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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도 버거운 도배·포장 “이 일이라도 있는 게 어디고”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4> 주민 경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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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세 이상이 60% 달하는 마을
- 번듯한 직업 가진 사람 드물지만
- 일용직·가내부업 등 다양한 생업

- 집수리로 생계 잇는 주민 따라
- 도배 일 해보니 엄청난 중노동
- 쉽게 봤던 포장 일도 만만찮아

- 한때 10개 넘던 가내수공업장
- 주민고령화 되며 반 이상 줄어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 마을은 여느 동네보다 노년층 비중이 높다. 주민등록상 인구 529명 중 60세 이상 인구가 60%(317명)에 달한다. 70대 이상(171명)이 3명 중 1명꼴이다. 번듯한 직업을 가진 경제활동인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노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군가는 새벽잠을 떨치고 막노동을 한다. 인형의 눈을 붙이거나 포장을 하는 이도 있다. 취재진은 일용직과 포장일을 하는 어르신들을 만나 직업 체험을 했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에서 전정숙 어르신이 자택에서 호수 연결용 중간밸브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물만골 ‘조가이버’

조성래(63) 사장은 ‘물만골 맥가이버’로 불린다. “마을의 웬만한 집은 내 손을 다 거쳤다”는 그의 직업은 ‘일용직’. 요즘은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기자는 조 사장의 승낙을 얻어 집수리 출장에 동행했다. 이날 작업은 정교함과 체력을 요구하는 도배. 조 사장은 벽지를 새로 바르기 전 곰팡이가 스며든 벽지를 먼저 뜯어냈다. 기자에게 “군대는 갔다 왔냐”고 묻던 조 사장은 “일을 못 하는 건 괜찮은데 (벽지를) 망치면 각오해라. 구석에서 벽지에 풀부터 발라보라”며 일감을 줬다.

무릎을 굽히거나 쪼그려 앉아 3m짜리 벽지 곳곳에 풀을 골고루 발랐다. 5분 동안 정성을 다해 벽지 한 장에 풀을 바르자 갑자기 조 사장이 야단을 쳤다. “하루 종일 풀칠만 하다가 갈 거냐. 그렇게 두껍게 바른다고 잘 붙는 게 아니다.” 풀이 마르기 전에 벽지 10장에 풀칠을 끝내라는 게 조 사장의 주문이었다. 조 사장의 호통에 조금 빠른 속도로 벽지 5장에 풀칠을 했더니 손목이 욱신거리고 목과 어깨가 저리기 시작했다.

물만골 주민인 조성래 사장(오른쪽)과 최 기자가 천장에 벽지를 붙이고 있다.
벽지를 붙이는 작업 또한 만만찮았다. 사다리에 올라 허리를 굽히고 머리는 천장으로 든 채 벽지를 붙이는 일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중노동이었다. 도배 일당이 30만 원으로 ‘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벽지 붙이기 전에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해.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아프다고 병원비 달라고 할 거 같네. 그냥 놔두고 사다리나 잡아줘.”

조 사장은 10년 전까지 택시를 몰다가 봉사활동으로 하던 집수리로 전업했다. 자녀 셋을 대학에 보내려니 택시운전으로는 불감당이었기 때문이다. 철거·기초공사·축대공사·인테리어까지 집 짓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쉬는 날이면 이웃들 집수리를 돕다 보니 물만골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물만골에는 형편이 어려워 수리가 필요한 집들이 많아요. 마을 사람들의 집을 고치는 일은 거의 돈을 받지 않아요. 그냥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3시간 동안의 도배를 마친 조 사장은 “일당은 얼마나 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막걸리 한 잔 드실 시간만 내달라”고 하자 “그래도 양심은 있네”라면서 웃었다.

■ 10초에 1박스 ‘포장의 달인’

국제신문 최혁규 기자가 포장 일을 거들고 있다.
40년 가까이 물만골에 살고 있는 전정숙(72) 어르신은 ‘포장’이 직업이다. 저가 생활용품점에 납품하는 상품의 포장 작업을 집 한쪽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한다. 취재진도 전 어르신을 만나 ‘호수연결용 중간밸브’ 포장을 함께했다. 33㎡ 남짓의 집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작업장은 포장작업이 끝난 제품으로 가득했다. 천장까지 쌓여 있는 종이박스는 이날 하루의 ‘고된 노동’을 알렸다.

전 어르신이 숙달된 시범을 보였다. 제품을 비닐봉투에 담아 종이박스에 옮겨 넣는 일이었다. 눈으로 보니 단순하면서도 쉬워 보였다. 전 어르신은 “기자 양반이 1분에 서너 개만 포장해도 일당을 쳐 주겠다”며 웃었다.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고 어르신 곁에 앉아 작업에 나섰다. 30분이 지나서 작업량을 살펴보니 60개 정도 포장하는 데 그쳤다. 그사이 전 어르신은 200개는 넘어 보이는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속도를 보니 10초에 하나 꼴로 포장이 완성됐다. “젊었을 때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빨랐다. 나이가 들더니 점점 느려진 게 이 정도다.”

작업 속도보다 노동 강도가 문제였다. 단순 노동이라고 만만하게 봤다가 금방 후회했다. 맨 바닥에 제품을 깔아놓고 허리를 굽혀 장시간 반복 노동을 하니 허리와 무릎·고관절까지 ‘삭신’이 쑤셨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 없으니 쉬는 시간도 딱히 정해진 게 없다. 눈치를 보고 허리 한 번 펴보겠다면서 화장실을 가려고 잠깐 일어나는 순간 온 몸이 무거워지더니 다리가 휘청였다. 전 어르신의 타박도 따라 붙었다. “앉아서 포장하는 거 답답해서 못 보겠다. 차라리 내가 포장한 박스 정리해서 쌓아놓고 옮기는 거나 해주라.”

물만골 마을에는 소규모 가내수공업장이 여럿 있다. 예전에는 10개도 넘었는데 지금은 5개 안팎으로 줄었다. 전 어르신도 물만골의 한 가내수공업장에서 일하다가 10년 전 지독한 대상포진에 걸려 앓다가 일을 그만뒀다. 생계를 위해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던 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포장일에 뛰어들었다. 한 달 수입은 100만 원 내외.

“나이 든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노. 먹고 살려니 일을 안 할 수도 없는데, 이 일이라도 있으니 열심히 해야지. 동네에서, 그것도 내 집에서 일하는 것만 해도 다행 아이가. 눈 뜨면 일하고 피곤하면 조금 누워있고, 밥 먹고 소화시키면서 포장하고 이리 산다. 눈도 어두운 내한테는 인형 눈깔(알) 붙이는 것보다 이게 더 쉽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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