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라는 작품으로 ‘추앙’ 열풍이 불었다. 극중에서 미정은 구씨에게 대뜸 추앙한다고 말한다. 그 마음의 결이 사랑인지 설렘인지 혹은 책임인지 어쩌면 연민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중인지도 모르는, 이름조차 모를 ‘구’를 미정은 추앙한다.
추앙. 그런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검색 창에 단어를 기입하며 내가 감히 다른 사람에게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의 주변과 오늘의 키워드를 덧대보며 평소 온전하게 사랑과 믿음을, 또 어떤 류의 존경을 보내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긴 시간 운전대를 잡아 바다를 세 번 건넜다. 갈맷길을 따라 광안대교를 넘었고 남항대교를 타고 송도바다에 닿았다.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내가 바다의 도시를 횡단한다는 건 결심이 필요했다. 그렇게 첫 아이들을 만났다. 너희가 벌써 스무 살이라니. 예쁜 조약돌처럼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이렇게 맨들맨들 윤이 나기까지 엄마 수녀님들께서 얼마나 고되셨을까, 너는 또 얼마나 서성였을까 헤아려본다.
너희 곁에 어떤 형태로 남아 머무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선생님이 말했지. 좋을 때는 오지 마. 좋은 사람들과 많이 웃고 행복하게 지내. 그렇게 살다가 힘들 때, 그때 와. 다 제대로 안될 때, 급하게 기차를 타야 할 때, 중요한 인사를 해야 할 때, 아픈 아이 봐줄 사람이 없을 때,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을 때. 잠깐 들러서 이야기하고 쉬다 가. 반찬도 꼭 얻어가고.』
오늘 너희를 품에 안고서야 나는 이 추앙이 어쩌면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쏟아지는 하늘 아래 바다 위를 가르며 달려가는 시간처럼. 너의 항해에 때로는 선선한 바람이 함께 하기를, 네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그 바람이 훨훨 불어주길 바라본다.
다시 찾아온 비가 얼어붙은 계절을 녹인다. 이 비를 맞으며 피어날 싹들과 겨울을 견뎌낸 것들에 대해 모종의 경외감을 보내며 어김없이 새 학기를 맞이한다. 하얀 봉투에 들어있는 학급 명단을 뽑으면서 올해는 어떤 이름이 나에게 올까 생각한다.
작은 얼굴보다 먼저 도착한 그들의 이름과 비고란에 적힌 한 줄 주석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할아버지께서 바른 글씨로 통신문을 써 주시는 아이, 우리말이 서툰 어머니와 그의 아이, 손이 벌겋게 될 때까지 손을 씻는 아이, 그리고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 그 작은 목소리까지 천천히 추앙할 수 있길.
어떤 확률을 뚫고 해가 바뀔 때마다 내게 오는 것은 작지만 커다란, 하나의 우주였다. 그렇게 한 아이가 온다. 사람이 온다.