년대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은 물만골을 ‘공동체’로 탈바꿈시켰다.

“부산엔 마을공동체가 여럿 있지만 물만골의 단결력은 남달라요. 수십 년 동안 ‘무허가 동네’라는 딱지 때문에 갖은 피해를 입었는데도 누구 하나 떠나려 하지 않아요.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것도 이유지만….” 박 운영위원장의 설명이다.

물만골도 저출생·고령화 덫은 피해가지 못했다. 한때 활기를 띠었던 청년회와 장년회는 사라지고 지금은 노인회와 부녀회만 있다. 주민등록 인구를 기준으로 물만골 인구 중 60대 이상은 317명(70대 이상만 171명)으로 60%에 달한다. 50대 이하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물만골은 영화 ‘1번가의 기적’(2007년 개봉) 촬영지로도 이름을 알렸다. 재개발을 앞둔 무허가 주거촌의 철거 과정을 그린 영화가 상영된 지 16년이 지난 2023년. 물만골 입구에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들어섰다. 간선도로와 200여m 떨어진 물만골을 도시 중심부와 단절시킨 장벽이 선 셈이다. 빌딩 높이 만큼이나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다.

그래선지 외부인을 바라보는 물만골의 시선엔 경계심이 가득하다. 취재팀이 처음 찾았을 때도 “우리 마을에 온 이유가 뭐냐” “또 이용하려는 거냐”는 날 선 반응이 이어졌다. 물만골에 작은 방 하나 얻어서 먹고, 자고, 어울리며 ‘빈곤의 역사와 공동체를 탐구해보자’는 국제신문 기획이 좌초할 뻔 한 것이다. 그래도 물만골 인심은 넉넉했다. 어르신들의 배려로 28일 만에 월세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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